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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중간재 꺾이고, 호주·말레이산 뜬다…산업계 “새 루트 뚫어라” 특명

중앙일보

입력

포스코가 지분투자한 호주 레이븐소프의 니켈광산. 사진 포스코

포스코가 지분투자한 호주 레이븐소프의 니켈광산. 사진 포스코

한국의 대중국 중간재 수입액이 점차 줄어드는 대신 대만·호주·말레이시아 등이 그 자리를 메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글로벌 공급망의 ‘쓴맛’을 경험한 데다 미국·중국 간 첨단 기술의 블록화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확산하면서다.

24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중간재는 지난 5월 99억8049만 달러(약 14조원)로 정점을 찍은 뒤 내림세를 보이면서 지난달엔 85억 달러(약 12조원)까지 하락했다.〈그래픽 참조〉

미국·일본으로부터 중간재 수입은 약한 우상향세를 보였고, 대만·호주·말레이시아발(發) 중간재 수입액은 눈에 띄게 늘었다. 대만은 올 1월 18억9764만 달러(약 2조7300억원)에서 지난달 24억6375만 달러(약 3조5400억원)로, 호주는 올 1월 15억1538만 달러(약 2조1800억원)에서 지난달 18억1880만 달러(약 2조6200억원)까지 커졌다.

특히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으로 영향을 받는 배터리 주요 원자재(흑연·리튬염·분리막·전해액·전구체 등)에서 두드러진다. 아직 중국산 수입액이 압도적이지만, 스위스·인도네시아·태국 등으로 떠오르고 있다. 통상 리스크가 선반영되고, 향후 원화 가치의 추가 하락이 예상되는 점 등을 미뤄볼 때 중국산 의존도를 줄이려는 시도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중국은 글로벌 원료 시장에서 ‘큰손’으로 통한다. 직접 광물을 생산하지 않아도 땅속에서 캐낸 광석을 가공해 원료로 만드는 ‘제련공정’에서 압도적 점유율을 보인다.

배터리의 핵심 광물인 리튬·코발트·니켈·망간의 제련공정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이뤄진다. 망간의 경우 90%가 중국에서 제련돼 주요국에 공급되고, 코발트와 리튬은 각각 70%, 65%에 달한다. 한국의 대중국 리튬 수입 비중은 64%이고, 수산화리튬은 84%에 달한다.

국내 산업계는 핵심 원재료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국의 대중 압박이 본격화하면서 이같은 움직임은 더욱 빨라지는 모양새다.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은 최근 호주 흑연업체 시라와 천연 흑연 공급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LG엔솔은 앞서 캐나다(황산코발트·탄산수산화리튬·리튬정광), 독일(수산화리튬), 호주(리튬정광) 등에서도 원재료 공급 계약을 맺었다.

SK온은 지난달 호주 업체와 리튬정광 공급 등에 대한 MOU를 체결했고, 캐나다·브라질·아르헨티나 등에서도 원재료 확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노광 공정에 사용되는 필수 원료인 네온(Ne) 가스 국산화를 확대하고 있다.

포스코는 호주·뉴칼레도니아 등에서 니켈, 아르헨티나에서 리튬 공급망을 확보했다. 이달 초엔 포스코홀딩스 이사회가 아르헨티나 염수 리튬 상용화 공장 2단계 사업에 10억9000만 달러(약 1조5000억원)의 투자 결정을 하기도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9일(현지시간) 28억 달러(약 4조원) 규모의 ‘미국산 배터리 원료 구상’을 발표한 만큼, 광물 등 핵심 원자재 공급망의 탈중국 현상은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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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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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정부와 산업계의 신중한 대응을 주문했다. 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국내 기업들이 미국 주도의 연대 벨트에 가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하루아침에 공급망을 대체하는 건 비현실적”이라며 “국제 정치와 비즈니스를 분리해 미·중 간 경제 관계 대안을 꼼꼼히 따져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경훈 무역협회 연구위원은 “최악의 경우 한국 산업계가 생산 역량과 생태계를 모두 잃을 우려가 있다”며 “국내에 기반을 유지하면 국가 경쟁력이나 고용·부가가치 창출 차원에서 의미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국가 차원에서 기술·인력을 지키기 위한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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