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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벌리고 몸 뒤틀린 정어리 집단 폐사…'바다 저승사자' 덮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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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만에서 집단 폐사한 정어리. 대부분 입을 벌리고 있다. 안대훈 기자

마산만에서 집단 폐사한 정어리. 대부분 입을 벌리고 있다. 안대훈 기자

입 벌리고 몸 뒤틀린 정어리 폐사체

최근 경남 창원시 앞바다에서 110t이 넘는 정어리가 집단 폐사한 것과 관련 ‘바다의 저승사자’라 불리는 ‘빈산소수괴’(산소부족 물덩어리)가 원인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빈산소수괴는 바닷물에 녹아있는 산소 농도가 3mg/L 이하인 물 덩어리로, 어·패류 호흡 활동을 방해해 죽음에 이르게 한다.

지난 3일 오전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3·15 해양누리공원. 바다 곳곳에는 10~15㎝ 길이 정어리 폐사체가 둥둥 떠 있었다. 이런 정어리는 해양 부유 쓰레기를 청소하는 청항선(淸港船·69t급)이 연신 수거했다. 이렇게 수거한 정어리는 100kg들이 마대에 담았다. 폐사한 정어리를 보니 한가지 특징이 있었다. 상당수가 입을 벌리고 있거나 아가미덮개 부분이 열려 있었다. 몸이 휜 채 죽어 있는 모습도 곳곳에서 보였다.

전문가 “산소부족·수온변화로 죽었을 듯”

이를 관찰한 최재석 강원대 어류연구센터장은 “죽은 정어리 떼 외관을 보면 전형적인 용존산소 부족이나 갑작스러운 수온 변화로 인해 죽었을 경우 나타나는 현상을 보인다”며 “폐사한 모습을 보면 빈산소수괴로 인한 용존산소 부족이나 수온 변화 등 자연적인 원인으로 발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물고기는 빈산소수괴나 해수 온도 변화 등이 감지되면 본능적으로 피한다. 다만 다른 포식자(갈치 등)로 인해 도망을 가지 못했거나 빈산소수괴 범위 등이 넓어 빠져나가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최 센터장은 설명했다.

정어리 집단폐사는 지난달 30일 마산합포구 구산면 해양드라마세트장 인근에서 처음 발견됐다. 이후 1일 마산합포구 진동면 도만항과 다구항, 2·3일 마산합포구 3·15해양누리공원, 5일 마산합포구 진전면 앞바다에서 집단 폐사가 확인됐다. 실제 창원해경이 확보한 폐쇄회로TV(CCTV)를 보면 지난달 30일 오전 1시 53분쯤 창원시 마산합포구 도만항 내 인도 쪽에 있던 정어리가 살아있는 상태로 움직이다가 이튿날 오전 10시 15분쯤에는 폐사한 상태로 정어리가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지난 6일까지 수거한 정어리 폐사체만 112t에 달한다.

지난 3일 오전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3·15해양누리공원 앞 바다에 집단 폐사한 정어리 떼가 떠 있다. 안대훈 기자

지난 3일 오전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3·15해양누리공원 앞 바다에 집단 폐사한 정어리 떼가 떠 있다. 안대훈 기자

창원시 등 관계기관이 지난 3일 오전 경남 창원 마산합포구 3·15해양누리공원 인근에서 집단 폐사한 정어리 폐사체를 수거하고 있다. 안대훈 기자

창원시 등 관계기관이 지난 3일 오전 경남 창원 마산합포구 3·15해양누리공원 인근에서 집단 폐사한 정어리 폐사체를 수거하고 있다. 안대훈 기자

당초 폐사한 어류가 청어로 알려졌으나 국립수산과학원 등 조사 결과 정어리로 확인됐다. 청어와 정어리는 모두 청어과 어종으로 크기와 색상 등이 비슷하다. 그래서 전문가도 식별하기 쉽지 않다. 두 어종은 아가미 내 빗살무늬로 구분한다. 빗살무늬가 있으면 정어리, 없으면 청어다.

갖가지 폐사 원인 추정…자연적 요인에 무게

정어리 집단 폐사 원인을 놓고 갖가지 추측이 나왔다. 빈산소수괴나 해수온도 변화, 적조 등 자연 현상과 함께 해양오염이나 어민들이 포획 뒤 폐기했을 것이란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자연적 원인에 무게를 두고 있다. 청어는 20㎝ 이하는 포획이 불가능하지만, 정어리는 포획에 제한이 없다. 이 때문에 어선이 어린 정어리를 잡은 뒤 폐기했을 수 있다는 추정은 설득력이 약해졌다.

해양오염 가능성도 크지 않은 상황이다. 최 센터장은 “청산가리 등 독극물이나 중금속 등 해양오염으로 물고기가 죽으면 아가미가 녹아내리거나 어류 몸 곳곳에 다른 이상 증상이 보여야 하는데 사진과 영상 등에서 봤을 때는 이런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경 수사에서도 아직 인위적인 원인으로 추정할 수 있는 단서가 나온 것은 없다. 해경 관계자는 “당시 조업을 했던 어선 등을 상대로 조사했는데 특별한 단서가 나온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창원 앞바다 ‘빈산소수괴’ 잦아 

따라서 빈산소수괴나 해수온도 변화, 적조 등 자연적인 원인으로 집단 폐사했을 가능성이 더 커지고 있다. 특히 마산만 일대에서 1년에 약 6개월 동안 빈산소수괴가 발생하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국민의 힘 이달곤 의원(창원시 진해구)이 지난 6일 해양수산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창원 마산만과 진동만을 포함한 진해만은 2018년부터 2021년까지 4년간 연평균 173일 동안 빈산소수괴가 발생했다.

임현정 국립수산과학원 남동해수산연구소장은 “집단 폐사가 발생한 현장에서 빈산소수괴가 발생한 것은 우리 쪽에서도 확인한 상태지만 이것만 가지고 빈산소수괴만을 폐사 원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며 “폐사 현장 주변 오염 여부 분석과 과거 데이터, 폐사체 검사 결과 등 종합적인 조사를 한 뒤 이달 말쯤 최종 원인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마산만에서 집단 폐사한 정어리 입벌린 모습. 안대훈 기자

마산만에서 집단 폐사한 정어리 입벌린 모습. 안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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