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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시간에 쫓긴채 실전 배치"…'현무 낙탄' 예고된 사고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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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응한다며 지난 4일 밤 군 당국이 쏜 현무-2C 지대지 탄도미사일이 발사 직후 추락한 낙탄 사고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다만 정치권에선 본질인 사고 원인에 대한 냉철한 진단보다 사고를 둘러싼 군 당국의 은폐 의혹을 집중 제기하고 있다.

마린온 폭발 원인은 제대로 조사도 안 해

지난 4일 밤 강원도 동해안 군 기지에서 발사한 현무-2C 지대지 탄도미사일이 발사 직후 추락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진은 지난 5월 25일 북한이 동해상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자 군이 현무-2C 미사일을 대응 사격하는 모습. 사진 합동참모본부

지난 4일 밤 강원도 동해안 군 기지에서 발사한 현무-2C 지대지 탄도미사일이 발사 직후 추락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진은 지난 5월 25일 북한이 동해상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자 군이 현무-2C 미사일을 대응 사격하는 모습. 사진 합동참모본부

그러나 방위산업계와 관련 전문가들은 이번 현무-2C 낙탄 사태가 국산 무기 개발의 고질적인 병폐를 보여주는 사례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당국자는 “정해진 예산과 전력화 시기에 맞춰 시험평가를 하다 보니 미사일 발사 횟수가 부족한 상태에서 실전 배치한다”며 “이후 운용 과정에서도 미사일이 비싸다는 이유로 실사격을 자주 하지 않아 문제점을 모른 채 몇 년간 방치하다가 결국 사고로 나타나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북한만도 못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북한은 여러 차례 미사일 발사에 실패하면서도 개발과 운용 단계에서 끊임없이 미사일을 쏘기 때문에 기술적 발전은 물론 미사일 자체가 안정화된다”고 말했다.

지난 4일 밤 군 당국이 연합 대응 사격으로 발사한 현무-2C 지대지 탄도미사일이 발사 직후 비정상 비행 후 기지 내로 낙탄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군 당국은 떨어진 추진체가 연소하는 과정에서 화염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사진 독자

지난 4일 밤 군 당국이 연합 대응 사격으로 발사한 현무-2C 지대지 탄도미사일이 발사 직후 비정상 비행 후 기지 내로 낙탄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군 당국은 떨어진 추진체가 연소하는 과정에서 화염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사진 독자

미국 등 첨단 무기 선진국들도 개발 단계에서 발견하지 못한 결함을 주기적인 실사격 과정에서 개량하는 방식으로 개선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번 낙탄 사태를 계기로 기존에 양산된 현무-2C를 전수 검사하고 제작상 결함을 발견해 개량하는 좋은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게 여러 전문가의 견해다.

4발 쏘고 배치, 실사격서 실종

과거 미사일 개발에서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사례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해군의 홍상어 대잠수함 미사일과 해궁 대함미사일 요격 유도탄이다. LIG넥스원이 양산하는 두 미사일은 현재 해군 함정들에 실전 배치돼 있다.

홍상어는 원거리의 잠수함을 공격하기 위해 함정의 수직발사관(VLS)에서 발사하는 경어뢰다. 지난 2009년 실시한 시험평가에서 4발 중 3발을 명중시켜 양산에 들어갔다. 이어 이듬해 50여발을 충무공이순신급(KDX-Ⅱ급) 구축함과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에 탑재했다.

홍상어 대잠수함 미사일은 해군 함정의 수직발사관에서 발사해 원거리의 잠수함을 공격하는 경어뢰다. 사진은 지난 2009년 6월 22일 해군 구축함에서 홍상어를 발사하는 모습. 사진 국방과학연구소

홍상어 대잠수함 미사일은 해군 함정의 수직발사관에서 발사해 원거리의 잠수함을 공격하는 경어뢰다. 사진은 지난 2009년 6월 22일 해군 구축함에서 홍상어를 발사하는 모습. 사진 국방과학연구소

그런데 2012년 7월 실시한 첫 실사격에서 큰 결함이 드러났다. 표적을 맞히지 못했을 뿐 아니라 미사일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이후 8발을 더 발사했는데 3발이 실종되는 등 난항이 거듭됐다. 당시 군 안팎에서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말이 돌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결국 재설계 수준의 개량 작업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추가로 7발을 더 쏘면서다.

