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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운찬 칼럼

정직만이 살 길이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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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내가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에서 교수를 할 때다. 한국에서 친구가 하나 찾아왔다. 타임스퀘어를 같이 걷는데 몇 미터 앞에 미국인 둘이 다가왔다. 내 친구는 무심코 “양키들은 키가 크기도 하지!”라고 감탄했다. 그러자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엽전들도 큰 사람 많아요!”라고 대꾸했다. 억양까지 또렷한 우리말이었다. 친구가 깜짝 놀라 그 사람 보고 “양키라고 해서 미안합니다”라고 사과하니 그는 “뭘요, 나도 엽전이라고 했는데요”라고 응수했다. 어렵지 않게 이야기가 통한 우리 넷은 같이 한국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두 사람은 다 한국에서 근무했던 미군 출신이었다.

40여 년 전에 있었던 일을 상기한 것은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이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양키’라는 표현은 미국의 남북전쟁 중 남군이 북군을 조롱할 때 사용됐다가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세계 각지로 퍼져 미국인을 얕잡아 부르는 말로 굳어졌다. 미국 안에서는 북동부 지역의 엄격하고 검소한 사람들을 일컫기도 한다. ‘엽전’은 한때 우리가 스스로를 낮잡아 이르는 말로 쓰이다가 지금은 거의 도태되었다.

비속어는 누구나 이따금 쓰지만
부적절한 경우 사과하면 될 일
그게 구차한 변명보다 품격 높여
실익없는 여야 정치논쟁도 끝내야

내 친구의 ‘양키’ 언급은 순간적인 당혹스러움 바로 뒤에 두 미국인의 공감을 얻어냈지만 윤 대통령의 비속어 사용은 아직도 사람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왜일까? 윤리학자이자 후일 경제학의 아버지가 된 영국의 아담 스미스(A. Smith)는 인간 본성을 분석한 『도덕감정론』에서 어떤 사람이 표출하는 감정과 언행에 대한 타인의 동감 여부는 감정 또는 언행을 유발한 상황이나 대상이 적절했는지에 달려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를 ‘공정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의 관점이라고 했다.

어느 나라나 일반 시민은 물론이려니와 정치인들도 가끔 동료들 간에 비속어를 쓴다. 물론 비공개적인 장소에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폭스 뉴스 기자의 거친 질문에 답한 뒤 혼잣말로 그 기자를 가리키는 비속어를 쓰고는 나중에 사과한 일이 있었다. 아직 국제무대에 익숙하지 않은 윤 대통령도 과거 검사로서 거칠고 까다로운 피의자를 수사할 때 쓰던 비속어를 별 생각 없이, 그것도 마이크가 켜진 걸 모르고 구사했던 모양이다.

누구나 주어진 상황에서 다소 당혹스러운 비속어를 쓰거나 거만을 떨었더라도 그것이 부적절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안함이나 사과를 표하면 곧바로 사람들의 양해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상례다. 뉴욕을 방문했던 내 친구나 바이든 대통령이 그랬듯이 말이다.

아마도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어렵게 일군 산업화, 민주화, K-컬처를 등에 업고 자유분방하게 발언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가 과거처럼 외국에 나가서 주눅 들 필요는 없다. 그러나 지난날의 성과에 취하여 자만해서도 안 된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리고 잘살 건 못살 건 상호 존중과 겸손은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하는 중요한 미덕의 하나가 아닌가.

대통령은 권한이 막대하고 책임 또한 막중한 자리다. 대한민국의 국익을 좌우하고 국격을 상징하는 국가원수다. 국가의 품격은 신뢰와도 같아 쌓아 올리기는 어렵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국제사회는 지금 경제와 안보를 놓고 불꽃 튀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더구나 호전적이고 도발적인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국민의 생존이 걸린 국가이익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지난 1995년 조순 선생이 서울시장에 당선되자 매스컴이 한목소리로 ‘조심 조심 또 조심’을 외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을 것이다. 조 선생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학자였다. 경제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직을 멋지게 수행해냈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삼풍 사건으로 시민 안전이 중요했을 뿐 아니라 조순 선생이 정치는 처음이라 혹시라도 정치무대에서 실수할까 봐 미리 경계하고 조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MBC를 비롯한 매스컴이 이번 비속어 파문을 아담 스미스가 강조한 ‘공정한 관찰자’의 관점에서 보도했다면 사안의 본질에 대해 국민의 동감을 조성하고, 실타래처럼 엉킨 현안도 쉽게 풀릴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문제 제기에 앞서 국익을 한 번 더 생각해 봤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한 나라가 잘되려면 법률가, 학자 그리고 언론이 각자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독일의 경제학자이자 역사학자인 뢰프케(W. Ropke)의 말이다.

이제 누구에게도 실익이 없는 여야의 정치 논쟁은 빨리 끝내야 한다. 나라가 너무 어지럽다. 일반 국민은 사사건건 사리에서 벗어난 주장을 거듭하는 여야 정치인들에 신물이 날 정도다. 그러나 그전에 결자해지의 자세로 대통령이 뉴욕에서의 일을 정직하게 밝혀야 한다. 억울하면 억울한 대로, 잘못했다면 잘못한 대로 털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정도다. 억울함이 잘못함보다 크더라도 구차한 변명보다는 진정한 사과가 품격을 높일 것이다. 대통령의 품격은 곧 국가의 품격이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