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비정규직 양극화 심화, 유럽식 산별노조로 해소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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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호 16면

김경식의 실전 ESG 

민주노총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원청노조)는 하청노조 파업에 금속노조가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자 지난 7월 21일 금속노조 탈퇴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 사진은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에 붙어 있던 탈퇴 투표를 격려하는 대자보. [연합뉴스]

민주노총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원청노조)는 하청노조 파업에 금속노조가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자 지난 7월 21일 금속노조 탈퇴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 사진은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에 붙어 있던 탈퇴 투표를 격려하는 대자보. [연합뉴스]

지난 6월 2일부터 7월 22일까지, 51일 동안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하청노조)들은 임금 회복과 노조 인정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그런데 하청노조의 파업으로 일을 못하게 되자, 이번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가 파업 철회 맞불 집회를 열었다.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는 대우조선해양 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원청노조가 하청노조의 파업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원청노조는 이와 동시에 금속노조 탈퇴 여부를 묻는 찬반 투표를 진행하기도 했다. 투표 결과 탈퇴 요건인 3분의 2 찬성에는 미달했으나 찬성율이 52.7%에 달했다. 노조원 10명 중 5명은 금속노조에서 탈퇴하자는 쪽에 표를 던진 것이다. 파업은 종결되었지만 대우조선해양 사태는 조선 산업의 불합리한 구조적 현실은 물론 미래 경쟁력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던졌다.

사회적 대화 거부하고 활동 공간 좁혀

더 큰 문제는 같은 회사, 같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하에서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가 서로 앙숙이 돼 싸우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옛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의 비정규직 출신 첫 민주노총 위원장이다. 비정규직 출신 위원장으로서 하청노조의 파업을 바라보는 심정은 어땠을까.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민주노총이 그간 보여 온 모순적인 행위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은 탄소중립위원회,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지역노사민정협의회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위원회에는 참여하고 있고, 사측을 뺀 노정협의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렇듯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 거부로 스스로 활동 공간을 좁히고 있다.

그러면서도 노정교섭을 요구하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정부는 교섭의 대상자가 아니다. 정부가 노조와 교섭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 때 노조 측 협상 대표였던 금속노조 홍지욱 부위원장은 최근 개최된 언론사 세미나에서 “중앙정부 차원의 노사정협의체를 가동해 지역 차원의 노사정협의회를 견인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속노조는 사측을 뺀 노정교섭을 요구하고 있는데, 그 안에서는 노사정협의체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양유정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yang.yujeong@joongang.co.kr

직선제 위원장이 있고, 단계별 위계(位階) 조직임에도 민주노총은 왜 이렇게 모순적인 행동을 하는 걸까. 이는 민주노총 의사결정 구조 때문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노조위원장은 직권으로 사측과 유리하게 합의(직권조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같은 방식에 대해 민주노총 내에서는 불만이 많았고, 실제로 논란이 됐던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위원장이 합의를 해도 의결 단위, 예컨대 중앙집행위원회나 대의원대회에서 다시 들여다보고 동의를 받도록 했다.

노조위원장이 사측과 합의를 했다고 해서 파업을 곧바로 중단하는 게 아니라, 노조위원장과 사측의 합의 내용이 의결 단위에서 통과돼야 비로소 파업을 중단하는 식이다. 이렇다 보니 의사결정이 늦은 편이고, 여러 사람의 입김으로 모순적인 결정이 나오기도 한다. 요즘에는 특히 더욱 강성화돼 사측과의 합의안에 ‘해고금지’와 같은 단어가 포함되지 않으면 의결 단위를 통과하기 어렵다.

이렇게 된 이유는 민주노총 내부에 존재하는 뿌리 깊은 파벌도 영향을 미쳤다. 민주노총은 금속노조·전교조·교수노조 등 16개 산별연맹으로 구성돼 있다. 그 중 자동차·조선·철강 등이 소속된 금속노조가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이들 중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범현대그룹의 회사들, 특히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조가 핵심이다. 민주노총의 실질적 맹주 노릇을 하고 있는 조합원이 현대차 정규직 노조라는 얘기다. 금속노조 내에서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크지 않은 것도 이 같은 구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노총도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다. 아니, 바뀌지 않으면 도태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민주노총 정규직 조합원의 고임금을 가능하게 했던 보호막(희생양)들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자동차 산업 자체가 축소되고 있다. 전기차의 급성장으로 엔진 위주의 가치사슬(다단계 부품사)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신규 생산이 금지된다. 일본의 경우 디지털화의 가속과 재택근무로 신차 판매대수가 2018년 430만대에서 2050년 225만대(48%)까지 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 세계적 공급망 재편과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해외 현지 생산 증대도 불가피하다. 이는 결국 금속노조 내 실질적 맹주인 현대차 정규직의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있을 때 벌자”는 임금 투쟁을 가능케 했던 여러 보호막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정규·비정규직 통합 ‘1사 1노조’ 만들어야

