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 차이나 중국읽기

중국, 개혁개방서 후퇴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중국이 20차 당 대회 이후 거대한 변혁에 직면할 전망이다. 개혁개방(改革開放)의 길을 계속 견지할 것이냐, 아니면 폐관쇄국(閉關鎖國)의 새로운 길을 걷게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중국의 여름 정치로 불리는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가 끝난 지난 8월 16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북(北)으로 향했다. 랴오닝(遼寧)성의 랴오선(遼瀋)전투기념관을 찾아 1948년 국공내전(國共內戰)의 분수령을 이루게 한 공산군의 승리를 기렸다. 같은 날 중국의 2인자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남(南)으로 내려갔다. 광둥(廣東)성에서 덩샤오핑(鄧小平) 동상에 헌화하며 개혁개방을 강조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8월 랴오선전투기념관 시찰 시 옛 인민해방군 전사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8월 랴오선전투기념관 시찰 시 옛 인민해방군 전사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한데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리커창은 “개혁개방은 전진해야 한다. 황하(黃河)와 장강(長江)은 역류할 수 없다”고 외쳤는데 중국 관영 매체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후 리커창 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개혁개방을 외치기 시작했다. 지난달 22일 일본 경제계 대표와 만났을 때, 또 지난달 30일 외국 전문가들에게 ‘중국정부우의상’을 시상하는 자리에서도 개혁개방을 주장했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78년 덩샤오핑 시대가 열린 이래 지금까지 계속돼온 중국의 행보다. 그런데 리커창 총리가 이를 반복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왜? 개혁개방 기조가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미 디플로맷의 편집장 새넌티에지는 리커창의 광둥성 방문이 마치 ‘고별 여행’ 같다고 평했다. 또 중국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이 리 총리가 소리치는 ‘개혁개방 계속’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임기가 끝나가는 시점에 외치는 단말마 같다는 이야기다. 리커창은 그의 전임자인 원자바오(溫家寶)가 임기 말 ‘정치체제 개혁’을 강조했던 걸 떠올리게 한다. 원자바오는 총리로서 집중해야 할 경제 문제 대신 “정치체제를 개혁하지 않으면 문혁(文革)이 다시 발생한다”는 경고음을 발해 당시 뜻 모를 주장을 한다는 핀잔 아닌 핀잔을 받았다. 최근 리커창 모습이 원자바오를 닮은 듯하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지난 2015년 1월에도 광둥성 선전의 롄화산 공원을 찾아 덩샤오핑 동상에 헌화했다. [중국 중신망 캡처]

리커창 중국 총리는 지난 2015년 1월에도 광둥성 선전의 롄화산 공원을 찾아 덩샤오핑 동상에 헌화했다. [중국 중신망 캡처]

중국의 개혁개방은 왜 흔들리나. 중국은 지난 40여 년 동안 줄기차게 개혁개방을 추진했지만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나는 개혁개방으로 쌓은 부(富)가 어디로 갔는가 문제다. 국고 대신 민간으로 흘러갔다. 다른 하나는 부의 분배 문제다.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 간의 갈등이 커진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건가. 민간에 풀어준 권력을 다시 회수해 나라가 부를 쌓고, 이를 토대로 공동부유(共同富裕)를 이루겠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그래서인가, 지난달 15일 중국 공산당 잡지 ‘구시(求是)’에 실린 시진핑의 글이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일관되게 견지하고 발전시키자’는 제목의 글에서 시진핑은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는 공산당이 인민을 영도해 진행하는 위대한 사회혁명의 성과”라고 주장했다. 문혁 이후 금기시돼온 ‘혁명’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시진핑이 말하는 위대한 사회혁명은 무슨 뜻인가. 한 중공 당사 학자에 따르면 “중국은 20차 당 대회 이후 개혁개방 수정에 나서는데 이 수정 과정이 곧 위대한 사회혁명”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런 당내 분위기를 염려해 지난달 중순 105세의 원로 쑹핑(宋平)이 개혁개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말이 나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8월 16일 랴오닝성 진저우시를 찾아 랴오선전투기념관을 둘러보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8월 16일 랴오닝성 진저우시를 찾아 랴오선전투기념관을 둘러보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중국이 개혁개방 대신 문을 닫아거는 게 아닌가 하는 관측은 지난 8월 ‘폐관쇄국’ 용어에 대한 긍정적인 연구가 나오면서 불거지기도 했다. 중국사회과학원 산하 중국역사연구원이 ‘명청(明淸)시기폐관쇄국 문제를 새롭게 탐구한다’는 논문을 발표한 것이다. 폐관은 ‘관폐성문(關閉城門, 성문을 걸어 잠그다)’의 뜻으로 폐관쇄국은 외부와 접촉하지 않는 전형적인 고립주의 정책을 일컫는다. 명과 청을 서구에 뒤처지게 한 결정적 이유로 지목된다.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한데 중국역사연구원의 과제조(課題組)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당시 서방의 식민침략 위협에 직면해 취한 방어적인 자아보호 책략’이라는 것이다. 긍정적 의미를 강조했다.
중국역사연구원이 과제를 받아 수행한 연구라는 말인데 여기엔 여러 배경이 있어 보인다. 중국은 현재 미국의 디커플링(탈동조화) 압력에 시달려 각 분야에서 고립되는 상황이다. 중국은 거친 외교인 전랑(戰狼) 외교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편에 서 있다가 서방 각국으로부터도 외면을 받는 상황이다. 또 제로 코로나 방침에 따라 중국에선 엄격한 봉쇄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중국으로선 자의 반타의 반으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 대한 합리화 차원에서 그 이론적 토대 마련을 위해 명청 시기의 폐관쇄국을 새롭게 해석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는 것이다.

리커창 중국 총리가 지난 8월 16~17일 광둥성 선전 시찰 때 항만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리커창 중국 총리가 지난 8월 16~17일 광둥성 선전 시찰 때 항만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중국이 개혁개방에서 후퇴한다면 중국 자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파장이 미칠 것이다. 일각에선 중국이 계획경제 시대로 돌아갈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시장경제 도입을 포기하지는 않고 대신 국유기업 강화의 조치가 더욱 거세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아무튼 현재 중국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은 개혁개방에 유리한 것은 아니다. 우리 기업이나 국가 모두 중국 공산당 20차 당 대회 이후 중국이 나아가게 될 방향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것이다.

중국 20차 당 대회 이후 개혁개방서 후퇴할 듯 #명청 시기 '폐관쇄국' 정책 긍정 평가하면서 #개혁개방 수정하는 위대한 사회혁명 강조 중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