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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레고랜드 사태’ 계기로 지자체 보증 1조700억 살펴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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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랜드 호텔

레고랜드 호텔

이달 12일 교보증권은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에 천안북부 BIT 일반산업단지를 조성하는 개발사업 시행사 ‘천안북부일반산업단지㈜’가 3개월 전 발행한 전자단기사채(ABSTB) 565억원 치를 매입했다.

강원도가 레고랜드 채권 보증 약속을 취소한 후 기존 투자자였던 미래에셋증권과 BNK투자증권이 천안산단에 투자를 거부하면서, 주관사인 교보증권이 이를 매입해 부담을 떠안은 것이다.

천안시 관계자는 “개발 중인 산업단지 분양이 마무리됐고 사업성도 나쁘지 않았지만 금리상승이나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심리가 안 좋아 기존 투자자를 설득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교보증권 관계자는 “일단 교보증권이 인수해서 추후 시장 상황을 봐가면서 매각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원도가 레고랜드 보증 약속을 번복하면서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추진 중인 사업에도 여파가 미치고 있다. 26일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행정안전부·한국예탁결제원로부터 제출받은 ‘지방자치단체 신용보강제공(지급보증) 현황’에 따르면 이달 17일 기준 총 13개 지방자치단체가 1조701억원 규모의 지급보증을 선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집계한 지급보증 내역이 공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4일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레고랜드 사태 직후 전반적으로 조사했는데 사실상 부실화 할 가능성이 있는 건 3개 업체 정도”라고 말했다가 다음 발언 시간 때 곧바로 “부실화 될 우려가 있는 사업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정정한 일도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자체 사업의 건전성에는 문제 없다”며 “연내 채권 만기가 도래하는 사업은 서너 개 정도 된다”고 했다. “문제가 없다”는 게 정부의 공식 입장이지만 천안 사례처럼 차환발행 실패를 증권사가 떠안는 등 자금경색 사태가 연내에 또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행안부에 따르면 13곳의 지방자치단체 중 보증 액수가 가장 큰 곳은 경산지식산업개발에 2370억원을 지급보증한 경산시였다. 경산지식산업개발㈜은 지난 2014년 4월, 9년 만기로 3162억원 한도의 채권을 발행하기로 하고 자금을 빌렸다. 경산시가 보증을 서면서 시공사로 참여한 대우건설이 공사비용을 손쉽게 조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경산지식산업지구 산업용지 분양률은 1단계 부지가 93%에 그쳤다. 준공도 내년 연말로 예상되고 있다. 금리가 오른 데다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 시장이 경색되며 일부 자금 조달이 위태롭다는 지적에 대해 경산시 관계자는 “현재 경산시가 지급보증을 선 금액은 1850억원으로 줄었으며 2단계 부지 역시 계약 직전 상태에 있는 곳들이 대부분”이라며 “경산시가 보증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은 만기인 내년 5월까지 면밀히 검토해 사업추진에 지장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뒤이어 지급보증 액수가 큰 곳은 레고랜드 사업을 담당한 강원도(2050억원)였고, 제주도가 오등봉공원 건설을 위해 호반건설에 지급보증한 1226억원, 천안시가 천안북부일반산업단지에 지급보증한 1105억원 등의 순이었다.

 제주시 관계자는 “우리 경우는 사업에 문제가 있을 시 해당 금액을 돌려주고 사업자 지정을 취소하겠다는 의미의, 예치금 조의 돈이었다”며 “이미 지난 5월에 이 돈을 호반건설에 돌려줬으며 예탁결제원에 보고되는 데 시차가 있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실제로 행안부는 “24일 기준 지급보증이 해소됐다”고 중앙일보에 알려왔다. 천안시 관계자는 “교보증권이 매수한 565억원 규모의 ABSTB 외 잔액은 만기가 내년이라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청-세풍산단개발(이하 지급보증 지자체-실질 자금조달자) 951억원 ▶음성군-음성용산일반산업단지 600억원 ▶충주시-충주드림파크개발 570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레고랜드 사태에 부동산 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자금 시장 경색이 현실화 하자 정부는 지자체가 보증한 모든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대해 보증 의무를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도 50조원 이상 규모로 확대해 운영하겠다고 한 상태다. 하지만 지금 같은 위기가 계속되면 중소형 건설사 부도에 이어 중소 증권사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사례가 나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계속되는 상황이다. 김웅 의원은 “시장의 안정화와 지자체의 신뢰 회복을 위해 정부가 단기적인 접근을 넘어 선제적으로 위험 관리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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