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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간 1번 타자는 새우...하루 4팀만 받는 '15만원 튀김정식' [백년가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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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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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예의 백년가게

시간의 힘, 믿으십니까. 백년을 목표로 달려가는 가게, 혹은 이미 백년을 넘어서 역사를 쌓은 곳들은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을까요. 일본 동네 곳곳에 숨어있는 ‘백년 가게’를 찾아가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상인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짧게는 한 시간 반, 길게는 두시간에 걸친 ‘공연’이 시작되는 건 반질반질 윤이 나는 구리 냄비가 조리대에 놓이는 순간이다. 아니, 어쩌면 순백색 조리 가운을 입은 조리사가 작은 나무문을 열고 테이블 앞으로 걸어 들어오는 순간일지 모른다. 딱 한 사람이 서면 꽉 찰 정도의 한평 남짓한 조리대를 경이롭고 비범한 무대로 만들어버리는 모리다 다케오(森田猛朗·74)의 얘기다.

올해로 65년째를 맞은 일본 긴자에 있는 튀김집 미츠다의 요리사 모리다 다케오. 딱 한사람이 서면 꽉들어차는 이 좁은 공간이 그의 일터다. 아침 저녁으로 쓸고닦아 반질반질 윤이 난다. 김현예 도쿄 특파원

올해로 65년째를 맞은 일본 긴자에 있는 튀김집 미츠다의 요리사 모리다 다케오. 딱 한사람이 서면 꽉들어차는 이 좁은 공간이 그의 일터다. 아침 저녁으로 쓸고닦아 반질반질 윤이 난다. 김현예 도쿄 특파원

튀김을 고급 요리로…44년 튀김 장인 모리다

일본 도쿄(東京) 긴자(銀座)에 있는 튀김(덴푸라) 코스 요릿집 미츠다(三ッ田). 지난 1957년 문을 연 이곳은 올해로 65년째 영업 중이다. 현재 2대 사장이 맡고 있는 미츠다는 점심과 저녁 각 두팀씩 하루 네팀의 손님을 받는다. 튀김으로 시작해 밥과 후식이 나오는 코스 1인분의 기본 가격이 1만6000엔(약 15만5000원. 가격이 1000엔 올랐다). 그런데도 빈자리가 없어 예약은 하늘의 별 따기다. 미츠다를 두 번 찾아간 끝에 요리사 모리다를 지난 7월 만났다.

구리냄비를 가스에 얹기 시작하면 튀김 요리가 시작된다. 한번 사용한 기름은 재사용하지 않는데 별도 회사가 수거해 '버스 연료'로 재활용된다고 한다. 김현예 도쿄 특파원

구리냄비를 가스에 얹기 시작하면 튀김 요리가 시작된다. 한번 사용한 기름은 재사용하지 않는데 별도 회사가 수거해 '버스 연료'로 재활용된다고 한다. 김현예 도쿄 특파원

녹차 한 잔을 내오더니 그가 무릎을 꿇고 앉는다. “그럴 필요 없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한 시간 가까이 정좌(正坐)한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가 요리인의 길에 들어선 건 19살 때였다. 남동생이 초밥집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한 것도 영향을 끼쳤다. 양식집, 결혼식장에서도 일하다 튀김집에 들어간 게 인생을 바꿔놨다. 일본에서도 유명한 제국호텔에서도 일했던 그가 미츠다에 합류한 건 44년 전. 그의 나이 서른살 때다. 왜 튀김이었냐고 물으니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 그가 환하게 웃으며 답한다. “튀김은 몇살이 되든 상관없잖아요. 여든살이든 아흔살이든 가능하니까요.” 입담이 좋다.

'새우'로 하는 정면승부…44년 해도 어려운 건 '온도'

첫 승부는 새우다. 살아있는 새우에 얇게 옷을 입혀 바로 튀겨낸다. 김현예 도쿄 특파원

첫 승부는 새우다. 살아있는 새우에 얇게 옷을 입혀 바로 튀겨낸다. 김현예 도쿄 특파원

그의 조리대는 먼지 한톨, 기름때 한점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정돈돼있다. 한쪽엔 튀김을 위해 만들어 둔 기름병이 놓여있는데, 이 기름이 창업 당시부터 내려온 ‘비법’이라고 했다. 참기름 2종류와 올리브유 등을 섞어 쓰는데 들어가는 기름은 총 네 가지. 자세히 맡지 않으면 참기름 향을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은은한 향이 난다.

본격적인 조리를 위해 구리 냄비를 가스 불 위에 얹고, 깨끗한 기름을 붓는다. 스테인리스 냄비에 튀김가루를 넣고, 온도를 조절해가면서 튀김을 튀기기 시작하는데, 항상 1번 타자는 새우다. 모리다는 “정면 승부를 위해서”라고 했다. “새우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 가장 단맛이 살아있는 6개월짜리 생새우를 쓴다. 두 번째 이유는 기름 때문이라고. 맑은 황금빛이 도는 첫 기름에 튀기면 튀김 옷을 얇게 둘러도 된다. 말하자면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튀김을 할수록 기름 색이 짙어지기 때문에 하얀 새우의 속살 빛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맨 처음 튀긴다고 한다.

