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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도 조경태도 "면책특권 폐지"..."말로만" 비판 터진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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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이 10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국회의원 면책특권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이 10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국회의원 면책특권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면책특권은 불체포특권과 함께 국회의원이 누리는 대표적인 특권이다.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한 발언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더라도 형사·민사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특권을 없애자는 주장이 최근 국회에서 잇달아 나오고 있다.

10일 당권 주자로 거론되는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국회는 면책특권 뒤에 숨어서 상대 정파를 공격하고 막무가내식 비방과 선동으로 국민들을 혼란과 분열의 늪으로 밀어 넣고 있다”며 국회의원 면책특권 폐지를 주장했다. 조 의원은 “면책특권을 폐지하면 정쟁에 대한 거친 언어, 표현, 주장들이 많이 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지난달 28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국회 특권 내려놓기도 미루지 않겠다”며 “면책특권 뒤에 숨어 거짓을 선동할 수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면책특권 폐지가 새로운 주장은 아니다. 여론이 정치개혁 최우선 과제로 꼽는(지난해 12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TBS 여론조사 결과) 탓에 정치권은 선거 때면 면책특권 폐지를 정치혁신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그러나 매번 흐지부지됐는데, 개헌 사항이라는 제약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헌법 45조엔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이 규정돼 있다. 개헌과 맞물려 논의되지 않는 이상 면책특권 폐지 주장은 무의미한 것이다. 여기에 면책특권이 1689년 영국 권리장전부터 시작된 입법부를 외압에서 보호하는 민주주의 원칙이라는 지적도 면책특권 폐지론이 힘을 잃은 이유였다.

그런데도 면책특권을 없애자는 주장이 반복해 나오는 건 정치적 목적과 관련이 있다는 시각도 크다. 예컨대 이재명 대표는 2009년 당시 야당인 민주당 부대변인을 맡을 때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제도는 비밀의 벽에 갇혀 질식하는 진실에 생명을 주어 왔다”며 면책특권을 옹호했다. 그런데 대선 정국이던 지난해 말부턴 “국회의원 면책특권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이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등을 제기하며 이 대표를 공격하던 시점이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 대표가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를 주장하면서 면책특권만 말하고 불체포특권 폐지는 말하지 않는 건 자신의 ‘사법 리스크’ 때문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정당혁신추진위원회 장경태 위원장과 혁신위원들이 지난 1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원 면책특권 제안 등을 골자로 한 제2차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혁신안에는 국회의원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 제한, 선출직 공직자 축의 부의금 수수 금지 등의 내용이 담겼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정당혁신추진위원회 장경태 위원장과 혁신위원들이 지난 1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원 면책특권 제안 등을 골자로 한 제2차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혁신안에는 국회의원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 제한, 선출직 공직자 축의 부의금 수수 금지 등의 내용이 담겼다. 뉴스1

조경태 의원은 중앙일보 통화에서 면책특권 폐지 주장이 “이 대표를 겨냥한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 역시 당권 도전을 앞두고 ‘이재명 견제’라는 정치적 목적으로 면책특권 폐지 주장을 들고나온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노회찬 전 정의당 원내대표. 2013년 노 전 대표의 ‘안기부 X파일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불법 도청 녹취록을 인용한 보도자료를 국회에서 기자들에게 배포한 행위는 면책특권이 적용되지만, 해당 보도자료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행위는 면책특권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유죄 판결했다. 면책특권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에만 해당하고 그 외엔 적용되지 않는다. 중앙포토

노회찬 전 정의당 원내대표. 2013년 노 전 대표의 ‘안기부 X파일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불법 도청 녹취록을 인용한 보도자료를 국회에서 기자들에게 배포한 행위는 면책특권이 적용되지만, 해당 보도자료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행위는 면책특권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유죄 판결했다. 면책특권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에만 해당하고 그 외엔 적용되지 않는다. 중앙포토

어려운 길 ‘개헌’ 말고, 쉬운 길 ‘법률 개정’ 있는데…

면책특권이 정치적 주장으로만 흐르다 보니 개헌에 앞서 그 부작용을 어떻게 줄일지 실효성 있는 논의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현재도 법률로써 과도한 면책특권을 제한할 방법은 있다. 국회법은 ‘의원은 본회의나 위원회에서 다른 사람을 모욕하거나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대한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이를 어길 경우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징계를 내리도록 하고 있다. 국회 외부에서 형사·민사적 책임은 지지 않더라도 국회 자체 징계는 받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윤리특위가 사실상 ‘제 식구 감싸기’로 운영되고 있다 보니 면책특권 견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 18대 국회부터 현재 21대 국회까지 윤리특위에서 가결된 징계안은 2건(2011년 강용석, 2015년 심학봉)밖에 안 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윤리특위를 실효성 있게 운영할 방안을 담은 법안이 제출되기도 했다. 21대 국회에서는 지난 1월 김승원 민주당 의원이 국회 윤리특위를 상설화하고, 윤리특위 내에 시민배심원단을 구성하는 내용 등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상임위에서 단 한 번도 논의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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