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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휴대폰 비번 좀 풀어달라" 백발의 아버지는 오열했다 [이태원 참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내 딸이 연락이 안 돼요…” “어떡해 어떡해.”

 30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실종자 접수처 대기실에서 한 시민이 오열하고 있다. 뉴스1

30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실종자 접수처 대기실에서 한 시민이 오열하고 있다. 뉴스1

 30일 오전 9시쯤 ‘이태원 참사’ 실종자 가족이 대기하는 서울 한남동 주민센터 지하 1층에는 애끓는 울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가족과 연락이 갑자기 끊겼다는 이들은 애타는 마음을 안고 이날 오전 4~5시쯤부터 이 주민센터로 속속 모여들었다. 대전에서 이날 첫차를 타고 올라왔다는 50대 A씨 부부는 “‘○○(딸 이름)이가 길바닥에 누워있다’는 친구 연락을 받았다. 친구들이 다 보고 있는데 그걸 데려갔다고 한다. 내 딸은 어디로 간 것이냐”며 목이 메 말을 잇지 못했다. 올해 스무살이 된 A씨의 딸은 전날 “아빠. 나 오랜만에 서울 갔다 올게”라는 말을 남긴 뒤 부모와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이태원 참사’ 실종자 가족들 ‘발 동동’

30일 오전 한남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실종자 접수처 대기실에서 가족이나 지인과 연락이 두절된 시민들이 대기하고 있다. 뉴시스

30일 오전 한남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실종자 접수처 대기실에서 가족이나 지인과 연락이 두절된 시민들이 대기하고 있다. 뉴시스

 이 주민센터에는 생사를 모르는 가족의 분실물을 들고 찾아온 이도 여럿 있었다. 60대 김모씨는 “오전 5시쯤 경찰이 이태원에 있던 딸 휴대전화를 주워 연락이 왔다. 잠 한숨 못 자고 바로 왔는데 진이 다 빠지지만 그래도 살아만 있으면 좋겠다”며 오열했다. 파출소에 가 받아왔다는 딸의 아이폰을 들고 온 백발의 한 남성은 “휴대전화 비밀번호 좀 풀어달라”며 눈물을 흘렸다.

이날 오전 9시쯤 실종자 가족이 한데 모이는 주민센터 지하 1층 대기석(약 70석)에는 실종자 가족 약 30~40명이 앉아 있었다. 등을 숙이고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며 가족 소식을 기다리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20대 친구를 찾으러 나왔다는 김모씨는 “친구의 여자친구가 심폐소생술(CPR)로 극적으로 살아 연락이 왔는데 그 친구는 연락이 두절됐다”며 “새벽부터 경찰서와 병원, 체육관을 다 돌았는데 친구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스리랑카인 친구가 이태원에서 실종됐다”는 연락을 경찰로부터 받고 뛰쳐나왔다는 20대 스리랑카인 리하스씨는 “친구가 (타지 생활로) 가족이 없으니 내게 연락이 온 것 같다”며 젖은 눈가를 닦았다. 이들 중엔 사고 생존자도 있었다. 친구 3명과 이태원에 나왔다가 1명과 연락이 끊겼다는 20대 남성 B씨는 “사람이 몰리면서 순식간에 ‘억’하고 몸이 쏟아졌다. 병원에도 안 가고 친구를 찾으러 이곳에 바로 왔다”고 눈을 꾹 감은 채 말했다. 이 남성의 바지는 흙과 오물 범벅이었다.

희비 엇갈린 센터…당국 대응엔 불만도 

30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실종자 접수처에 실종자 현황판이 설치돼 있다. 뉴스1

30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실종자 접수처에 실종자 현황판이 설치돼 있다. 뉴스1

 날이 밝아가면서 실종자 가족들의 희비가 엇갈리기도 했다. “아들이 인천에 있대요!”라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어머니가 나오자 주변에서는 “다행이다” “감사하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반면 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지금껏 공부한 것 아까워서 어떡하냐. 인생이 억울하다”며 전화를 끊자마자 자리에 주저앉아 가슴을 치던 어머니도 있었다. 지하 1층 주민센터 대기석에서는 “어떡해” “제발…” 등과 같은 탄식이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다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아직 우리는 유족이 아니다” “찾을 때까지 기다리겠다” 등과 같은 말을 하며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못한 가족들도 많았다.

사망 151명(오전 9시40분 기준) 등 대규모 참사가 서울 한복판에서 발생하면서 서울시 등 관계 당국 대응에 불만을 터트리는 목소리도 나왔다. 친구를 찾으러 나왔다는 20대 남성은 “사망자가 너무 많이 나와서 사정은 이해하지만 몇 시간 동안 병원과 체육관 등을 뺑뺑이 돌았다”고 말했다. 이곳 센터에 있다가 조카 사망을 확인하는 전화를 받은 정해복(65)씨는 “(여기에는) 우리처럼 안내를 못 받은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사상자가 많은 만큼 어느 병원에 누가 있는지와 사망자 명단이 즉각 공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한남동 주민센터에는 이태원 참사 관련 실종신고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이 센터는 유일하게 현장 방문신청을 받는 곳이다. 오전 11시 기준 누적 실종신고는 2249건으로 집계됐다. 실종신고 전화 접수는 서울시 20개 회선 전화와 120 다산콜센터를 통해 받고 있다. 전화 접수는 ▶02-2199-8660 ▶02-2199-8664~8678 ▶02-2199-5165~5168로 하면 된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모든 회선에 통화가 물밀듯 밀려 통화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시간이 흐를수록 전화가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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