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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역지사지(歷知思志)

다문화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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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최근 영국 국립극장에서 배우를 선발하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비원어민 억양으로 말하는 배우다. 즉, 영국 토박이가 아닌 배우를 뽑겠다는 이야기다. 영국식 영어로 말하는 배우로만 무대를 채우면 현대 영국 사회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영국은 다양한 민족으로 뒤섞인 역사를 갖고 있다. 원래 브리튼섬에 거주하던 원주민 외에도 로마인·앵글로색슨인·노르만인 등이 번갈아 들어와 지배하면서 ‘단일 민족’이라는 단어는 꺼낼 수 없는 나라가 됐다. 제국주의 시대에 영국의 민족 다양성은 더 강화됐다. 세계 곳곳의 식민지에서 다양한 민족이 들어와 정착했고,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민자가 들어오는 중이다. 내가 런던에서 자주 찾는 카페의 바리스타는 이탈리아에서, 이발사는 모로코에서 왔다. 대형 상점에서는 히잡을 쓴 여성 직원을 보는 게 어렵지 않다. 레스터의 한 박물관에서는 한 직원이 스페인 억양이 강한 영어로 리처드 3세에 대해 설명하고, 영국인이 질문하는 모습도 봤다. 다민족 사회가 무엇인지를 실감했다.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한국은 어떨까. 서울 밖 지방 도시엔 아시아 각국에서 온 노동자가 적지 않게 살고 있다. 거리에는 아시아 각국 언어로 쓰인 간판이 즐비하다. 또 다문화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입대하고 있다. 인구 감소를 대비해 이민을 더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비한반도 출신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다문화 국가로의 전환을 준비할 때다. 그런 측면에서 영국 국립극장의 시도는 우리도 눈여겨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