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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마약사범 3배 늘었다…식약처가 간판부터 때린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7일 밤 서초경찰서·서초소방서·서울시청·서초구청 공무원들이 합동 점검 및 단속을 위해 서울 강남의 한 클럽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날 합동단속반은 최근 늘고 있는 마약 및 몰카 등을 중점적으로 단속했다.

지난 7일 밤 서초경찰서·서초소방서·서울시청·서초구청 공무원들이 합동 점검 및 단속을 위해 서울 강남의 한 클럽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날 합동단속반은 최근 늘고 있는 마약 및 몰카 등을 중점적으로 단속했다.

“구글에 ‘XXX(마약 관련 은어)’를 친 다음에 아무거나 눌러서 하라는대로 했어요.”
 최근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된 20대 남성에게 경찰이 구매 경로를 묻자 돌아온 답이다. 이 남성은 구글에 필로폰 주사를 뜻하는 은어를 검색한 뒤 나온 텔레그램 채널과 접촉해 필로폰 0.5g을 44만원에 샀다고 한다. 비트코인 수수료 10% 포함 금액이다. 판매자는 투약 방법을 안내하는 동영상도 텔레그램으로 제공했다. 마약 수사를 전담하는 김모 수사관은 “젊은 층에서 마약 구매는 온라인 쇼핑 만큼이나 손쉬운 일이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구글에 경찰 등이 귀띔한 은어를 치니 마약을 유통하는 텔레그램 채팅방 수십 개가 검색됐다. 이들은 입금 방법이나 전달 장소 등을 ‘메뉴판’이라고 부르며 일목요연하게 정리까지 해놨다.

1020세대 젊은 층 파고드는 마약

경기 의정부경찰서가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75명을 검거해 이중 상습 판매자와 투약자 7명을 구속했다고 7일 밝혔다. 사진은 압수품들. 연합뉴스

경기 의정부경찰서가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75명을 검거해 이중 상습 판매자와 투약자 7명을 구속했다고 7일 밝혔다. 사진은 압수품들. 연합뉴스

 10대와 20대 투약자 증가는 최근 마약 범죄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지난 19일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04명이던 10대 마약 사범은 지난해 309명으로 3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20대 마약 사범은 1392명에서 3507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1~8월) 검거된 10대와 20대 마약 사범은 각각 227명과 2664명으로 파악됐다. 연말까지 검거인원은 지난해 숫자를 훌쩍 뛰어넘을 전망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2026년에 예정된 마약류 실태조사와는 별도로 청소년 대상의 실태조사를 내년에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추적이 어려운 높은 보안성으로 정평이 난 메신저 ‘텔레그램’은 1020으로 마약이 흐러드는 주된 창구로 확인되고 있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로부터 받은 마약류 불법 유통·판매 점검 결과에 따르면 지난 4~8월 넉 달 동안 거래된 마약 불법 유통·판매 1949건 가운데 72.8%(1419건)가 텔레그램을 통해 이뤄졌다. 지난 8월 서울 잠실경기장에서 열린 일렉트로닉댄스뮤직(EDM) 페스티벌에서 LSD·대마초·엑스터시 등을 함께 투약한 혐의로 검거된 20대 5명은 모두 “텔레그램을 통해 마약을 샀다”고 진술했다. 마약 전문수사관 A씨는 “판매자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마약을 살 수 있게 됐다”며 “텔레그램 등 SNS가 마약이 국민 일상 구석구석에 침투하는 주된 경로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검색으로 확인한 텔레그램 채널에는 각종 구매 후기가 넘쳐난다. 기자가 접속한 한 채널은 “오랜 무사고 딜러 경험에서 나오는 찐 바이브로 손님들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홍보했다. 이른바 ‘던지기 수법’을 통해 마약을 주고받을 때 지켜야 할 수칙을 공지해둔 곳도 있다. “좌표를 받은 뒤 물건을 가지러 갈 때 좌표지 최소 500m 전 주차해 걸어가라” “주변에 있는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면서 안전장치를 만들어라” 등이다. 경찰 관계자는 “던지기 수법이 많이 알려지며 관련 각종 꼼수도 판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청소년들 사이서 힙한 문화로 인식”

최근 국내 마약류 범죄가 증가하는 가운데 '마약김밥' 등 마약이라는 표현을 쓰는 식품 광고에 대한 규제가 추진되고 있다. 사진은 19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내 마약김밥집 모습. 뉴시스

최근 국내 마약류 범죄가 증가하는 가운데 '마약김밥' 등 마약이라는 표현을 쓰는 식품 광고에 대한 규제가 추진되고 있다. 사진은 19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내 마약김밥집 모습. 뉴시스

 SNS에 ‘XX(엑스터시)’나 ‘XXX(주사기)’ 등 마약 관련 은어를 검색하면 구매를 유도하기 위한 발랄한 이모티콘이나 화려한 이미지로 포장된 구매 채널을 확인할 수 있다. 고등학생 임모(17)군은 “트위터에 뜨는 마약 관련 홍보 글만 보면 범죄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라는 인식을 덜어주기 위해 마약 판매·유통책은 주로 친근한 느낌을 주곤 한다”고 했다. 텔레그램 채널들은 “정신적 안정” “고통 경감” “부작용 별로 없음”을 내세우며 마약을 판매하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부탄가스나 본드가 1980년대 비행 청소년들의 일탈의 표상이었다면 지금은 마약이 그런 의미”라고 말했다. 대학생 때 대마초 투약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경험이 있는 이모씨는 “유학생 등 무리에서 잘나가는 애들이 ‘떨(대마초 은어)’을 자랑하길래 호기심이 생겨 마약에 손을 댔다”고 털어놨다. 지난 14일「마약·민생침해범죄 총력대응」계획을 발표한 대검찰청은 “일부 계층에서는 마약을 힙(hip)한 문화로 받아들이는 경향까지 있어 마약류 전파가 빨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는 뒤늦게 마약에 대한 경각심 자극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마약 김밥’ ‘마약 떡볶이’ 등 마약이라는 표현을 쓰는 식품 표시·광고에 대한 규제를 추진하고 있다. 윤흥희 한성대 마약알코올학과 교수(전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 팀장)는 “마약뿐 아니라 마약류 진통제까지 1020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퍼지는 게 현실”이라며 “5세 이후부터 약물 사용 방법을 교육하는 영국 등 선진국 사례처럼 마약에 대한 위해성이나 부작용을 어릴 때부터 교육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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