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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혈세 1900억 날린것" IT석학이 때린 '정부 복지망 참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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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 명예교수가 지난 19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중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 개발 업체에 대한 자료를 보고 있다. 이우림 기자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 명예교수가 지난 19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중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 개발 업체에 대한 자료를 보고 있다. 이우림 기자

“시스템 개편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건 정말 간단해요. 딱 두 가지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3초 안에, 정확한 결과가 나오면 됩니다. 이 기본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면 완전히 실패한 거죠.”  

국내 컴퓨터 데이터베이스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 명예교수(69)는 최근논란이 된 보건복지부의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 오류 문제를 이렇게 설명했다. 문 교수는 “(데이터)통합이라고 해놓고 무늬만 통합을 해놨으니 결과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차세대 사회보장시스템 사업은 사회복지와 관련된 정부 시스템 5개를 3개로 통합·재구축하는 사업이다. 정부가 3년(2020년 4월~2022년 12월)간 사업비 총 1907억원을 투입했다. LG CNS가 한국정보기술, VTW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업을 따냈다. 지난해 9월 첫 개통했고, 올해 1월 2차 개통 예정이었으나 개발 미흡으로 3차례 연기되다 8개월 뒤인 지난달 6일 개통했다. 하지만 개통 첫날부터 오류가 이어졌고 한 달 만에 10만건에 달하는 오류 신고가 접수됐다. 임대아파트 입주자 선정이 미뤄지고, 아동수당·주거급여 등 복지 수당이 제대 지급되지 않는 등의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 최초의 전산학 박사이자 세계 3대 학회 중 하나인 유럽IT학회의 아시아 대표이사를 역임한 문 교수를 지난 19일 만나 한 달째 오류가 이어지고 있는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의 개편과정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짚어봤다.

오류 원인을 진단한다면
초기 데이터 설계 부실이 시공 부실까지 초래했다. 복지부는 기존 5개의 대형 시스템을 3개로 통합ㆍ재구축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애초에 이를 통합하는 하나의 거대한 데이터 지도가 설계돼 있었다면 그에 맞춰 그대로 코딩을 하면 되는데 설계도가 없다 보니 따로따로 분절돼 개발이 된 거다. 전국 도로 지도를 만드는 상황이라고 가정한다면 전체 통합 설계도 없이 각 지방 도로 지도를 따로따로 만든 뒤 이를 그대로 합쳐 버린 격이다. 시작이 잘못됐으니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복지부는 개발 인력 이탈을 원인으로 꼽는다
개발 인력이나 사업 기간 부족 등은 부차적인 문제다. 그게 오류의 원인으로 지목될 수 없다. 설계만 제대로 됐더라면 그에 따라 코딩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의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의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하도급 업체가 총 53곳이다. 일반적인 일인가?
기가 막히지만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고질적인 병폐다. 특히 공공기관 수주 건의 경우 사업비가 민간에 비해 적기 때문에 하도급 업체들에 맡겨 인건비를 절약한다. 하지만 53곳으로 분절된 걸 보면 완전 누더기가 된 거다. 돈이 남지 않는 발주이기 때문에 책임감 없이 맡겨버린 건데 이렇게 하도급을 주게 될 경우 개발자들 역량이 현격하게 떨어진다. 53개가 아닌 5개 정도 업체에 하도급을 줬으면 적당한 정도였다고 본다.

문 교수는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입수한 ‘담당 업체별 세부 업무명’ 자료를 살펴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53개 업무 담당 리스트에 데이터 설계와 관련된 업무를 담당한 곳은 한 곳 뿐”이라고 하던 문 교수는 해당 기업 홈페이지에 들어가 업무 분야를 살펴본 뒤 “이곳도 데이터 설계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설계 인력이 0명”이라며 “복지부가 발주할 때부터 데이터 통합 의지가 없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데이터 양이 워낙 방대했다고 하던데
공공기관을 기준으로는 그렇겠지만 민간기업과 비교해 매우 적은 수준이다. 기업의 경우 워낙 양이 방대해 예산이 조 단위가 넘어가기도 한다.  

이번 시스템 개편은 개통 전 테스트 결과에서부터 참사가 예고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6차 테스트 결과에서 처리 성공률이 88.4%였는데 무리해서 개통을 했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시험 운영 때 92% 정도의 처리율이 나와서 남은 3주 동안 수정이 완료될 것으로 전망하고 개통했다고 해명했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입수한 6차 테스트 결과다. 인프라/통합 부분은 40~50%대를 기록했다. [의원실 제공]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입수한 6차 테스트 결과다. 인프라/통합 부분은 40~50%대를 기록했다. [의원실 제공]

테스트 결과를 보면 개통해도 될 정도로 판단되나
말도 안 된다. 99%가 나와도 모자를 판이다. 특히 6차 테스트 결과를 보면 인프라/통합 부분은 수행률과 성공률, 결함 조치율 모두 40~50%대의 성적인데 (개통 직전에)있을 수 없는 수치다.
10월 중 정상화시키겠다고 했는데 가능할까
불가능해보인다. 혈세 1900억원을 날렸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쓰던 서버를 가져와 해결된 것처럼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 투입된 돈은 아깝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전 서버로 돌아가야 한다고 본다. 이 정도 오류가 난 상황이면 폐기를 하는 게 옳다. 지금은 10만 건이지만 사용하다 보면 수십, 수백만 건이 터질 거고 거기에 들어가는 인력이나 예산 낭비가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시스템 개편은 실제 민원인들이 지급될 돈을 못 받으니까 수면 위로 올라온 경우인데 오히려 곪아 터질 게 빨리 드러나 다행이라고 본다. 원점에서 새로 설계해야 한다.
재발 방지책은
이런 문제는 정부 시스템 개편 때마다 반복돼왔다. 발주 기관이 손 놓고 관리·감독을 안하고 있었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결국 프로젝트 전반을 조정하고 규제하는 조직이 필요하다. 발주한 기관 산하에 있어선 안되고 총리급 혹은 적어도 부총리급에서 규제하는 곳을 만들어 프로젝트 전반의 데이터 설계를 지휘하고 중간중간 진행 상황을 체크해야 한다. 그래야 사업을 의뢰한 공공기관도, 사업을 수주한 기업들도 정신 차리고 개발에 뛰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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