2015년 들어 결함이 해소됐다는 판단이 나오면서 재양산에 들어갔고, 기존에 배치된 홍상어는 문제가 있는 부품을 교환하는 형태로 재배치했다.

군 소식통은 “홍상어 개발 실패는 개발 단계에서 충분히 시험발사를 하지 못해 결함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라며 “실전 배치를 마치고도 2년 동안 쏘지 않아 문제점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배치 이후에도 실사격 횟수가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군 당국에 따르면 현재 홍상어는 대구급 호위함 등 13척의 함정에 탑재돼 있다. 재배치 이후 지난 2016년, 2019년, 2020년에 각 1발씩 실사격해 명중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RAM 함대공 미사일은 실전 배치 전 시험 발사탄이 24발이었고, ESSM 함대공 미사일은 15발 수준이었다”며 “개발 단계에서 충분한 시험 발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낮은 명중률에 평가 기준 낮춰

해궁 미사일 개발 사례도 특기할 만 하다. 해궁은 함정을 공격하기 위해 해상으로 낮게 날아오는 대함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해 만든 요격탄이다.

그런데 본격적인 양산을 앞두고 지난 2016년 실시한 시험 발사에서 5발 중 3발이 요격에 실패했다. 국방과학연구소(ADD) 등은 명중률이 너무 낮게 나오자 개발 기간을 2년 더 연장하는 고육책을 썼다.

방위사업청은 함정을 향해 날아오는 유도탄 및 항공기 등 다양한 위협에 대응이 가능한 방어유도탄 '해궁'을 국내 기술로 연구개발을 완료했다고 지난 2018년 2월 24일 밝혔다. 하지만 당시 군 안팎에선 표적의 속도와 고도 등 평가 기준을 낮췄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사진은 해궁의 시험 발사 당시 요격 모습. 사진 방위사업청

방위사업청은 함정을 향해 날아오는 유도탄 및 항공기 등 다양한 위협에 대응이 가능한 방어유도탄 '해궁'을 국내 기술로 연구개발을 완료했다고 지난 2018년 2월 24일 밝혔다. 하지만 당시 군 안팎에선 표적의 속도와 고도 등 평가 기준을 낮췄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사진은 해궁의 시험 발사 당시 요격 모습. 사진 방위사업청

2018년 10발의 재시험 평가에서 합격했지만, 이번엔 군 안팎에서 시험평가를 통과하기 위해 평가 기준 자체를 낮췄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통상 순항(크루즈) 미사일 형태인 대함미사일은 마하 0.8(음속의 0.8배) 속도에 해상 4~10m의 낮은 고도로 비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글로벌 표준'으로 통하는 '하푼(Harpoon)'은 물론 북한이 지난 2015년부터 실전 배치한 '금성-3호' 역시 마하 0.8 속도에 비행 고도가 10m 안팎이다.

반면 해궁은 마하 0.5 속도에 고도 30m 이상에서 날아오는 표적을 요격하는 낮은 기준이 적용됐다. 또 초음속 표적에 대해선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식으로만 검증했다.

북한이 지난 2015년 2월 8일 동해상의 함정에서 '금성-3호'로 추정되는 함대함 미사일을 발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2015년 2월 8일 동해상의 함정에서 '금성-3호'로 추정되는 함대함 미사일을 발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와 관련, 군 소식통은 “이는 당초 군이 요구했던 성능(마하 2.0 속도의 대함미사일 요격)과도 괴리가 있다”며 “당시 국회에서도 지적했지만, 재검증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해궁은 지난해 연말부터 양산을 시작했다. 현재 해군은 대형수송함인 마라도함과 신형 호위함인 대구함 등 2척에 해궁을 배치한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해궁이 과연 실전에서 북한 대함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폭발원인 재조사 요청에 묵묵부답  

국산 무기 개발에서 시험평가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또 다른 사례가 있다. 지난 2018년 7월 추락 직후 폭발한 해병대 마린온 상륙기동헬기 사고는 여전히 진상이 규명되지 않았다.

