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국 ‘십호장’ 도입…10가구마다 감시자 둬 주민통제 강화 [시진핑 시대 ③]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지난 15일 베이징 영화자료관 건물 화장실에 ‘반독재’ ‘반핵산’(반PCR)이라고 적힌 낙서가 발견됐다. [트위터 캡처]

지난 15일 베이징 영화자료관 건물 화장실에 ‘반독재’ ‘반핵산’(반PCR)이라고 적힌 낙서가 발견됐다. [트위터 캡처]

지난달 21일 쓰촨(四川)성 쯔궁(自貢)시에서 ‘십호장’(十戶長) 모집 통지가 나왔다.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10가구당 1명씩 관리자를 뽑겠다는 것이다. 통지문에는 2013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담화문이 인용됐다. “지역 사회는 이웃과 연계해 도시에 대한 정밀한 관리 수준을 높이고 성숙한 사회로의 발전을 촉진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당대회서 ‘격자화 관리’ 단어 첫 등장

당 기관지 쓰촨일보는 십호장에 대해 “당 조직과 각 가구 및 주민 여론을 연결하는 다리이며 방역 관리와 사회 통제의 최전방”이라고 표현했다. 중앙당의 방침을 국민 최 밑단까지 하달하고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세포조직’이란 얘기다. 이미 지난해 12월 윈난(雲南)성 쿤밍(昆明)시,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에서도 십호장이 등장했다. 모집 공고에 따르면 선발 요건은 ‘사상이 정직한 자’로 당에 대한 충성도가 기준이었다.

중국인들은 ‘십호장’ 확산에 들끓었다. ‘십호장’이 고대 중국의 강압적 통제 제도와 유사하다며 기원전 3세기 진(秦)나라 재상 상앙이 전 국민을 10가구 단위로 나눠 상호 감시하게 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집단으로 처벌한 ‘연좌법’에 십호장을 빗댔다. 국민 반발을 막고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란 우려였다.

‘PCR 검사 대신 밥을, 봉쇄 대신 자유를’ ‘거짓말 대신 존엄을, 문혁(문화대혁명) 대신 개혁을’ ‘영수 대신 투표를, 노예 대신 공민을 요구한다’고 적힌 현수막. [트위터 캡처]

‘PCR 검사 대신 밥을, 봉쇄 대신 자유를’ ‘거짓말 대신 존엄을, 문혁(문화대혁명) 대신 개혁을’ ‘영수 대신 투표를, 노예 대신 공민을 요구한다’고 적힌 현수막. [트위터 캡처]

디지털 통제는 더 강화됐다. 위챗(중국식 카카오톡)에서 반정부 내용을 올릴 경우 계정 이용이 중단된다. 중국 내 어떤 장소도 휴대폰에 설치된 ‘건강코드’ 앱으로 인증해야만 출입이 가능하다. 감염자가 다녀간 장소 주변을 거쳤을 경우 위치 추적 정보를 바탕으로 곧바로 격리 통보도 날아온다. 국민 대부분이 사용하는 휴대폰을 통해 동선과 여론을 동시에 제어하는 셈이다. 발열자 체크란 명목으로 안면 인식 카메라 설치도 확대됐다. 제로 코로나를 계기로 중국 당국의 개인 감시와 통제의 수준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20차 당 대회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15일 베이징 영화자료관 건물 화장실에 ‘반독재’ ‘반핵산(PCR검사)’이라고 적힌 낙서가 등장했다. 상하이(上海)와 광둥(廣東)성 선전(深圳) 등에서도 ‘핵산 대신 밥을, 봉쇄 대신 자유를’이란 반정부 문구가 발견됐다. 방역 철폐 요구는 시 주석 퇴진 주장으로 번지고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제로 코로나’는 시진핑 시대 ‘사회 통제’의 상징이 됐다. 주민 불만은 고조되고 있지만, 당 대회에서 이런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대회 기간 당국은 방역 고삐를 더 죄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1일 최대 2억 명의 중국인이 봉쇄나 격리 상태라고 전했다. 시 주석은 당 대회 업무보고에서 “제로 코로나 정책은 흔들리지 않았다”며 “인민의 생명과 건강을 최대한 보호했고 경제사회 발전이란 중대한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다.

제로 코로나의 출발점인 도시 봉쇄는 2020년 우한에서부터 시작됐다. 강력한 방역에 힘입어 2021년 1분기 중국 경제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8.3% 성장하며 반등했다. 경기 회복과 함께 방역 정책이 적절했다는 국민 지지도 높아졌다.

하지만 2021년 12월 전염성이 강한 오미크론 변이의 등장이 모든 걸 바꿔놨다. 중국의 방역이 감염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끝난 뒤인 지난 3월 중국 4대 도시인 인구 1700만 명의 선전시가 봉쇄됐다. 뒤이어 산시성 시안(1300만명), 장쑤성 쑤저우(1200만), 지린성 창춘(900만명) 등 지역 거점 도시가 줄줄이 막혔다. 이는 인구 2500만의 경제 수도 상하이 봉쇄로 정점을 찍었다. 중국 경제는 고꾸라졌다. 3월 한 달 소비재 소매 판매율은 마이너스 3.5%(중국 국가통계국)로 급락했고 올 2분기 경제성장률은 0.4%로 떨어졌다.

‘제로 코로나’에 2분기 성장률 0.4%로 하락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곡소리가 났지만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시 주석의 권력은 더욱 견고해졌다. 확산을 막지 못한 지방 정부 책임자가 속속 날아갔다. 휴대폰 건강 코드(백신 접종, PCR 음성 결과 코드)는 강화됐고 안면 인식 기술은 방역이란 미명 하에 일상화됐다.

이번 당 대회에서 시 주석은 ‘국가 안전과 사회 안정을 확고히 수호한다’는 정책 방향을 추가했다. ‘격자화 관리’와 ‘정밀화 서비스’란 단어도 처음 등장했다. 격자화·정밀화는 국민을 더 세분화해 관리하고 첨단 기술에 기반한 관리망을 구축하겠다는 의미다.

이는 시 주석의 장기 집권과 맞물린다. 방역은 반발 세력을 관리하는 효과적인 통제 수단이기도 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마오쩌둥 시대의 통제가 시 주석 시대 부활하는 듯하다”며 “장기 집권이 자기 교정의 메커니즘을 무디게 만들고 지도자의 변덕에 14억 인구의 삶을 노출시킨다”고 지적했다.

1950년대 말 마오 주석은 주민들을 인민공사(집단농장)로 조직해 집단 경작을 하게 했다 경제 파탄에 이르렀다. 대약진운동으로 불리는 이 정책은 대실패로 막을 내렸다. 2022년 현재 중국의 방역 정책이 언제 풀릴지는 누구도 전망하지 못하고 있다. 당초 방역으로 출발했던 제로 코로나는 이제 일상의 통제로 이어지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