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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파 전 두목 팔순잔치…호텔 로비 앞 도열해 “형님” 깍두기 인사는 없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부산시 최대 폭력조직인 칠성파 전 두목 A씨의 팔순잔치가 23일 부산의 한 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오후 A씨가 관계자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입장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부산시 최대 폭력조직인 칠성파 전 두목 A씨의 팔순잔치가 23일 부산의 한 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오후 A씨가 관계자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입장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좋은 날 밖에서 아는 행님을 만나믄 인사가 깍듯해야 되는데, 옳게 하는 아들이 없네.”

23일 오후 4시쯤 부산 중심가의 한 호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던 양복 차림의 반백발 장년 남성이 불만스럽단 투로 이렇게 내뱉었다. 뒤따르던 건장한 남성들이 짐짓 송구하다는 듯한 표정과 추임새로 장단을 맞췄다.

이 호텔에선 이날 부산지역 최대 계파로 꼽히는 폭력조직 ‘칠성파’ 전 두목 A씨의 팔순잔치가 열렸다. 전·현직 조직원 등으로 추정되는 정장 차림의 남성 수백 명이 모였다. A씨는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영향력이 상당하다고 한다.

하지만 호텔 로비 앞부터 일렬로 도열해 “형님” 하고 큰소리를 외치며 허리를 90도 가까이 굽히는 그들만의 인사(일명 깍두기 인사)는 볼 수 없었다. 1층 주요 출입구 두 곳을 포함해 이 호텔 안팎엔 경찰이 집중적으로 배치돼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이 1층 로비에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동안 3층 연회장 앞 복도에선 “형님” 하며 ‘깍두기 인사’가 이뤄졌다. 당시 3층 연회장엔 A씨 팔순 행사 하나뿐이었다. 경찰은 여기까진 통제하지 않았다.

연회장 앞 복도 벽면엔 연예인과 ‘주먹’ 출신 종교인 등 유명인 이름이 적힌 화환이 가득했다. A씨 팔순엔 약 300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경찰 예상대로 팔도의 사투리가 뒤섞였다.

이날 오후 4시20분쯤 휠체어를 탄 A씨가 연회장으로 들어서자 입구 부근에서 대기했던 인파가 뒤따랐다. 이들은 “관심을 접어 달라” “초대되지 않은 이들은 나가 달라”는 말로 경찰과 취재진에 퇴거를 요청했다.

A씨 산수연(傘壽宴)은 다행히 반대파 조직원 난입이나 위화감 조성 등 우려했던 돌발상황 없이 오후 7시쯤 끝났다. 경찰의 주시와 사전 경고가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부산경찰청은 A씨 산수연을 파악하고 칠성파의 현 실세들과 사전 면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경찰은 특히 ‘깍두기 인사’ 등 위화감 조성 등을 지양하라고 경고했다.

지난 8월에는 부산경찰청이 지역 양대조직인 칠성파와 ‘신20세기파’ 조직원을 무더기 검거한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1970~80년대 조직된 이래 수십 년간 세력 다툼을 이어온 두 조직은 지난해에도 번화가와 장례식장 등지에서 패싸움을 일삼았다. 경찰 추적으로 73명이 검거됐다. 이들 가운데 신20세기파 행동대장격으로 차기 실세라고 평가받던 2명이 지난 14일 각각 징역 3년6월과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사전에 면담, 경고 조치한 것이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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