이 사고로 장병 5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쳤다. 그런데 사고 이후 민ㆍ관ㆍ군 합동조사위원회는 해외에서 도입한 로터마스트(회전 날개와 동체를 결합하는 부품)의 결함 등 추락 원인에 집중한 조사 결과만 내놨다.

지난 2018년 7월 경북 포항시 남구 포항 비행장 활주로에 추락한 해병대 마린온 상륙기동헬기 사고 현장 모습. 연료탱크가 추락 충격으로 파손되면서 연료가 유출돼 폭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지난 2018년 7월 경북 포항시 남구 포항 비행장 활주로에 추락한 해병대 마린온 상륙기동헬기 사고 현장 모습. 연료탱크가 추락 충격으로 파손되면서 연료가 유출돼 폭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이 때문에 “정작 승조원들의 주된 사망 원인으로 지목된 연료탱크 폭발에 대해선 제대로 따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마린온은 국산 다목적 헬기인 수리온을 원형으로 한 파생형 헬기다. 수리온 개발 과정에서 연료탱크도 국내 업체가 처음 만들었다.

그런데 연료탱크에 대한 성능인증시험을 맡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이전에 이같은 평가를 해본 적이 없었다. 결국 미국 군사규격(MIL-DTL-27422D)인 65ft(약 19.8m) 높이에서 추락시키는 충돌ㆍ충격 시험을 했다.

지난 4월 6일 경북 포항시 남구 해안에서 펼쳐진 해병대 1사단 상륙훈련에서 마린온 상륙기동헬기가 공중 지원에 나서고 있다. 뉴스1

지난 4월 6일 경북 포항시 남구 해안에서 펼쳐진 해병대 1사단 상륙훈련에서 마린온 상륙기동헬기가 공중 지원에 나서고 있다. 뉴스1

이와 관련, 국민권익위원회 국방 담당 전문조사관 출신인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은 “마린온은 이륙한 지 불과 13초 만에 약 14m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연료탱크가 파손돼 연료가 다량 유출되면서 폭발했다”고 짚었다. 이어 "승조원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미국은 수십년간 연료탱크 시험을 반복하면서 성능을 개량해왔다"며 "처음 평가해 본 항우연이 검증을 제대로 한 것인지 다시 한번 따져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지난 5월 마린온 연료탱크 폭발 원인에 대한 재조사를 국방부 등에 요청했다. 하지만 마린온 제조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군 당국은 이 부분에 대해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김 소장은 “사고 원인을 덮는 데 급급하다 보면 제2, 제3의 희생자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패하면 방산비리 내몰리기 십상”

방산업계에선 국산 무기 개발이 허술한 배경과 관련해 “시행착오를 용납지 않는 정서도 큰 문제”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관계자는 “실패 소식이 전해지면 개발 책임은 물론 방산비리로 몰리기 십상”이라며 “결국 이같은 비난이 두려워 솔직하게 결함을 밝히지 못하고, 오히려 이를 감추기 위해 시험평가 기준을 낮추는 등 구태가 반복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11월 9일 해군의 신형 호위함인 천안함(FFG-826)이 진수하는 모습. 대구급 호위함인 천안함에는 대공 유도탄 '해궁', 장거리 대잠 어뢰 '홍상어' 등이 탑재돼 있다. 천안함은 내년 해군에 인도돼 전력화 과정을 마치고 서해에 배치할 계획이다. 사진 해군

지난해 11월 9일 해군의 신형 호위함인 천안함(FFG-826)이 진수하는 모습. 대구급 호위함인 천안함에는 대공 유도탄 '해궁', 장거리 대잠 어뢰 '홍상어' 등이 탑재돼 있다. 천안함은 내년 해군에 인도돼 전력화 과정을 마치고 서해에 배치할 계획이다. 사진 해군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어떤 무기 체계든 악천후 등 다양한 악조건에서 계속 테스트를 거쳐 성능을 높여나가는 것이 정상적인 무기 개발 방식”이라며 “실패 자체도 의미가 있다. 그런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납기 지연으로 군 당국이 설정한 전력화 시기를 못 맞추면 막대한 배상금(지체상금)을 물어야 하는 것도 이같은 악순환을 부채질한다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군이 요구하는 기간 내에 개발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업체들은 매출이 없으면 당장 도산할 판이니 무리하게 수주를 한다”며 “방산 생태계를 위해 구조적인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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