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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형기가 고발한다

방역 실패 비난 받을까 실내마스크 고집, 이게 과학 방역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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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질병관리청 방문 때 과학 방역을 강조하는 윤석열 대통령. 오른쪽은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중단하라고 주장하는 시민단체 회원들. 그래픽=차준홍 기자

많은 사람이 과학에는 단 하나의 진리만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특정 상황에 맞는 과학적 결정은 여럿 존재할 수 있다. 특히 인간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과학적 결정은 전통·문화·정서·가치관 등의 과학 외적 요소에서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비록 과학적 진리는 같아도 결론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최근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이 좋은 예다. 조문한 세계 각국 지도자 가운데 마스크를 착용한 이는 중국 서열 2위 왕치산 부주석 단 한 명이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한국에서와는 달리 노 마스크로 참석했다. 마스크 착용이 전염병 감염 예방에 도움된다는 건 과학적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위험의 한계는 이처럼 다 다르다.

지난달 19일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치러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 거의 모든 참석자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가운데 중국의 왕치산 부주석이 흰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중앙에서 약간 왼편의 석상 앞). 중앙포토

지난달 19일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치러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 거의 모든 참석자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가운데 중국의 왕치산 부주석이 흰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중앙에서 약간 왼편의 석상 앞). 중앙포토

어쩌면 상식에 가까운 얘기를 장황하게 한 건 정치방역 문제를 거론하기 위해서다. 윤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지난 문재인 정권이 자랑하던 K 방역은 실상 정치 방역이었다고 비판했다. 지난 정권이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방역의 과학적 잣대를 이리저리 구부린 건 맞다. 가령 민주노총 집회는 애써 못 본 척하면서 반대 진영 집회에 참석한 사람은 살인자로까지 매도했다. 입맛에 맞는 말을 해주는 전문가만 골라 쓴 것도 사실이다. 꼭 필요한 백신 확보엔 늑장을 부리더니 '주권 확보'라며 특정 국산 치료제 개발 회사에 올인에 가까운 지원을 하면서 쓸데없는 정치적 색채를 더하기도 했다.

이런 데 신물 난 국민은 과학 방역을 내세운 윤 대통령에게 큰 기대를 했다. “전문가 의견과 데이터에 근거한 표적 방역(윤 대통령)”이라든지 “전문가가 과학적 근거로 결정(안철수 대통령직 인수위원장)”한다거나, “축적된 빅데이터를 활용해 생산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방역(백경란 질병관리청장)”이라는 식으로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전문가·데이터, 이런 단어에 윤 정부가 말하는 과학 방역의 핵심이 담겨 있다. 이전 정권은 전문가와 데이터가 없는 비과학적 방역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새 정부 출범 후 지금까지 방역 정책을 보자니 의문이 든다. 정말 윤석열 정부가 전문가와 데이터를 통한 방역을 하고 있나? 사람들 반응은 대체로 시큰둥하다. 마스크 착용, 백신 추가 접종, 경구 치료제 확보, 중증 환자용 병상 확보…. 새 정부는 이런 조치를 이어가고 있는데,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모두 지난 문재인 정부가 썼던 방역 수단이다. 다른 한편으론 방역 거버넌스가 중복돼 비합리적이라는 지적이 들린다. 전문가 의견을 더 잘 반영한다는 게 명분이지만 ‘코로나19 특별대응단’이 질병관리청장이 이끄는 중앙방역대책본부와 역할과 기능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기대에 한참 못 미친 과학 방역에 대한 실망감은 여론조사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대통령과 정부가 코로나 대응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윤 대통령 취임 직후 80%가 넘었지만 지난 7월 초에는 29%까지 떨어졌다(한국리서치).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왼쪽에서 셋째)이 지난 7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팬데믹 시대의 과학적 방역과 백신주권'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왼쪽에서 셋째)이 지난 7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팬데믹 시대의 과학적 방역과 백신주권'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모든 방역 수단은 우리 삶과 행동을 다양한 방식으로 제약한다. 어떤 방역 정책도 사회를 떠난 진공 상태에서 순전히 과학적으로만 결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은 이런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이전 정부를 비과학적이라고 비판하는 데 급급해 잘못된 프레임을 설정했다고 본다. 상대를 비과학적이라고 비판하는 것만으로 과학을 온전히 독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딱히 새로 내놓을 방역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과학 방역이라지만 결코 좋은 과학 점수를 주기 어려운 정책도 있다. 실내 마스크 착용 강제가 그중 하나다.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벗고 있다가 식당에 들어가는 순간 잠깐 마스크를 쓰고 주문이 끝나면 다시 마스크를 벗는 게 실상이다. 마스크를 벗고 식사하는 식당에서 코로나 감염이 더 빈발했다는 아무런 과학적 증거는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실내 마스크를 고집하는데, 이게 과연 과학 방역인 걸까.

마스크는 특히 성장기 아동에게 치명적이다. 전문가들은 어린이들이 오랜 기간 마스크를 착용한 환경에서 자라면 언어·정서·인지 발달이 떨어진다고 지적하는데 이런 과학적 문제 제기에 대해서는 왜 아무런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8월 정부가 실시한 전국 단위 코로나19 항체 양성률 조사 결과, 자연감염을 통해 획득한 5~9세 소아의 항체 양성률은 무려 80%였다. 이 연령대는 백신 1차 접종률이 2% 미만에 불과할 정도로 부진했다. 무슨 의미냐면, 자연감염만으로 항체가 생길뿐더러 아무리 마스크를 써도 감염 자체를 막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같은 조사에서 국민 20%는 미 확진 감염자였다. 감염 사실을 아예 모르고 지나갔거나 굳이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될 만큼 증상이 견딜만 했다는 의미다. 또 국민 98%가 항체를 보유하고 있다는 결과도 우리 사회가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워졌다는 청신호다. 이런 게 과학이다.

그런데 정부는 항체가 있다고 재감염이 안 된다는 보장이 없다며 여전히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아예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니지만 바이러스를 상대로 전승을 거두려는 이런 식의 방역 정책이 과연 지금 시점에 얼마나 효율적일지 의문이다.

이처럼 한계 효용이 크지 않은데도 새 정부가 여전히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마스크를 벗었다가 자칫 확진자 숫자가 늘면 쏟아져나올 "방역 실패"라는 비난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지난 3월 오미크론 변이가 유행할 당시 전 세계적으로 마스크를 가장 잘 착용하던 한국이 인구 대비 확진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나라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떠올려야 한다. 마스크가 소용없다는 게 아니라 새로운 변이가 출현하면 마스크로는 바이러스 감염세를 막기에 역부족이라서 하는 말이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던 팬데믹 초기와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코로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됐고 이런저런 대처 수단도 이미 확보했다. 더군다나 감염자 숫자까지 빠르게 줄어드는 추세다. 중증화율도 약해졌다. 모든 데이터가 보다 유연한 방역으로 방향을 틀라고 얘기한다. 정부가 아무리 마스크 규제를 풀더라도 건강 염려가 큰 우리 국민 특성상 마스크 쓸 사람은 계속 다 쓸 거다. 그러니 괜한 마스크로 방역의 고삐를 죌 게 아니라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해와 협조를 구해야 할 때다. 이게 진정한 과학 방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