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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민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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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중국은 역사상 한 차례도 한반도를 침략한 적이 없다.”

홍콩의 정치인 탕자화(湯家驊·72, 영문명 로니 퉁)의 말이다. 탕자화는 과거 범민주파로 분류됐으나 2020년 친중 성향의 ‘민주주의를 생각하는 길(民主思路)’을 창당하며 정치색을 바꿨다. 홍콩의 내각 격인 행정회의의 민간 대표 중 한 명이다.

지난달 17일 탕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서거를 계기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영국 왕관에 장식된 초대형 컬리넌 다이아몬드의 반환을 요구한다는 기사를 페이스북에 퍼 날랐다. 남아공 광산에서 캔 보물이라면서다. 탕은 “많은 나라가 전성기에 약소국을 침략하거나, 종교·문명·민주를 구실로 전쟁을 시작해 식민지나 속국을 만들며 우월한 국력을 과시하길 좋아했지만 ‘중화민족’은 달랐다”고 했다. 이어 “동남아 국가·한국·일본은 문화, 적어도 문자에서 중국의 깊은 영향을 받았다”며 “하지만 중국은 이들 나라를 침입하지 않았다”고 호도했다.

홍콩 정당 ‘민주사로(民主思路)’의 탕자화 대표(왼쪽)가 량전잉 중국 전국정협부주석(오른쪽)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페이스북]

홍콩 정당 ‘민주사로(民主思路)’의 탕자화 대표(왼쪽)가 량전잉 중국 전국정협부주석(오른쪽)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페이스북]

지난 2020년 12월 중국 우주선 항아(姮娥)가 달 착륙에 성공하자 서구 여론은 중국의 달 식민화를 우려했다. 탕자화가 나섰다. “1900년 8국 연합군이 베이징을, 1930년 일본군이 중국을 침입했지만, 강성했던 당·명·청은 타국을 침입하지 않았고 식민지도 없었다.”

반발이 나왔다. 대만에 머무는 홍콩 국제정치학자 선쉬후이(沈旭暉) 옥스퍼드대 박사가 조목조목 반박했다. 한국과 북한 모두 중국 민족주의에 경계심이 가득하고, 특히 한반도 역사는 ‘사대주의’를 강력히 반대했다고 했다. 예를 들어 한국은 수도의 중국식 이름을 ‘한성(漢城)’에서 ‘서울(首爾)’로 바꿨고, 북한은 ‘주체사상’을 앞세워 베이징 지령을 받던 당내 ‘연안파(延安派)’를 제거했다고 논박했다.

반면 중국은 고구려와 발해국의 역사·문화재까지 ‘중국 조선족’이라는 ‘중국민족’과 애매모호한 ‘자고이래(自古以來·예전부터)’ 논리로 중국 역사로 바꿨다고 했다. 한족(漢族)과 55개 소수민족을 일컫는 이른바 중화민족은 ‘중국민족’이 보다 정확한 용어라는 게 선 박사의 설명이다.

과거 중국의 애국주의 누리꾼 주장을 홍콩 내각 인사가 퍼뜨린다. 중국 집권당은 이념보다 민족주의를 더 앞세운다. 5년 전 당 대회 정치보고는 중화민족을 43차례 외쳤다. 10년 전 18번보다 부쩍 늘었다.

선 박사는 탕 대표에게 한국이나 북한의 큰길에서 “중국은 한반도를 침입한 적이 없다”고 외쳐보라 했다. 관건은 우리다. 큰 나라를 따르려는 마음속 ‘중화’를 버리는 게 먼저다. 대신 중국민족과는 공생할 방안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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