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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하자는 사람이 범인"…부메랑 된 이재명의 과거 '말빚'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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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민주연구원에 대한 검찰 압수 수색이 진행 중인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앞에서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히던 중 잠시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민주연구원에 대한 검찰 압수 수색이 진행 중인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앞에서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히던 중 잠시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검찰의 민주당사 압수 수색을 “침탈”, “민주주의의 퇴행”이라 명명하며 ‘정치보복과 전쟁’을 선언한 24일 여권에선 이 대표의 과거 발언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의 과거 발언과 현재의 기조가 상충된다는 게 여권의 공격 지점이었다. 과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곤혹스럽게 했던 ‘조적조’(조국의 적은 조국의 SNS) 공세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종합 감사에서 “2017년 정권 교체 후에 이재명 현 당 대표가 페이스북에 쓴 글”이라며 이 대표의 과거 SNS 글을 소개했다. 유 의원이 언급한 글에서 이 대표는 “도둑을 잡는 건 보복이 아니라 정의일 뿐. 정치보복이라며 죄짓고도 책임 안 지려는 얕은 수법 이젠 안 통한다”고 적었다. 이명박(MB) 전 대통령 측이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의 검찰 수사를 “정치보복식 과거사 들추기”라 지적하자, 이 대표가 발 빠르게 내놓은 비판이었다.

유 의원은 "이렇게 훌륭한 어록을 남긴 이재명 당 대표께서 방탄 3종 세트를 완성하려 한다"며 “(방탄 배지·방탄 당 대표 출마에 이어) 국회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주당 의원을 앞세워 방탄 특검을 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과거 ‘MB 수사’는 옹호했던 이 대표가 자신을 향한 수사는 ‘정치보복’이라 맞서는 태도를 물고 늘어진 것이다.

지난해 9월 대선 경선 당시 이 대표의 ‘대장동 특검’ 관련 발언도 국감장에 소환됐다. 유 의원이 튼 영상에서, 이 대표는 “특검 수사를 하면서 시간을 끌자고요? 역시 많이 해봤던 적폐세력들의 수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정부 시절 검찰 수사가 미진하다는 이유로 당시 야당이던 국민의힘이 대장동 개발의 민간 개발사업자 명칭을 딴 ‘화천대유 특검’을 요구하자, 이 대표가 폈던 반론이었다. 그런 이 대표가 지난 21일 거꾸로 ‘대장동 특검’을 제안한 데 대해 유 의원은 “대장동이란 동일한 사건에 대해 여당의 이재명 대표와 야당의 이재명 대표가 이렇게 바뀐다”고 날을 세웠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이날 라디오에서 이 대표의 과거 발언을 고리로 역공을 폈다. 주 원내대표는 “이 대표가 ‘특검하자는 사람이 범인이다’ ‘특검수사를 하면서 시간을 끄는 것이 적폐세력의 수법’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꼭 여기에 해당하는 케이스”라며 “검찰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던가, 검찰 수사에 문제가 크게 드러났을 때 특검 도입이 논의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과거의 발언들이 '말빚'과 부메랑처럼 자신을 겨누는 모양새인데,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 대표의 과거 거침없는 발언들로 민주당이 자가당착에 빠진 형국이 됐다”(수도권 재선 의원)는 한숨이 나왔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대장동 개발 사업 로비?특혜 의혹 관련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대장동 개발 사업 로비?특혜 의혹 관련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민주당이 제기했던 소위 '조작 수사 프레임'도 스텝이 완전히 꼬였다. 검찰이 석방을 빌미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을 회유·협박하며 조작 수사를 했다는 주장인데, 유 전 본부장이 석방 직후 각종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 대표와 민주당을 겨냥하자 민주당의 계산이 엉망이 됐다. 유 전 본부장은 “하나가 나왔다 싶으면 또 하나가, 그리고 또 하나가 나올 것이다. (이 대표를 )천천히 말려 죽일 것”이라며 연쇄 폭로전까지 예고했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관계자는 “유 전 본부장이 검찰에 의해 겁박당한 것이란 초반 방어 논리가 무너진 상황”이라며 “유 전 본부장이 직접 나서 이 대표를 정조준하는 양상이 계속되고 있지 않나”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매일 조간을 보며, 유 전 본부장 입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라며 “검찰 수사와 관련된 정보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유 전 본부장 발언이 시한폭탄처럼 느껴진다”고도 했다.

검찰 수사망이 한껏 조여들면서 친명계 내부에선 슬슬 ‘꼬리 자르기’ 조짐도 있다. 친명계 핵심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 통화에서 “설사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정진상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의 혐의가 사실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이 대표와는 별개”라며 “아랫사람 죄를 어떻게 윗사람이 다 책임지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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