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청소년이 마약 총책하는 나라 된 한국

중앙선데이

입력 2022.10.08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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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8호 30면

SNS 타고 급격히 느는 10대 마약 사범

도처에 흰가루 놓여…군대선 대마 재배

검경, 수사권 다툼말고 합동수사 나서야

몇 년 전만 해도 마약청정국으로 여겼던 우리나라에서 갖가지 마약이 무서운 속도로 퍼지고 있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밀매는 일상이 됐다. 가상화폐로 결제하고 국제 택배로 물건을 받는 사례도 빈번히 적발된다. 한국은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쉽게 마약을 손에 넣을 수 있는 나라가 돼가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마약사범의 연령이 급격히 낮아진다는 사실이다. 검찰에 따르면 마약사범으로 적발된 10대 청소년이 2011년 41명에서 2021년 450명으로 11배 늘었다. 올 상반기 적발된 마약사범 중 10대가 292명, 20대가 2717명으로 전체의 35.1%를 차지했다. 밀수·밀매를 일삼은 ‘텔레그램 마약방’ 총책을 검거해보니 고등학생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IP 추적이 어려운 ‘다크 웹’을 통한 해외 직구 마약 거래가 늘면서 인터넷에 익숙한 청소년이 쉽게 유혹에 빠져든다.

마약 범죄자의 행각은 날로 대담해진다. 카페에서 옆 테이블에 사람들이 있는데도 마약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가 하면 강남의 한 유흥업소에선 20대 남성과 여성이 필로폰이 든 술을 마시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군에도 마약이 침투한다.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에 따르면 육군 부사관이 인터넷으로 대마 종자를 주문해 부대에서 택배로 받은 뒤 부대 안에서 직접 대마를 재배하다 적발됐다. 이렇게 손에 넣은 마약을 버터와 섞어 빵에 발라 먹었다니 기가 막힌 노릇이다. 휴가 때 산 필로폰을 관물대에 보관하다 발각된 육군 상병도 있다.

특정 장소에 물건만 두고 거래하는 ‘던지기’ 수법이 횡행하는 바람에 도처에서 약물이 발견된다. 제주의 한 가정집에는 지난달 28일 국제우편으로 LSD가 배송됐다. 서울 강북구의 한 빌딩에서 경비원이 주운 지갑에 필로폰 비닐팩이 들어있었고 서초구 한 식당의 에어컨 실외기 위에도 마약이 놓였다. 언제 누가 내 주변에 마약을 두고 갈지 모르는 현실이다.

이렇게 날로 대범해지고 지능화하는 마약범죄와 대조적으로 당국의 대응력은 오히려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과 경찰은 문재인 정부 때 진행된 수사권 조정에서 마약 수사 권한을 두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경찰에선 “검찰이 마약 수사를 직접 할 수 있는 권한을 챙겼다”고 비판하고, 검찰에선 “직접 수사권 박탈로 마약 수사에 큰 차질이 빚어진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검찰 수사진이 눈앞에 나타난 마약 사범을 체포하지 못해 112에 신고하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진다. 마약 범죄는 우리 사회 전반을 위협하는 중대범죄가 됐다. 검찰과 경찰이 권한을 다툴 계제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마약 문제를 심각하게 우려하는 목소리가 잇따른다. 김민석 의원은 “지난해 마약류 밀수단속이 역대 최대로 관세청에 적발된 건수가 2020년 696건에서 2021년 1054건으로 51% 늘었으며 적발량은 757% 증가했다”고 지적했고, 강훈식 의원은 “지난해 수사기관에 검거된 10대 마약사범이 2019년에 비해 1.9배가 됐다”고 질타했다. 어제 열린 경찰청 국정감사에서도 의원들은 윤희근 경찰청장에게 마약 범죄에 대한 강도 높은 대책을 주문했다.

마약 범죄만큼은 검찰과 경찰이 총체적인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수사권을 포함해 전반적인 대응 체계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어제 대검 회의에서 합동수사 의지를 밝힌 것도 검경 등 관련 기관이 한 몸처럼 움직이지 않으면 마약 범죄를 제압하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다. 마약이 한번 독버섯처럼 번지고 나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해봐야 소용없다는 사실을 세계 각국이 반면교사로서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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