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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때리면서 XX이야" 교권침해 알린 교사 징계한다는 교육청 [이슈추적]

중앙일보

입력

전북교육청이 학교 폭력과 교권 침해 사건을 알린 익산 모 초등학교 A교사에게 지난달 통보한 감사 결과. 전북교육청은 A교사가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경징계 의견을 냈고, A교사는 "부당하다"며 재심의를 요청했다. 사진 A교사

전북교육청이 학교 폭력과 교권 침해 사건을 알린 익산 모 초등학교 A교사에게 지난달 통보한 감사 결과. 전북교육청은 A교사가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경징계 의견을 냈고, A교사는 "부당하다"며 재심의를 요청했다. 사진 A교사

전북교육청 "가해 학생 정보 누설 부적절" 

전북 익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학교 폭력과 교권 침해 사건을 알린 교사에게 교육청이 '부적절했다'며 징계 의견을 내자 현직 교사들이 반발하고 있다. 교원 단체를 중심으로 "교권 침해 현실을 알린 교사를 징계한다면 앞으로 누가 부조리를 고발하겠냐"며 연대에 나섰고, 전국에서 2만명에 가까운 교사가 징계 취소를 요구했다.

8일 전북교육청에 따르면 익산교육지원청은 지난달 23일 익산 모 초등학교 5학년 담임 A교사에게 경징계 처분 의견이 담긴 전북교육청 감사 결과를 통보했다. 전북교육청은 A교사가 지난 6월 가해 학생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민감한 정보를 당사자 동의 없이 본인이 운영하는 유튜브에 공개한 것은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의무와 직무상 알게 된 비밀누설 금지, 품위 유지 의무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도대체 A교사는 어떤 사건을 알렸기에 징계까지 받을 위기에 놓였을까. 전북교육청과 해당 학교 등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 5월 이전 학교에서 학교 폭력으로 문제가 된 B군이 A교사 반으로 강제 전학을 오면서 시작됐다. 또래보다 키와 덩치가 큰 B군은 등교 나흘째 되던 날 동급생과 말다툼하다 '날아차기'를 하는 등 폭력을 휘둘렀다.

A교사와 교장 등이 B군을 말렸지만, '네가 뭔데 나를 제지하냐', '죽여버리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A교사 수업 중엔 태블릿PC로 음악을 크게 틀고 칠판에 'X발'이라고 욕을 쓰면서 수업을 방해했다.

학교 폭력 이미지. 중앙포토

학교 폭력 이미지. 중앙포토

동급생에 '날아차기' 담임엔 수업 중 'X발' 폭언   

같은 반 친구 일부가 B군이 A교사에게 '선생이라 때리지도 못할 거면서 기강 잡고 XX이야' 등 폭언을 하는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하자 B군은 '지금 찍는 애들 얼굴 다 외워두겠다'고 윽박질렀다. B군의 난동은 3교시까지 이어졌고, 학교 측은 출석정지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이튿날 이 학교 학생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B군이 학교 앞에서 등교하는 학생 길을 막고 일일이 학년과 반을 물어보더니 같은 반 여학생을 발견한 뒤 '전날 찍은 영상을 지워야 하니 휴대전화를 달라'고 했다. 이를 거부하자 B군은 여학생을 밀치며 위협했다.

교사들이 달려오고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지만, B군은 되레 '지금 초등학생 한 명을 두고 경찰 2명이 뭐 하고 있냐'고 따졌다. 정작 경찰을 부른 사람은 B군이었다. 전날에도 B군은 자신이 소란을 피우고도 112에 아동 학대 신고를 해 경찰이 학교에 출동했다.

B군은 같은 반 친구들이 교실에서 키우던 햄스터를 죽이기도 했다. 학교 측은 B군에게 특별교육과 출석정지 처분을 재차 통보했다.

이 과정에서 B군은 어머니 이름으로 지역 학부모 커뮤니티에 가입한 뒤 A교사 휴대전화 번호와 함께 '이딴 선생은 없어져야 함. 내 멱살을 잡고 때리려 함. 다들 전화해서 따져주셈'이라는 글을 올렸다. 한 학부모가 이를 꾸짖는 댓글을 달자 A교사라고 의심한 B군은 '내일 학교 갑니다. 각오하셔야 할 것입니다'라는 대댓글로 맞받았다.

