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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시진핑 시대’에 산다는 것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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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시진핑(習近平)의 집권 3기 시대가 열렸다. 23일 열린 중국 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당의 최고 지도자인 총서기로 다시 선출된 것이다. 이로써 지난 20여 년에 걸쳐 형성됐던 지도자 집권 10년의 관례가 깨졌다. 앞으로 5년 뒤 시진핑이 물러날 것이란 보장은 없다.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자신의 사람으로 가득 채웠다. 이는 중국의 권력 이양이 불안정 궤도로 진입하게 됐음을 말한다. 자칫 혼돈 속에 빠질 수 있다. 중국은 어디로 가나. 그런 중국이 우리에겐 어떤 영향을 미치나. 이 같은 중대한 물음과 마주해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게 있다.

시진핑 집권 3기 시대가 열렸다. 중국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 전원이 시진핑 사람으로 채워졌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진핑 집권 3기 시대가 열렸다. 중국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 전원이 시진핑 사람으로 채워졌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대(時代)’로서의 시진핑 집권기가 무얼 뜻하는지 잘 파악해야 한다는 점이다. 시진핑은 집권 2기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시대를 ‘신시대(新時代)’라 유난히 강조했다. 자신의 사상 이름도 그래서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이라 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 새로운 마음으로 새 출발 하려는 것이니 여겼다. 한데 이런 안이한 생각은 시진핑의 야심을 너무 얕보는 것이다. 시진핑이 ‘시대’를 말하는 건 자신의 시대가 앞선 시대와 다르다는 것이다. 앞선 시대란 누구의 시대를 말하나.
전임자인 후진타오(胡錦濤)를 가리키나? 아니면 그보다 앞선 장쩌민(江澤民)? 둘 다 맞고 둘 다 아니기도 하다. 맞는다는 건 후진타오와 장쩌민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맞지 않는다는 건 후와 장을 뛰어넘어 덩샤오핑(鄧小平) 시대까지 아우르는 까닭이다. 시진핑은 놀랍게도 덩샤오핑 시대와의 결별을 말하고 있다. 놀랍다는 건 시진핑이 2012년 총서기 취임 후 처음으로 나간 지방 시찰이 광둥(廣東)성이었고, 그곳에서 덩샤오핑 동상에 헌화하며 개혁개방을 외쳤기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데 이제 와서 덩샤오핑과 결별한다고? 틀리지 않아 보인다. 시진핑은 자신을 권좌에 앉힌 장쩌민-쩡칭훙(曾慶紅)의 상하이방(上海幇) 원로세력 또한 내친지 오래다. 늙어서도 물러나지 않고(老而不退), 물러나서도 쉼 없이(退而不休) 정치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며 노인의 정치 간여를 배제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이 이제까지 중국의 발전에 기여한 건 맞지만, 더는 자신의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게 시진핑의 판단이다. 그러고 보니 시진핑이 집권 2기 때 ‘신시대’를 외치며 중국이 직면한 ‘모순’이 달라졌다고 말한 게 짚인다.
덩샤오핑 시대의 모순은 생산력이 낙후해 인민의 물질적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계의 공장으로 변한 지금은 모순이 달라졌다고 시진핑은 말한다. 인민은 이제 아름다운 생활을 바라지만 그게 충분히 보장되지도 또 지역적으로 균형적이지도 않은 게 모순이라고 밝혔다. 모순이 달라지면 그걸 풀어야 할 해법도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자신은 덩샤오핑과는 다른 길을 걷겠다는 게 시진핑의 논리다. 이제 시진핑은 집권 3기 들어 자신의 행보를 구체화하고 있다.

