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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도전 ‘마이넘버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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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이영희 도쿄특파원

이영희 도쿄특파원

“마이넘버카드 포인트 받았어요?”

요즘 일본 내 지인들을 만나면 한 번씩은 듣게 되는 질문이다. ‘마이넘버카드’란 한국의 주민등록증처럼 일본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부여된 고유 번호가 새겨진 신분증. 올해 말까지 구청에 신청해 카드를 만들고 이를 의료보험증·통장 등과 연결하면 최대 2만 엔(약 19만원)어치의 포인트를 받을 수 있다. 지난 6월 일본 정부가 야심차게 시작한 이 사업은 고물가 시대라선지 놀라운 효과를 발휘 중이다. 2016년 시작 후 지난해 9월까지 20%가 채 안 됐던 마이넘버카드 발급률이 지난 2일 기준 49%까지 올라갔다니 말이다.

일본이 거액의 예산을 투입해 마이넘버카드 사업을 밀어붙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국민 전체를 번호로 구분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아 생긴 온갖 비효율 때문이다. 한국의 주민등록등본격인 주민표를 떼려면 주소지 관할 구청까지 가야만 하는 것은 사소한 불편이다. 세계적 재난인 코로나19가 닥쳐오자 확진자를 집계하는 것도, 백신을 접종하는 것도, 재난지원금을 주는 과정도 어렵고 또 복잡했다.

일본 총무성이 만든 마이 넘버카드 홍보 동영상의 한 장면. [유튜브 화면캡처]

일본 총무성이 만든 마이 넘버카드 홍보 동영상의 한 장면. [유튜브 화면캡처]

일본의 뒤처진 디지털화가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자 깜짝 놀란 일본은 승부수를 던진다. 2024년 가을까지 현재 사용되는 종이 의료보험증을 없애고 이를 마이넘버카드로 일원화하기로 한 것이다. 운전면허증과 통합도 추진한다. 사실상의 의무화다.

하지만 그 과정을 보고 있자면 여전히 한숨이 나온다. 마이넘버카드를 발급받으려면 구청 등에 비치된 신청서에 사진을 붙여 우편으로 전송해야 한다(온라인 신청도 가능하지만 역시 절차는 복잡). 그리고 한 달이 지나 신청 사실을 까맣게 잊을 때쯤 카드가 발급됐다는 엽서가 도착한다. 그러면 구청에 전화로 예약을 하고 방문해 비밀번호 등을 설정해야 한다. 무려 4개의 비밀번호를 정했는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이미 잊어버렸다.

안 그래도 하락하는 지지율에 고민이 많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에게 마이넘버카드 의무화는 또 하나의 시험대가 될 것 같다. 당장 의료보험증 폐지 소식이 전해지자 “카드 신청이 힘든 고령자는 병원에 가지 말라는 건가” “마이넘버카드를 분실하면 무엇으로 신분 증명을 해야 하나” 등 비판이 이어진다. 모든 개인정보를 하나로 모을 경우 유출이 우려된다는 의견도 상당수다. “마지막까지 저항하겠다”는 댓글에선 투지가 느껴진다.

2만엔의 유혹에 넘어가 카드를 손에 넣으니 편리한 점은 딱 하나다. 편의점에서 주민표를 뗄 수 있다! 일본 정부가 말하는 ‘새로운 디지털 사회’를 과연 마이넘버카드가 열 수 있을지, 아직 반신반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