민주노총이 남긴 그늘도 점점 커지고 있다. 현장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정규직 노동자 ‘연봉 1억원’ 시대를 이끌었지만 정규직·비정규직 양극화나 노동시장 경직성도 민주노총이 쌓은 탑에 비례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8월 기준 전체 임금노동자 2172만명 가운데 정규직은 1357만명(71%), 비정규직은 815만명(29%)이다. 비정규직은 1년 새 9만명 늘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월 160만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대리운전 기사, 가사 노동자, 배달 라이더, 온라인 콘텐트 창작자, 택배기사, 위탁판매원, 프리랜서 강사 등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670만명에 이른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디지털시대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기를 맞아 음지를 확산시키고 있다. 음지에서는 건강한 생명체가 자랄 수 없다.

민주노총은 이제 음지를 없애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100만 민주노총 조합원 간의 양극화 해소는 전체 임금노동자 2200만명의 양극화 해소에 큰 모범이 될 것이다. 그러려면 바뀌어야 한다. ‘산별노조 쟁취’라는 초심으로 돌아가 함께 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지금과 같은 기업별 노조는 ‘동일회사 동일임금’ 전제 하에 노사협상을 각 기업이 자율적으로 하게 된다. 일본도 우리와 같은 형태다. 이와 달리 산별노조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전제 하에 같은 업종의 모든 기업(대·중·소기업 및 부품 협력사 등)이 임금 인상률과 주요 근로조건은 같이 협상을 하고, 각 회사는 성과급만 다르게 가지게 된다.

따라서 산별노조를 할 경우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를 크게 완화할 수 있다. 유럽의 방식을 검토해 볼 만 하다. 유럽은 대부분 산별노조를 채택하고 있어 기업에는 노조가 없고, 사무직·기능직 등 직능 간 차이 조정을 위한 사내 협의회를 두고 있다. 이 같은 산별노조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같은 회사의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조합부터 통합해 ‘1사 1노조’를 만들고, 정규직·비정규직 차별 없이 복리후생부터 나누어 가져야 한다. 그러려면 정규직이 양보해야 한다.

현대차 노조, 2006년 ‘산별노조 전환’ 추진했지만 실패

산별노조로의 전환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다. 현대차 노조는 2006년 금속노조에 가입했고, 이를 계기로 금속노조는 산별교섭을 추진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갈라진 정규직·비정규직 간 노조 통합 작업도 추진됐다. 2007년 기아자동차(현 기아) 노조는 1사 1노조로 통합했고, 현대자동차 노조도 세 번이나 통합을 추진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산별교섭을 하기에는 대·중·소기업(부품업체 포함) 간의 괴리가 너무 컸다.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컸던 셈이다. 자연히 산별교섭은 진전이 없었다. 노동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현대차와 현대차 정규직 노조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보고 있다. 그 이후 각 회사의 노조는 자기들만의 레일을 달려왔다. 그 결과 2017년 현대중공업은 1사 1노조로 통합이 됐으나, 같은 해 기아는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가 결별했다. 단일노조 안에서 비정규직 노조의 지위 향상 요구로 정규직 노조와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자신들의 보호막으로 생각했고, 비정규직은 정규직을 연대가 아닌 타도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전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 산별노조 추진을 기치로 내건 금속노조와 상급 조직인 민주노총은 기업노조를 기반으로 한 산별연합체 수준의 어정쩡한 상태가 됐다. 이것이 지금의 민주노총의 모습이다. 민주노총보다 금속노조, 금속노조보다 현대차 정규직 노조가 힘이 더 세다는 게 현장의 평가다.

김경식 고철(高哲)연구소장 pentagram700@naver.com 한국 ESG학회 부회장(전 현대제철 기획실장). 오랜 기업 생활을 통해 ‘좋은 기업이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 신념으로 ‘ESG경영’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람 중심 ESG를 말한다(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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