중국 20차 당 대회 개막을 사흘 앞둔 지난 13일 베이징 도심의 한 다리에 “독재자 시진핑은 물러가라”는 글을 적은 플래카드가 걸려 충격을 안겼다. [연합뉴스]

중국 20차 당 대회 개막을 사흘 앞둔 지난 13일 베이징 도심의 한 다리에 “독재자 시진핑은 물러가라”는 글을 적은 플래카드가 걸려 충격을 안겼다. [연합뉴스]

이는 엄청난 변화를 뜻한다. 개혁개방 노선을 결정한 1978년 이래의 중국 행보가 바뀐다는 걸 의미한다. 아울러 한중 수교 또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이란 커다란 그림 속에 이뤄진 일이었던 만큼 우리와의 관계 역시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우리가 우선 관심 가져야 할 부분은 수교의 기초가 되기도 했던 경제와 안보의 두 분야다. 먼저 경제와 관련해 중국에 커다란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개혁개방의 수혜를 봤던 민영기업이 속속 퇴장 중이다. 반면 국유기업은 강(强)-강(强)연합에 의해 신(新)국유기업이 탄생하고 있다.
덩샤오핑이 시장경제의 효율을 가져다 쓰기를 바랐다면, 시진핑은 국가 주도의 독점을 강조한다. 계획경제의 냄새가 짙다. 21세기판 마오쩌둥(毛澤東) 시대로의 회귀란 말을 듣는다. 그런 시진핑 경제가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우리로선 그런 중국 경제 상황의 변화를 어떻게 이용할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이제까지의 중국 시장 접근법으로는 해결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23일 2012년과 2017년에 이어 세 번째로 중국 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돼 앞으로 5년 더 중국을 이끌게 됐다. [AP=뉴시스]

시진핑은 23일 2012년과 2017년에 이어 세 번째로 중국 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돼 앞으로 5년 더 중국을 이끌게 됐다. [AP=뉴시스]

다른 하나는 안보 문제다.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을 위해 대외적으로 몸을 낮췄다. 흔히 어둠 속에서 조용히 힘을 기른다는 성어 ‘도광양회(韜光養晦)’로 표현된다. 이런 기조 속에서 중국은 주한미군의 존재를 용인했다. 그러나 시진핑은 그런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태평양은 매우 커 미·중 두 나라의 이익을 모두 담을 수 있다”며 태평양 분할론을 제시하는가 하면, 미국의 힘이 쇠퇴하고 중국의 국운이 뻗는 ‘100년에 없을 대변국(百年未有之大變局)’ 시기를 맞았다고 흥분 중이다.
시진핑은 현재 미국과의 갈등에서 겪는 고통은 중국이 세계 최강이 되기 위해 언젠가는 한 번쯤 겪어야 할 성장통(成長痛) 정도로 치부한다. 이 같은 미국과의 대결 구도 속에 북한 비핵화나 한반도의 평화로운 통일에 대한 협조가 이뤄질 리 만무하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중국의 지역 패권 움직임이 가시화되며 서해에 출몰하는 중국 해군의 숫자가 늘었다. 시진핑 정부의 외교 책임자는“소국은 대국을 따라야 한다”고 압박한다. 수교 30년을 맞은 한중 관계에 먹구름이 가득 몰려오는 형국이다.

중국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가 끝났지만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가 끝났지만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문제는 이 같은 시진핑 ‘시대’가 이제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진핑 이전 중국엔 두 개의 30년 시대가 있었다. 마오쩌둥 시대와 덩샤오핑 시대(장쩌민과 후진타오 집권 포함)다. 시진핑이 자신의 ‘시대’라 말하는 건 마오와덩을 잇는 세 번째 30년을 가리킨다. 지난 10년 집권에 이어 앞으로 10년 정도 더 권좌를 지키고, 그다음 10년은 수렴청정하겠다는 의미가 강하다. ‘시진핑 시대’는 우리에겐 도전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시진핑의 일거수일투족을 연구하며 우리의 살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당 최고 지도부 전원을 자신의 사람으로 채운 시진핑 #덩샤오핑 개혁개방 노선과 결별해 다른 길 걸을 전망 #한국엔 기회보다 도전 요인 많아 충돌 가능성 우려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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