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전략’ 없는 재생에너지 청사진, 결국 한전 전력망 개방이 답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808호 16면

김경식의 실전 ESG 

동부제철 당진공장의 ESS 시설. [연합뉴스]

동부제철 당진공장의 ESS 시설. [연합뉴스]

정부는 지난 8월 30일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기본계획) 초안을 발표했다. 2년마다 수립하는 기본계획은 향후 15년의 중장기 전력 수요를 예측하고, 그에 맞는 전력 설비와 전원 구성, 전력 계통, 전력 시장 운영계획 등을 담는다. 이번 발표가 기다려진 것은 문재인 정부가 수립한 제9차 기본계획(2020년 12월)과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상향안’(2021년 10월)에서 원자력 발전 비중을 크게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는 확대한 것이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문 정부의 9차 기본계획과 NDC 상향안은 한마디로 ‘탈(脫)원전’으로, 탄소중립 목표 달성은커녕 재생에너지 목표 달성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렇다면 10차 기본계획안은 어떨까. 정부는 ‘2030년도 전원별 발전량’ 비중을 2030 NDC 대비 원자력은 23.9%에서 32.8%로 8.9%포인트 늘리고, 재생에너지는 30.2%에서 21.5%로 8.7%포인트 낮췄다. 석탄은 21.8%에서 21.2%로, LNG는 19.5%에서 20.9%로 탄소 배출이 많은 발전원 감축 기조는 유지했다. 달라진 건 원전 비중은 늘리고 재생에너지 비중은 낮췄다는 점이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 미래세대를 위해 반드시 가야 할 방향이다. 탄소 배출을 줄여 궁극적으로 탄소중립(탄소 배출량 제로)을 달성하고, 에너지 자립을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에너지 생산지와 소비지를 붙이는 ‘분산전원’을 위해서도 가야할 길이다. 그런데 10차 기본계획에는 재생에너지에 대한 적극적인 ‘전략’이 안 보인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문제의식도 없고,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 NDC보다 줄이면서 “주민 수용성, 실현 가능성 등을 감안해 합리적 수준인 21.5%로 조정 전망했다”고 밝혔다. ‘전망’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원자력이나 석탄·LNG와 같은 전통 에너지는 전망을 하고 ‘계획’을 세우면 된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는 전망이 아니라 분명한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한 분야다. 계획은 ‘있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 되지만, 전략은 ‘목표 달성을 위해 없는 자원을 만든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래픽=양유정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yang.yujeong@joongang.co.kr

21.5%라는 수치를 제시했지만, 정부를 믿기도 어렵다. 정부는 20여 년째 목표만 제시하고 한 번도 목표를 달성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2004년을 ‘신재생에너지 원년(元年)’으로 선포했다. 당시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은 수소·연료전지, 태양광, 풍력 등 3대 핵심 분야 총 40개 과제에 대해 대기업과 협약을 체결하고, 400여 억원을 지원하는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사업’을 본격 추진키로 했다(2004년 9월 21일). 2010년에는 2015년까지 40조원을 투자해 세계 5대 신재생에너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구체적인 발전전략으로 태양광을 제2의 반도체, 풍력을 제2의 조선업으로 육성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제대로 되지 않았다.

2010년에는 스마트그리드 국가로드맵을 발표했다. 지식경제부는 ‘스마트그리드 국가로드맵 총괄위원회’(위원장 김영학 차관)를 구성해 2030년까지 국가 단위의 스마트그리드 구축 완료를 목표로 설정했다. 스마트그리드는 2010~2013년 제주도에서, 2019~2022년 광주광역시 8000가구와 서울시 3000가구에서 아직도 시범사업만 하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는 거창한 계획만 발표하고 한 번도 이에 대한 분석이나 평가, 피드백을 한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재생에너지 원년이었던 2004년 이후 18년여 가 지난 지금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5.8%에 그친다(2020년 기준). 태양광은 물론 풍력도 국내 제조 기반과 기술 경쟁력을 대부분 상실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이유는 비교적 간단하다. 재생에너지를 판매할 ‘시장’이 없기 때문이다. 시장이 없으니 경쟁이 없고, 경쟁이 없으니 노력할 필요가 없다. 노력을 안 하니 쇠락할 수밖에 없다. 정부도 이를 모르는 건 아니다. 정부는 매번 전기 판매 시장이 원활히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다고 장담했다. PPA(전기 생산자와 소비자 간 직거래 제도) 등 일부 전기 판매 시장 활성화를 위해 노력한 흔적도 있긴 하다. 하지만 PPA마저 재생에너지에 대해서만 적용하고 있고, 이 경우 한전이 전기요금과는 별도로 전력망(grid) 이용료를 받고 있어 사실상 실적이 없다.

재생에너지 판매 시장을 활성화하려면 한전의 송배전 전력망을 개방하면 된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한전의 민영화라고 주장하는데, 민영화하라는 게 아니라 돈을 받고 민간에 빌려주라는 얘기다. 한전의 망을 민간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면 민간 발전사업자 간 판매 경쟁이 벌어질 것이고, 이 경쟁 속에 재생에너지 발전량이나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ESS 관련 기술도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전기차용 배터리만 해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술 발전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더불어 소비자를 위한 서비스의 질도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정부는 한전의 전력망 개방을 망설이고 있다.

이제는 반대로 생각해야 한다. 재생에너지를 어떻게 늘릴 것인지가 아니라, 재생에너지가 시장에 먹히는 방법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러면 수요가 생기고, 이 수요는 공급을 자극시켜 수요와 공급 사이에 필요한 각종 기자재·ESS·플랫폼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판매 시장’만 활성화해주면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다는 얘기다. 유럽·미국이 2030년 목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70~80%까지 설정할 수 있는 것도 전력망 개방으로 민간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판매 시장을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민간 발전사업자의 참여를 늘려간다면 21.5%라는 목표치가 넘기 어려운 산은 아닐 것이다.

현재 모든 에너지는 ‘전기’로 모아지고 있다. 가정에서는 가스레인지가 인덕션(전기레인지)으로 바뀌고 있다. 아마도 재생에너지 생산(이용)이 높아지면 난방도 전기가 대체하게 될 것이다. 수송 분야도 이미 전기화가 급속도록 진행되고 있다. 전기차 판매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면 수소전기차도 늘어날 것이다. 재생에너지로 수소를 만들면 이 수소는 제철소의 이산화탄소 주범인 코크스(석탄을 가공해 만든 연료)를 대체하는 수소환원제철(철 생산 때 석탄이 아닌 수소를 사용)도 가능해진다. 미래 세대를 위해서도 깨끗한 에너지 전기로의 전환은 반드시 필요하다. 생각을 바꾸고, 결정을 해야 할 때다.

김경식 고철(高哲) 연구소장. 한국ESG학회 부회장(현대제철 전 기 획실장). 현대차 정몽구 회장이 당진제철소 건 설시 홍보책임자로 일했다. 기업 오너를 보좌하 면서 배운 ‘기업이 국력이고 복지’라는 그들의 경영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ESG 경영’을 연구 하고 있다. 저서로 『사람 중심 ESG를 말한다』(공저)가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