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가분이 고발한다

'여가부'에 어정쩡한 이재명...野 '서윗함 증명' 집착할때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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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분 연구자이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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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 폐지는 찬반이 첨예하게 갈린 사안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여성가족부 폐지는 찬반이 첨예하게 갈린 사안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최근 정부와 여당이 재외동포청을 신설하고 국가보훈처를 국가보훈부로 격상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여성가족부 폐지안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최근까지 여가부 폐지에 대한 공개적인 발언을 아끼다가 11일 당 차원에서의 반대를 공식화했다. 민주당이 여가부 폐지를 놓고 '전면전'에 나서지 않는 것에서도 민주당과 이 대표의 고민이 읽힌다.

사실 여가부 폐지의 가장 큰 명분은 국민 여론의 악화다. 여가부의 여러 정책에 대한 국민적 효능감 자체가 원체 바닥이었다. 여론조사기관이 매년 실시하는 '행정부 정책수행 평가'에서 여가부는 늘 꼴찌에 가까웠고, 정부부처의 자체 종합평가에서도 하위권을 맴돌았다. 정책수행이 기대에 못 미쳤다는 것보다 더 여론을 등 돌리게 한 건 ‘갈등관리 실패’에 대한 정치적 책임이다.

자료=리얼미터

자료=리얼미터

2018년 ‘혜화역 시위’ 등에서 극명하게 표출된 청년층의 젠더 갈등에서 지난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중립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 그리고 그 실패의 중심에 여가부가 있었다. 여가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의 나윤경 당시 원장은 “남성은 성범죄의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되며 그에 대한 남성들의 해명은 시민적 의무”라는 말로 논란을 일으켰다. 이 발언은 레디컬 페미니즘의 인식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남성뿐 아니라 온건한 여성들까지 놀라게 했다.

오래전부터 ‘여가부 폐지론’을 제기해온 여성 르포작가 이선옥의 지적대로 과거 여가부가 주도했던 (갈등적) 페미니즘 정책은 국가 중립의무의 원칙을 위반할 소지마저 있었다. 실제로 많은 국민이 더는 성 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종교적 이데올로기에 가까워진 페미니즘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여가부 폐지론이 다수여론으로 격상된 데는 이런 인식의 변화가 근저에 자리 잡고 있다. 가뜩이나 정책 효능감이 낮은데 갈등 악화의 원흉 노릇만 하니 더는 필요 없다고 여기는 셈이다.

문제는 민주당이다.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인 소위 진보 남성 중에서도 여가부 폐지에 찬동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게 민주당의 딜레마다. 특히 문화적 검열에 민감하고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등 리버럴 성향이 강한 2030 진보 남성층은 여가부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이들은 이미 청소년 시절부터 게임 등 문화산업 영역에서 여가부와 사사건건 갈등을 빚어왔다. 이들 눈에 비친 여가부는 게임 셧다운제, 웹툰 검열, 여성 아이돌 복장 검열에 광분하는 ‘검열기관’일 뿐이다. 여성인권과 노동권이 신장하길 바라며, 평등주의적 의제를 지지하는 청년 사이에서 여가부의 인기가 그토록 없는 이유다.

여성가족부 청사에 걸려 있는 역대 장관 사진. 연합뉴스

여성가족부 청사에 걸려 있는 역대 장관 사진. 연합뉴스

그 기관을 채우는 사람은 더 문제다. 소위 진보 진영의 정치 고관여 층 사이에서도 여가부는 그저 몇몇 주요 여성단체들의 ‘회전문 인사’ 통로로 비치고 있다. 이들 여성계 인사의 전문성을 인정할 수 없고 편향성마저 의심하는 이들에게 여가부는 지킬만한 가치가 없는 존재다. 요컨대, 상당수 2030 세대에게 여가부는 실질적 여성 인권 개선보다 부당한 규제와 검열, 그리고 페미니즘 사상교육 사업에 편승한 여성계 카르텔의 회전문 인사 통로였을 뿐 시대적 가치는 이미 소진되었다. 지금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것처럼 여성복지, 여성고용, 여성안전 문제는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법무부 등 다른 전문 부처로 이관하고 그 안에서 진짜 여성 의제 전문가를 양성하는 게 더 설득력 있는 대안으로 비치는 이유다.

이런 시각을 안다 해도 민주당 입장에선 여가부 폐지안을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여가부는 지난 김대중 정부 시절 설립한 여성특별위원회를 전신으로 삼고 있다. 호주제 등 여성에 대한 제도적 차별이 공식적으로 남아있던 시절의 이야기다. 김대중 정부의 성 평등 정책 의지를 보여준 역사적 유산인 여가부를 자신들 손으로 없애는 게 망설여질 수 있다. 역사적 의미를 넘어, 여가부 폐지를 스스로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일부 여성들의 정서, 다시 말해 여성 표심을 무시할 수도 없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지난 대선 때 확인된) 집토끼의 이탈이라도 막고 싶을 거다.

그러나 여가부가 김대중 정부 유산이라는 건 아무리 좋게 봐도 좋았던 옛 시절에 대한 추억팔이에 불과하다. 또 집토끼(젊은 여성)를 수성하자고 민주당의 약한 고리가 되어버린 2030 남성의 악화한 민심을 마냥 방관하는 것 역시 민주당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확장성 포기와 다를 바 없다. 이걸 모른 채 여가부 폐지 여론 앞에 전전긍긍해 하는 민주당을 보면 변화와 혁신이 아니라 어느새 가진 걸 지키는 데 급급한 노욕만 읽힌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일부 기성 586세대 민주·진보 지지층 사이에서는 여성문제 앞에서 자신의 ‘서윗(sweet)함'을 증명해야 한다는 가부장적 콤플렉스가 잔재처럼 남아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2021년 8월의 여론조사 결과

2021년 8월의 여론조사 결과

그런 의미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여가부를 둘러싸고 그동안 공회전해 온 갈등을 결자해지할 정치권의 당사자는 민주당이 아니라 국민의힘일 수 있다. 과거 냉전 시절 미국 공화당의 반공 보수 강경파를 대표했던 닉슨 대통령이 오히려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고 중국과 '핑퐁 외교'로 데탕트(화해) 분위기를 끌어낸 것처럼 말이다. 닉슨은 '레드 콤플렉스'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기에 오히려 과감한 결단이 가능했다. 이런 맥락에서 '서윗 콤플렉스'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젊은 보수야말로 여가부를 비롯해 이들의 후원으로 생존해온 여성계가 악화시킨 젠더 갈등에 대한 청구서를 제대로 들이밀 수 있지 않을까.

민주당도 그동안 진영논리와 가스라이팅 위에서 강요된 '서윗함의 증명'에 집착할 게 아니라 불평등의 심화와 세습자본주의 문제 등 진짜 중요한 사회경제적 의제에 집중했으면 한다. 여가부 존폐는 진보 진영 전체에 결코 가치 있는 전선이 아니다. 진짜 중요한 전선에 집중해 돌파구를 만드는 민주당의 변화된 모습을 기대하는 건 역시 무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