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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장기농성 주민들 자진 해산...공권력 대신 대화로 해결 나선 경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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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중순 대전의 한 주민단체가 토지보상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대전시청 북문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대형 스피커를 틀어놓고 거친 표현을 써가며 대전시와 공무원을 비난했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음으로 공무원과 시민은 불편을 겪었다. 불법행위였지만 대전시는 지방선거를 의식한 듯 손을 대지 못했다.

지난 9월 대전 도심에서 열린 집회 현장에서 노란색 조끼를 입은 대화경찰관이 도로 주변을 관리하고 있다. [사진 대전경찰청]

지난 9월 대전 도심에서 열린 집회 현장에서 노란색 조끼를 입은 대화경찰관이 도로 주변을 관리하고 있다. [사진 대전경찰청]

지난 7월 1일 취임한 이장우 대전시장은 “불법을 왜 그냥 두고만 보느냐”며 원칙대로 처리할 것을 주문했다. 행정대집행을 통해서라도 강제로 철거하고 농성 중인 주민을 해산하라는 얘기였다. 담당 부서는 행정대집행에 투입할 용역업체를 선정하고 계약금까지 지불했다. 반대로 주민들은 “농성과 집회를 계속하겠다”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물리적 출동 우려…현장 지키며 대화 시도

경찰은 대전시의 행정대집행 방침에 물리적 충돌을 우려했다. 농성장에서 천막과 장비를 철거할 때 주민이 거칠게 대응하면 부상자가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당시 천막 안에는 소형발전기를 가동하는 데 사용할 휘발유가 10통이나 있었다.

대전경찰청은 대전시와 주민단체 측에 경찰을 보내 “물리적 충돌을 예방하자”고 설득했다. 주민단체는 처음엔 대화를 거부했다. 경찰이 대전시 편에서 자신들을 몰아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찰은 농성 현장을 떠나지 않고 며칠간 대화를 시도했다. 결국 주민단체는 행정대집행 사흘 전인 8월 26일 천막을 자진 철거했다. 대전시도 “경찰의 협조로 원만하게 해결했다”며 고마워했다.

지난 9월 대전 도심에서 열린 집회 현장에서 노란색 조끼를 입은 대화경찰관이 도로 주변을 관리하고 있다. [사진 대전경찰청]

지난 9월 대전 도심에서 열린 집회 현장에서 노란색 조끼를 입은 대화경찰관이 도로 주변을 관리하고 있다. [사진 대전경찰청]

최근 도심 집회·시위와 공공장소 주변 농성으로 시민불편이 가중하는 가운데 ‘대화경찰’ 역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집회·시위 자유를 보장하면서 시민과 마찰을 최소화하는 게 경찰의 핵심과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대화경찰은 집회와 시위 등 사회 갈등 현장에서 집회 참가자와 시민·경찰 간 소통 창구를 맡기 위해 2018년 10월 처음 도입했다.

집회 주최 측 "사전 소통과 협조로 안전하게 진행"

지난달 24일 대전시 중구 우리들공원 등 2곳에서 열린 민주노총 집회 당시 경찰은 주최 측에 “집회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하겠다. 다만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는 평화적 집회가 되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주최 측은 행진 구간을 최소화하고 차량흐름에 맞춰 행진했다. 당시 집회를 마친 민주노총은 “경찰의 기존 집회 관리는 통제 위주로 생각했는데 이번 집회는 사전 소통과 협의로 안전하고 평화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최근 한국경호경비학회 시큐리티연구에 실린 ‘대화경찰의 역할에 관한 시민 인식도 연구’ 논문에 따르면 대화경찰의 필요성에 많은 시민이 공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 중 68.6%가 “집회 시위 전반에서 경찰의 대화와 협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대화경찰이 필요한 이유로는 ‘안전사고 예방에 도움이 된다’(54.7%)를 가장 많이 꼽았다. 지난해 3월 기준 총 1667명의 대화경찰관이 전국에서 활동했다. 2020년 열린 7만7148건의 집회·시위 중 4만2773건에 대화경찰관이 배치됐다.

지난 9월 1일 대전시 서구 보라매공원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집회를 열고 있다. 뉴스1

지난 9월 1일 대전시 서구 보라매공원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집회를 열고 있다. 뉴스1

대전경찰청은 대화경찰의 갈등 관리 등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대화경찰 학습모임 이어폴’(ear-pol)을 구성, 운영 중이다. 모임은 매달 1회 이상 대면 교육 또는 메타버스를 이용한 비대면 교육으로 현장 사례와 소통 방법을 공유한다. 전문가를 초청, 대화경찰제도 정착을 위한 조언도 듣고 있다.

윤소식 대전경찰청장은 “대화경찰 역량을 강화해 집회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서 시민 불편도 최소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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