 튀기기 전에 지느러미를 예쁘게 편 뒤 튀김 옷을 입힌다. 등 지느러미를 손으로 잡은 채 튀겨낸다. 은어 모양을 그래도 내기 위해서다. 김현예 도쿄 특파원

튀기기 전에 지느러미를 예쁘게 편 뒤 튀김 옷을 입힌다. 등 지느러미를 손으로 잡은 채 튀겨낸다. 은어 모양을 그래도 내기 위해서다. 김현예 도쿄 특파원

통상 새우는 네 마리 정도 낸다. 한입 베어 물면 고소한 향이 입안에 가득 퍼지는데, 탱글탱글한 새우살이 일품이었다. 이렇게 손님의 입맛과의 일합을 새우로 겨룬 뒤엔 아스파라거스 튀김을 낸다. 이어서 오징어, 표고버섯, 붕장어 튀김 순으로 총 10여개를 낸다. 재료는 철마다 바뀐다. 6·7월엔 제철 생선인 은어 튀김이 나온다. 흥미롭게도 은어를 튀길 때, 가슴과 뒷지느러미를 살포시 펼쳐 튀김옷을 입힌 뒤 등지느러미를 잡은 채 보글보글 끓는 기름에 집어넣어 튀김을 완성한다. 생선 모양을 고스란히 살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기름 냄비에 손 넣는 게 뜨겁지 않냐고 했더니 “손님을 위한 퍼포먼스”라고 했다. 조리대와 연결된 테이블에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손님들이 요리 완성 과정을 즐길 수 있게 배려하는 셈이다.

“튀김은 서비스”…“손님 즐겁게 해주는 것이 내일”

어른 검지 손가락 길이의 은어를 튀겨내는데, 지느러미를 펼쳐 튀김옷을 입힌다. 김현예 도쿄 특파원

어른 검지 손가락 길이의 은어를 튀겨내는데, 지느러미를 펼쳐 튀김옷을 입힌다. 김현예 도쿄 특파원

그는 “44년을 해도 온도 조절이 제일 어렵다”고 했다. 평생을 튀김 조리대 앞에서 보냈는데, 온도 조절이 어렵다니. 그의 설명은 이렇다.

“손님마다 좋아하는 음식이 다르고, 먹는 속도도 다르잖아요. 그러니 손님 속도에 튀김을 맞추려면 온도를 잘 맞춰야 하거든요.”

요컨대 튀김에만 온 정신을 쏟는 게 아니라, 손님 성향에 맞춰 음식을 내기 때문에 기름 온도를 늘 예민하게 조절하고 있어야 한단 얘기였다. 어느 순간 불을 확 올리는 게 아니라 언제든 적당한 타이밍에 튀김이 손님 그릇에 ‘출동’할 수 있게 기름 온도를 대기시킨다는 의미다. “튀김을 튀기는 일은 서비스일 뿐, 손님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내 일”이란 신념이 예사롭지 않다.

사진도 찍어주는 요리사…대 이어 오는 손님 만날 때 기뻐

맛있는 튀김 비법을 묻자, 그는 “관찰력”을 꼽았다. 사소한 것들을 신경 쓰지 않으면 즐거운 식사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예컨대 어린이 손님이 오면 아이스크림 튀김을 해주거나, 식사 속도가 느린 여성 손님에겐 여유 시간 동안 꽃을 튀겨주기도 한단다. 이런 작은 것들이 손님을 즐겁게 해준다고 했다. 그는 “아주 오래전 먼 곳에서 임신한 손님이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태중에 있던 아이가 지금 30살이 넘어 찾아온다”며 “이런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마츠다에선 '모리상'으로 불리는 모리다. 인터뷰를 잘 안하는데, 한번 잡지에 소개된 적이 있다며 펼쳐보였다. 김현예 도쿄 특파원

마츠다에선 '모리상'으로 불리는 모리다. 인터뷰를 잘 안하는데, 한번 잡지에 소개된 적이 있다며 펼쳐보였다. 김현예 도쿄 특파원

그만의 애프터 서비스도 있다. 입담이 좋은 그는 카메라를 주방 한 곳에 꼭 상비해두는데, 손님들이 즐겁게 식사하는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그 순간을 추억할 수 있게 사진을 찍어준다. 그렇다고 모든 손님에게 사진을 찍어주는 건 아니다.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올 땐 카메라를 잘 꺼내지 않는다. 그만의 배려다. 손님 사진은 사람 수대로 인화해 간직하고 있다가 다시 손님이 방문할 때 깜짝 선물처럼 내놓는다.

한 시간 반을 넘긴 인터뷰를 마치고 가게 문을 나서는데 빗방울이 떨어졌다. 배웅 나온 그가 말했다. “비에 쓸려가지 않게 조심하세요. 하하하.” 위트와 배려가 담긴 마지막 인사, 평생 손님맞이를 해온 ‘접대의 고수’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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