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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상징' 된 마스크의 역사…천 마스크, 국내 외면받은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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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전면 해제된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네거리에서 마스크를 벗은 시민이 출근하고 있다. 뉴스1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전면 해제된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네거리에서 마스크를 벗은 시민이 출근하고 있다. 뉴스1

“(사람들이) 마스크에 지치고 마스크를 거부한다면, 팬데믹의 종식을 선언할 때.” 과학사(科學史)를 연구하는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초대 학과장의 말이다. 팬데믹의 종식은 ‘감염자가 0명이 될 때’ 찾아오는 게 아닌, ‘팬데믹 속에서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을 때’ 한 사회가 선언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홍 교수는 “스페인 독감도 1920년대에 종식이 선언됐지만, 그 이후에도 감염자가 나왔다”고 말했다.

 한국 방역 당국은 지난달 26일부로 마스크 실외 착용 의무를 해제했다. 마스크 미착용 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을 시행한 지 22개월 만이었다. 의무화 시행 첫날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는 205명. 지난 14일 일일 신규 확진자는 2만 3583명으로 의무화 시행 첫날의 100배가 넘게 늘었지만, 세계 각국 방역 당국은 해외 입국자 격리 규정을 완화하는 등 거리 두기를 더 과감히 풀고 있다. 백신 접종 등으로 치명률이 낮아지고, 사회적 거리 두기 장기화로 시민들의 피로감이 늘면서다.

‘코로나 시대’의 상징물이 된 마스크는 근대 세균학의 발명품이다. 학계는 마스크의 초기 형태인 ‘호흡기(respirator)’가 1830년대 영국 외과의 줄리우스 제프리스에 의해 처음 발명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초 호흡기는 폐렴 등 환자를 위해 사람이 들이마시는 공기의 온·습도를 조절하는 용도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19세기 후반부터 동아시아 등지에서 폐페스트가 유행하며 감염균 흡입을 피하기 위해 호흡기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 형태와 유사한 마스크는 20세기 초, 만주 지역 의사들이 페스트 감염을 막기 위해 거즈 두 겹을 겹치고, 양 끝에 끈을 달아 코와 입을 가리는 보호 장비를 만들면서 등장했다. 홍 교수는 “‘마스크’라는 명칭은 서양 의사들이 이를 호흡기와 구분하기 위해, 약간은 폄하하는 의미를 담아 붙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1920년대부터 마스크 썼다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후 첫 주말인 지난 2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어드벤처가 놀이기구를 즐기기 위해 모인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뉴스1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후 첫 주말인 지난 2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어드벤처가 놀이기구를 즐기기 위해 모인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뉴스1

한국에서 마스크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건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로 추정된다. 1910년대부터 한국 땅에서 스페인 독감이 돌자 조선총독부가 ‘호흡보호기’ 착용 등을 예방법으로 소개하면서다. 일본은 이보다 앞선 1899년 즈음부터 페스트 유행으로 개인 예방 수단으로써 마스크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다만 현재와 같은 보건용 마스크가 만들어지고, 한국인들이 마스크를 대규모로 착용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들어 황사와 미세먼지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였다.

황사 등으로 인한 ‘마스크 착용 경험’은 코로나19 시기 한국의 마스크 착용 양상을 크게 바꿔 놨다. 미국 등에선 코로나 발발 초기, 마스크 공급이 부족해지며 자체적으로 면 마스크를 만들어 이웃에게 나눠주는 지역 재봉 공동체가 부상했다. 스카프 등 마스크 대용품을 착용하는 경우도 잦았다.

미세먼지 마스크 착용 경험…‘천 마스크 외면’ 낳았다?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하늘 모습. 뉴스1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하늘 모습. 뉴스1

한국은 달랐다. 홍 교수는 “코로나19 초기에는 안에 거즈를 두껍게 댄 천 마스크 역시 효과가 있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한국에선 천 마스크가 거의 쓰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앞서 2020년 3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보도자료에서 보건용 마스크가 없는 경우 정전기 필터가 부착된 면 마스크를 사용을 권고했다. 홍 교수는 “‘미세먼지를 막는 데도 천 마스크가 도움이 안 되는데, 바이러스를 막는 데 효과가 있겠냐’는 담론이 있었다”면서도 “바이러스를 막는 것보다 자신의 비말을 밖으로 못 나가게 하는 측면에서 천 마스크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한국이나 일본 등 동북아 국가들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화에 큰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은 것 역시 마스크를 써봤던 경험이 있어서라고 홍 교수는 봤다.

서구권에서 마스크를 쓴 동양인이 폭행당하는 것과 같은 '마스크 혐오' 현상은 왜 일어났던 걸까. 홍 교수는 “미국은 범죄자들이 주로 마스크를 사용한다는 뿌리 깊은 인식이 있기도 했고, 또 코로나19 발발 직후 해외 방역 당국은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한국보다) 훨씬 많이 내보냈다”고 분석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 4월 “건강한 사람의 마스크 착용이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는 근거는 없다”는 권고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마스크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의료진의 마스크 수급이 먼저 이뤄져야 했기에 내려진 권고였다. 홍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건강한 사람이 마스크를 쓰는 행위는 이기적인 것으로 비쳤다”며 “거기에 억눌려 있던 타인종에 대한 혐오감이 합쳐지며 폭발적으로 분출된 것”이라고 했다.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초대 학과장. 사진 서울대학교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초대 학과장. 사진 서울대학교

홍 교수는 “한국도 해외와 같이 확진자 격리와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를 거쳐 팬데믹 종식을 선언하게 될 것”이라면서도 "앞으로도 마스크를 계속 써야 할 수도 있다"는 비관적 전망을 했다. 기후 변화 등으로 인수 공통 감염병 발생이 잦아질 것으로 예측되면서다. 홍 교수는 “일회용 마스크 사용으로 폴리프로필렌 등 플라스틱 배출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며 “마스크를 계속 쓰게 될 수 있는 만큼, 생물학적으로 썩을 수 있는 대체 물질을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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