전북교사노조가 지난 24일부터 A교사에 대한 징계 취소를 요구하며 관련 설문을 진행한 모습. 사진에선 1만7000여 명이 동의한 것으로 나오지만, 현재 전국 교사 1만8000여 명이 동의했다. 사진 A교사

전북교사노조가 지난 24일부터 A교사에 대한 징계 취소를 요구하며 관련 설문을 진행한 모습. 사진에선 1만7000여 명이 동의한 것으로 나오지만, 현재 전국 교사 1만8000여 명이 동의했다. 사진 A교사

"가해 학생, 심리 치료 후 공격성 줄어…곧 전학"

사건이 불거지자 교육청은 B군에게 학교 접근 금지 조처를 내렸다. B군은 병원에서 심리 치료를 받았으며 조만간 다른 지역으로 전학을 갈 예정이라고 학교 측은 전했다.

징계 방침에 대해 A교사는 지난달 28일 "철저하게 공익을 위한 행동이었다"며 전북교육청에 재심의를 요청했다. "유튜브 제작 전 관련 학부모 등에게 동의를 구했고, B군이 난동을 부리는 영상을 배포한 사실도 없다"는 취지다.

A교사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학부모들이 당시 익산교육지원청에 문제를 제기했고, 언론에서도 문의가 쏟아졌다"며 "다수 아이가 피해를 보고 있고, B군에게도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직접 경험하고 사실로 판정된 내용만 유튜브로 알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론화 과정에서 김승환 교육감 시절 학생인권조례를 만든 교육청 간부들이 해당 영상을 내리지 않으면 감사를 받을 것이라고 협박하고 '나쁜 교사' 프레임을 씌웠다"며 "학생인권조례를 악용하는 사람들은 학생이 잘못해 교사가 혼내면 '정서 학대'라 하고, 다른 학생들과 분리하면 '학습권 침해'라고 왜곡한다"고 주장했다.

서거석 전북교육감이 지난 5일 전북교육청에서 가진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학생 인권과 교권의 균형을 강조해 온 서 교육감은 당선인 시절 교권 침해 현실을 공론화한 A교사를 만나 위로했지만, 최근 전북교육청은 A교사에게 징계 의견을 내 논란이 일고 있다. 뉴스1

서거석 전북교육감이 지난 5일 전북교육청에서 가진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학생 인권과 교권의 균형을 강조해 온 서 교육감은 당선인 시절 교권 침해 현실을 공론화한 A교사를 만나 위로했지만, 최근 전북교육청은 A교사에게 징계 의견을 내 논란이 일고 있다. 뉴스1

교사들 "'교권 보호' 교육감 정책 역행"…1만8000명 '징계 취소' 동의

동료 교사들도 분노하고 있다. 전북교원단체총연합회는 지난 4일 성명을 내고 "학교 폭력과 교권 침해에 대해 고발하면 해당 교사가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나쁜 선례를 만들 수 있다"며 징계 재고를 요구했다.

전북교사노조도 지난 24일부터 징계 취소 운동에 나서 현재 전국 교사 1만8000여 명이 동의했다. 정재석 전북교사노조 위원장은 "A교사는 교권 침해 문제를 처음으로 공론화했고, 이를 계기로 국회에서는 교사의 생활지도권을 강화하는 생활지도법이 발의됐다"며 "당선인 시절 A교사를 만나 '학생 인권과 함께 교권도 보호하겠다'고 했던 서거석 교육감의 정책 방향과 전혀 다른 결정"이라고 했다.

송욱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북지부장은 "교사가 개인 SNS를 통해 공론화한 건 방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어 교육청이 부당한 사유로 징계를 내린 것 같지 않다"면서도 "교권 침해가 심각하게 일어나는 상황을 고려해 교육청의 선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성하 전북교육청 대변인은 "교육감은 학생 인권과 교권의 균형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다"며 "하지만 재심의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입장을 내는 건 부적절하다"고 했다.

김승환 전 전북교육감이 지난 6월 28일 전북교육청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이임사를 하고 있다. 김 전 교육감은 2010년 전북교육감에 당선된 뒤 12년간 재임하면서 2013년 전북학생인권조례 제정에 따라 전북학생인권교육센터를 여는 등 학생 인권 보호에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합뉴스

김승환 전 전북교육감이 지난 6월 28일 전북교육청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이임사를 하고 있다. 김 전 교육감은 2010년 전북교육감에 당선된 뒤 12년간 재임하면서 2013년 전북학생인권조례 제정에 따라 전북학생인권교육센터를 여는 등 학생 인권 보호에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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