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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누가 PF 해주나요, 담보대출도 꺼려요”…화약고 된 PF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증권사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담당자인 A씨는 요즘 지방 출장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PF 만기나 차환을 앞둔 건설 현장을 찾아 공사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해당 업체 본사를 다시 찾아 독려하기 위해서다. 그나마 차환을 독려하는 경우는 수월하다. 공사가 흐지부지해 상환 통보를 하다가 멱살을 잡힌 적도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분기 증권사의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은 4.7%다. 지난해 말(3.7%)보다 1.0%포인트 상승했다. 지난 2019년 말(1.3%)과 비교하면 세배 넘게 높아졌다. A씨는“최근 부동산 경기가 침체한 데다 시행사(디벨로퍼)도 원자재값 인상으로 몸을 사리는 분위기"라며 "신규 유치했다가 연체가 나면 손해가 더 커서 본사 차원에서도 관리만 집중하라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높은 금리, 부동산 경기 침체에 채권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셔터스톡

높은 금리, 부동산 경기 침체에 채권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셔터스톡

서울 강남구에서 캐피탈사를 운영하는 B씨는 올해 들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B씨는 그동안 주로 소규모 부동산 PF나 담보 대출을 취급했다. 하지만 금리가 뛰면서 조달금리가 연 7% 이상 오르고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으며 신규 대출은 아예 취급하지 않고 있다.

B씨는 “간판만 걸어놓고 이미 진행한 대출 이자를 받으면서 만기일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거래 절벽’이라 담보로 잡은 부동산을 처리해서 현금화하기도 쉽지 않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신규 PF는 자살행위”라고 말했다.

치솟는 금리에 부동산 시장 침체가 부실 PF의 위험을 키우고 있다. 커지는 PF의 위험으로 채권 시장을 넘어 금융업계 전반까지 긴장모드다. ‘부동산 시행업체→PF 대출→금융업체 수익’으로 이어지는 순환 고리가 삐거덕거리며 ‘줄도산 위기설’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PF는 신용이나 담보를 기준으로 돈을 빌려주는 일반 대출과는 다르다. 사업 가치(사업성)가 대출 근거다. 해당 업체가 ‘앞으로 지을 부동산의 가치’를 저마다의 기준으로 평가한다. 금융업체별로 PF 금액이 달라질 수 있는 이유다.

게다가 국내에서 PF 없이는 사실상 부동산 사업을 벌이기 쉽지 않다. 수백억 원에서 수조 원에 이르는 사업비를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아서다. PF가 부동산 사정의 ‘시작이자 끝’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금융업체 입장에서 PF는 짭짤한 수익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전체 금융권(은행·보험·여전·저축은행·증권 등)의 PF 잔액은 112조2000억원이다. 이 중 여전사나 저축은행, 증권 등 비은행권의 PF(83조9000억원)가 전체 75% 정도를 차지한다.

개인 여신이 쉽지 않은 비은행권 입장에서 사업 다각화를 모색할 때 PF는 매력적인 영역이다. 우선 일반 대출보다 수익이 많다. 대출금이 수백억 원에서 수조 원에 이르는 데다, 이자도 연 10%를 웃돈다. 해당 부동산이 다 팔리고 나면 대출 조건에 따라 30%가 넘는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물론 위험도 크다. 공사 진행 중에 시공사의 경영이 악화하거나 완공한 뒤에 시행사가 해당 부동산을 다 팔지 못하면 이자는커녕 원금 회수도 어려울 수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저축은행 PF 사업장 1174곳을 점검한 결과 지난 7월 말 기준 실제 공사가 중단된 PF 사업장은 24곳이었다. 공정률과 분양률 등이 저조한 ‘요주의 사업장’의 대출액도 2조2000억원이나 됐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저축은행 업계와 간담회에서 “PF 사업장의 공사 중단‧지연 가능성에 대비해 현장실사 등 점검주기를 단축하고 공정률‧분양률 등을 반영한 사업성 평가를 철저히 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런 상황에서 ‘레고랜드 사태’는 시장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트리거(방아쇠)가 됐다. 2020년 테마파크인 레고랜드 사업 주체인 강원중도개발공사(GJC)가 레고랜드 건설자금 조달을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회사(SPC)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2050억원의 만기가 돌아왔지만, 김진태 강원지사가 이를 갚지 않겠다고 밝혔다.

당시 강원도가 해당 채권에 대한 지급 보증을 섰는데 돈을 갚는 대신 GJC에 대해 기업회생을 신청하겠다고 나서며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한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국가가 담보로 한 빚을 갚지 않겠다고 나섰으니 사실상 국채도 휴지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채권 시장 엑소더스(탈출)는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라고 말했다.

시행사도 죽을 맛이다. 자금을 구할 곳이 없어서다. 서울 마포에서 주택사업을 하는 C씨는 저축은행에서 받은 100억원의 PF 차환에 실패했다. C씨는 “기존 대출금의 반만이라도 차환해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해 집에다 부모와 형제, 친척들에 중학생 자녀의 예금통장까지 동원해 겨우 부도를 면했다”며 “당장 공사를 끝내도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아 제때 팔 수 있을지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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