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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 무리한 '전임지사 지우기' 시도에 레고랜드 사태 키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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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 강원도지사. 사진 강원도

김진태 강원도지사. 사진 강원도

강원도 레고랜드 개발 관련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 최종 부도 처리되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지자체가 대신 갚기로 지급보증 계약이 돼 있는 기업어음의 부도에 가뜩이나 경색된 자금시장이 급속도로 얼어붙으면서다. 강원도가 뒤늦게 2050억원 전액 상환계획을 밝혔지만, 시장의 불안감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배경엔 전임 지사가 한 레고랜드 사업을 들추다 예기치 못한 상황을 초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진태 "내년 1월 29일까지 2050억원 상환"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지난 21일 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도개발공사(GJC)의 변제불능으로 인한 보증채무 2050억원은 예산을 편성해 늦어도 내년 1월 29일까지 강원도가 상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채권시장의 개별 투자자를 보호하고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라며 “더는 불필요한 혼란이 없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다만 유감표명은 하지 않았다.

지난 5월 8일 오전 강원 춘천시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가 입장객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8일 오전 강원 춘천시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가 입장객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道입장 만만치 않을 재정부담 

강원도는 새로 지방채를 발행하지 않고 자체 예산으로 2050억원을 전액 충당할 계획이다. 이미 한차례 보증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인 만큼 채권을 발행해도 시장에서 소화될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강원도의 재정이 넉넉한 편이 아니라는 점이다. 재정자립도가 24.7%수준으로 전국 평균(45.3%)에 한참 못미친다. 올해 강원도 본예산은 7조1161억원(추경 제외) 규모인데, 인건비·복지비 등을 뺀 실제 가용재원은 훨씬 적다. 2050억원이 결코 만만치 않단 의미다. 상환을 위해선 내년도 사업 규모를 줄여야 한다.

GJC는 레고랜드를 조성하기 위해 만든 회사다. 2020년 GJC는 레고랜드 주변 도로 등 기반시설 공사를 위해 돈이 필요하자 특수목적법인(SPC)인 ‘아이원제일차’를 설립하고 이 회사 명의로 2050억원 규모의 ABCP를 발행했다. 만기는 2022년 9월 28일. 실적이 전무한 GJC가 발행한 채권이지만 강원도가 보증을 선 덕에 신용평가사로부터 A1 등급을 부여받았다. 주간사인 BNK투자증권이 인수했다가 현재 증권사 10곳과 자산운용사 1곳에 팔린 상태다. GJC는 레고랜드 주변 부지를 팔아 ABCP를 갚을 계획이었으나 결국 실패했다. 현재 GJC는 자본잠식 상태다.

패닉 빠진 채권시장 

그래도 강원도가 대신 갚기로 약속한 만큼 만기를 연장하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예상됐다. 실제 강원도가 채권단과 협상을 벌여 만기를 내년 1월까지 연장하고 넉달치 이자도 미리 낸 상태였다.

그런데 1차 만기일을 앞둔 지난달 28일 강원도가 GJC에 대해 기업회생을 신청할 방침을 밝히면서 혼란이 시작됐다. 보증을 선 곳에서 돈을 갚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치자 신용평가회사는 이 채권의 등급을 D등급으로 강등했다. 채권단은 “신용등급 하락은 만기 전에 대출을 회수할 수 있는 기한이익상실(EOD) 조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결국 ABCP는 부도처리 됐고, 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실제 레고랜드 사태 이후 “지방자치단체의 보증을 신뢰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시장에 확산하면서 투자심리는 날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기업들도 줄줄이 회사채 발행에 실패하고 있는 일명 ‘돈맥경화’가 심각한 상황이다.

시장에선 강원도의 허술한 업무처리 방식이 사태를 키운 것으로 본다. 김진태 지사는 지난달 28일 회생절차 신청을 언급하며 “강원도가 보증채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가면 채무가 조정돼 빚 규모가 어느정도 줄어들 것을 기대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강원도 관계자는 “당시 회생신청을 한 것이 아니었고, 이미 이자도 미리 냈기 때문에 곧바로 기한이익상실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고 밝혔다.

강원 춘천시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 모습. 연합뉴스

강원 춘천시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 모습. 연합뉴스

강원도 "마치 상환 회피하려던 것 처럼 비쳐" 

강원도가 이처럼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 결정을 하면서 사전에 기재부나 금융당국과 협의하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에 대해 강원도 관계자는 “기업 회생이라는 것이 중앙부처까지 협의해서 결정할 내용은 아니다. (다만) 이렇게까지 금융권에 파장이 일지는 예상하지 못했다”며 “‘회피하려는 목적’이라는 오해가 생기면서 불안감이 증폭됐다고 본다. 하지만 그런 의도는 없었다. 또 채무를 회피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도청 안팎에선 ‘전임 지사 지우기’가 작용한 것 아니냔 분석도 조심스레 나온다. 김 지사는 당선 후 전임 최문순 도정이 치적으로 내세웠던 레고랜드 사업과 알펜시아 매각을 집중적으로 들여다 보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혀온 바 있다. 심각한 자금난을 겪었던 레고랜드의 문제점을 지적하려 ‘회생 신청 카드’를 꺼낸 것 아니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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