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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지도자 홍명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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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송지훈 기자 중앙일보 스포츠부 차장
송지훈 스포츠디렉터 차장

송지훈 스포츠디렉터 차장

프로축구 K리그에 ‘홍명보(53) 시대’가 활짝 열릴 전망이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울산 현대는 올 시즌 두 경기를 남긴 현재 승점 73점으로 2위 전북 현대(67점)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1위를 질주 중이다. 울산이 역전을 허용하는 경우의 수는 남은 2경기를 모두 지고 전북이 2경기 모두 큰 점수 차로 이기는 것 딱 하나뿐이다.

‘선수 홍명보’의 발자취는 나무랄 것이 없다. 현역 시절 그는 축구대표팀의 최후방을 든든히 지키는 수호신 같은 존재였다. 한국 축구 A매치 역대 최다 출장(136경기) 기록을 세웠고 월드컵 본선 무대를 네 차례(1990·94·98·2002) 밟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대표팀 주장으로 4강 신화를 이끌며 브론즈볼(월드컵 MVP 3위)을 받아 커리어의 정점에 섰다.

감독으로서의 이력은 달랐다.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이끌 때만 해도 영웅으로 환호를 받았지만, 2년 뒤 브라질월드컵 본선 부진(1무2패)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졌다. 당시엔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고 살 집터를 알아본 게 부동산 투기로 매도될 정도로 국민 감정이 험악했다. 홍 감독은 ‘그 땅’에 집을 짓고 현재까지도 부모님과 함께 산다.

이쯤에서 이력을 마감했다면 ‘스타 선수 출신은 좋은 지도자가 되지 못한다’는 속설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사례로 남았을지 모른다. 홍 감독은 직진을 고집하지 않고 우회로를 택했다. 느리더라도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깊이 있게 진화하기로 마음먹었다. 중국 프로축구 항저우 뤼청 사령탑을 맡아 클럽 축구를 경험하며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연구했다. 이후엔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직을 맡아 실무 행정을 총괄했다. 이를 통해 문화, 정책의 맥락에서 축구를 다양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2년 간의 중국 생활과 3년 간의 행정가 경험을 거친 홍 감독은 존경하는 은사 거스 히딩크(76·네덜란드) 감독처럼 현장과 행정을 아우르며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축구전문가’로 진화했다. 돌이켜보면 지도자로 컴백하는 과정에서 K리그 최다 준우승(10회)으로 누구보다 우승에 목 마른 울산의 손을 잡은 것 또한 정확한 판단이었다.

우여곡절을 거쳐 비로소 명예 회복에 성공한 ‘지도자 홍명보’의 다음 스텝은 어떨까. 위기에 굴하지 않고 성장하는 영웅의 서사는 예나 지금이나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