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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판매 경쟁 체제 도입해야 소비자도 살고 한전도 산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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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3호 16면

김경식의 실전 ESG

한국전력공사가 올해 상반기 14조303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 적자구조 심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한전 서울본부 외벽에 붙어있는 적자 정부 책임론 현수막. [뉴시스]

한국전력공사가 올해 상반기 14조303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 적자구조 심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한전 서울본부 외벽에 붙어있는 적자 정부 책임론 현수막. [뉴시스]

8월 1일 전국전력노동조합(전력노조)은 긴급 성명을 내고 “전력 민영화 일련의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긴급’ 성명은 7월 21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전력산업, 독점구조 해소하고 시장경쟁 원리 도입해 혁신 이끌어야 한다’는 보도자료에 대한 반박이다. 전경련은 보도자료에서 “우리나라도 전력 소매부분 경쟁 도입을 시작으로 시장친화적, 혁신주도형 전력산업으로 한단계 발전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경련이 이 같은 내용의 보도자료를 낸 배경은 7월 5일 정부가 발표한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에 대한 반응이었다. 이 발표에서 정부는 ▶시장 다원화 ▶가격기능 강화 ▶경쟁 여건 조성 등 경쟁과 공정의 원리에 기반한 전력 시장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전기 도매가격 결정 방식(계통한계가격·SMP)을 전기 판매사업자 등 수요 측이 참여하는 양방향 입찰제로 전환하고, 한전 독점 판매구조를 점진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전력 송전·배전망 이용의 중립성을 높이겠다고 했다.

민간 전기판매 허용 정부안에 반발

정부 발표에도, 전경련의 보도자료에도 한전의 민영화 내용은 없다. 그런데 전력노조는 왜 ‘한전의 민영화 중단’이라는 표현을 한 걸까. 전력노조는 이날 성명에서 “공적 주체인 한전이 전담하던 전력산업 영역을 재벌에 열어준다는 것은 그들의 시장 장악력을 높임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전력산업을 넘겨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정부의 정책 방향 발표에서 독점 판매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전력 송전·배전망 이용 중립성을 높이겠다’고 한 부분을 곡해한 것으로 보인다.

송전·배전망 이용 중립성 재고는 쉽게 말해 민간도 전기를 팔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예컨대 A라는 기업이 대규모 시설투자를 통해 전기저장장치(ESS)를 설치하고, 요금이 싼 심야에 충전을 한 뒤 전기 사용량이 많은 낮에 전기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식이다. 아파트 단지에서 입주민들이 ESS를 설치해 똑같은 방식으로 전기요금 부담을 낮추는 것도 가능하다. 지금은 이런 식의 전기 판매가 관련법상 불법인데, 정부는 이런 식으로 전기 판매처를 다양화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전기 판매처 즉, 전기의 소매판매망을 늘리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판매처를 다변화하면 그 지역에서 생산해서 그 지역에서 소비하는 ‘분산전원’이 가능해지고, 전기 생산과 소비 시간 간의 간격을 메울 수 있는 ‘스마트그리드’도 활성화 할 수 있다. 지금은 어떤가. 생산된 전기에 맞춰 소비를 해야 하는 구조여서 생산과 소비의 불일치에 따른 비효율이 심각하다. 모든 전기 소비자는 요금이 비싼 줄 알면서도 낮에 생산되는 전기로 에어컨을 사용해야 한다. 소매판매망을 늘리면 이 문제를 차츰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소비자는 최적의 전기 소비를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비효율을 제거할 수 있다. 시간대별 전기 부하율이 안정돼 발전소 추가 건설도 억제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로 공장이나 사무실을 돌리는 RE100 달성률도 높일 수 있다. 환경친화적인 ESG 경영도 가능해진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전력노조와 일부 시민단체의 반대가 심하기 때문이다. 전력노조는 전기 판매처의 다변화가 곧 한전의 민영화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전 정부에서도 전기 판매처 다변화를 시도한 적이 있지만 실패했다. 정부는 2016년 전력 소매시장 개방을 위해 관련법을 만들어 발의했다. 이 법안은 2017년 정기국회에서 논의되었으나, 당시 민주당 이훈 의원이 발의한 ‘한전의 전력판매시장 독점 명문화’ 법안과 묶여 같이 논의돼다 두 법안 모두 폐기됐다(2017년 9월 21일 국회회의록). 이훈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사실상 전기의 소매시장 즉, 전기 판매처 다변화를 막기 위한 법안이었던 것이다.

전기 판매처 다변화를 반대하는 전력노조 등은 판매처 다변화가 궁극적으로 전력산업의 민영화이고, 전기요금이 비싸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민영화하고는 거리가 멀다. 일반적인 공기업의 민영화는 ▶경영권의 일부를 민간에 매각하거나 ▶정부 소유 지분을 민간에 매각하거나 ▶사업부문(조직)의 일부를 민간에 이양하는 것을 말한다(김윤자 외, 『에너지전환과 전력산업구조개편』). 그런데 어떻게 전기 판매처 다변화가 민영화라는 말인가. 오히려 판매처 다변화는 한전에 기회가 될 수 있다. 민간 은행뿐 아니라 우체국에도 예금과 보험 상품이 있다. 금융시장을 개방해 민간이 예금·보험을 팔고 있는데, 이 때문에 우체국 금융이 위축됐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안전성’에서 민간보다 더 나은 신뢰를 받고 있다.

판매처를 다변화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재생에너지를 늘려야 하는데 비용이 적지 않게 든다. 재생에너지 공급량을 2030년까지 20%로 늘리는 데만 100조원이 필요하다(산업통상자원부, 2017년). 재생에너지를 늘리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의 단점인 간헐성·변동성을 보완하는 ESS가 필요하고, 스마트그리드를 위해 스마트계량기(AMI) 등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마트그리드는 2010년 확정한 국가로드맵상 2030년까지 국가단위의 구축을 목표로 했지만, 지금도 돈이 없어서 시범사업(2010~2013년 제주도, 2019~2022년 광주광역시 8000가구, 서울시 3000가구)만 하고 있다. 한 해 30조원 적자가 나는 한전 독점체제로는 감히 넘 볼 수 없는 규모다. 민간에 전기 판매를 허용하면 시장이 경쟁체제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인프라 구축이 이뤄질 것이다. 한전은 기존대로 한전의 역할을 그대로 하면 된다.

스마트그리드 통해 전기료 36% 절감

판매처를 다변화하면 전기요금이 비싸질 것이라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 전력노조 등은 ESS 등 설비투자가 늘어나기 때문에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오히려 경쟁이 붙으면 가격은 내려갈 수 있다. 정부 발표를 보면 스마트그리드를 통해 소비자는 필요한 시간에 전기를 사용하게 되므로 에어컨을 사용하는 여름철에는 전기요금이 월 1만2150원(50㎾h) 절감할 수 있다고 한다(2019년 10월 21일 보도자료). 지난해 월평균 307㎾h를 사용하는 4인 가족 기준 전기요금이 3만3512원이었는데, 이를 기준으로하면 약 36% 절감되는 것이다. 이는 밤에 남는 전기를 ESS에 저장했다가 낮에 사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낮에 전기생산이 넘쳐서 강제로 가동을 중단하고 있는 태양광 전력을 ESS에 저장했다가 사용하면 더 내려갈 것이다.

이 모든 것의 핵심은 가격신호, 즉 시장이다. 시장에 의해서 수요가 조절되고 그것이 전기 생산을 변화시키고 수익자가 비용을 부담하고 혜택을 누리도록 해야 한다. 한전을 쪼개서 민간에 매각하라는 게 아니다. 신규 수요조절 산업에 민간의 참여가 가능하도록만 하면 된다. 소비자는 한전의 기존 요금제도와 신규 요금제도 중 유리한 것을 선택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시장에서 자발적인 혁신 경쟁이 일어날 것이다. 이 같은 체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정부의 존재 이유다.

전력산업 정책, 공급 위주서 수요조절 방식으로 바뀌어야

지난 1911년 전기사업법이 제정된 이후 현재까지 한 세기 동안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늘 ‘정부주도’로 추진돼 왔다. 1960년 출범한 장면 정부는 국영·민영 경쟁체제를 기본으로 하는 구조개편에 방점을 두었다. 당시 주무부처였던 상공부가 반대하자 태완선 당시 부흥부 장관이 구조개편 작업을 주도를 했다. 그러나 상공부가 계속 반대하면서 급기야 장면 총리는 태완선을 상공부 장관에 임명했다(1961년 5월 4일).

태 장관의 구상은 복잡하게 난립된 발전·송전·배전회사를 한 회사로 통합, 국영화하되 신규 민영회사를 진입시켜 경쟁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이 구상은 5·16 군사정변으로 중단됐고, 이후 출범한 군사정부가 이어 받아 1961년 7월 100% 국영 한국전력산업주식회사가 출범했다. 그해 말에는 대한전원개발 등 5곳의 민간 전기회사가 등장했다. 이후 20여 년이 지난 1982년 1월 정부는 경영 성적이 부진한 전력회사의 지분을 인수하기 시작해 한국전력산업주식회사와 합병, 한국전력공사(한전)로 개편했다(오진석, 『한국 근현대전력산업사』).

이렇게 출범한 한전은 1997년 말 IMF 구제금융을 계기로 민영화를 전제로 한 전력산업구개편(구조개편)이 진행됐다. 이에 따라 발전부문을 한국수력원자력과 석탄 5개사로 분할했다(2002년 4월 2일). 당시 구조개편(안)은 2008년 12월까지 배전부문을 분할 및 민영화하고, 2009년 이후 완전한 소매경쟁도 담고 있었다. 하지만 발전부문만 6개사로 분할돼 있고 나머지 분활·민영화는 중단된 상태다. 다만, 2010년 전후 급격한 전력 예비율 저하에 따라 민간 LNG 발전이 늘어났고, 재생에너지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전력판매는 한전 독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지난 100여 년 간의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특징은 국가 주도로 진행되었다는 점과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전력을 위해 ‘공급자’ 측 입장에서 논의되고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전력산업 정책은 ‘공급’이 아니라 ‘수요조절’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공급 정책은 생산된 전기에 맞춰 소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생산과 소비의 불일치가 심하다. 수요조절 시장에서는 이 같은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돼 소비자는 최적의 전기소비를 할 수 있게 된다. 결국 계절별·시간대별 전력수요 변화가 전력 공급원을 선택하는 시대로 가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자연스럽게 관련 산업을 육성시킬 것이고, 이는 석탄발전의 정의로운 전환에 필요한 일자리도 이어 받을 것이다.

김경식 고철(高哲)연구소장, 한국ESG학회 부회장(현대제철 전 기획실장). 현대차 정몽구 회장이 당진제철소 건설시 홍보책임자로 일했다. 기업 오너를 보좌하면서 배운 ‘기업이 국력이고 복지’라는 그들의 경영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ESG 경영’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람 중심 ESG를 말한다』(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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