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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권 덕에 친해진 백남준, 장례식까지 앵글에 담았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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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8호 19면

1세대 사진작가 이은주

지난달 15일 경기도 과천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제6전시실 백남준 특별전에서 백남준 예술가의 생전 모습을 사진 찍어온 이은주 작가가 그동안의 작품 활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 재가동 기념식이 열렸다. 정준희 기자

지난달 15일 경기도 과천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제6전시실 백남준 특별전에서 백남준 예술가의 생전 모습을 사진 찍어온 이은주 작가가 그동안의 작품 활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 재가동 기념식이 열렸다. 정준희 기자

2006년 작고한 백남준은 지금도 가장 ‘살아있다’. 올해 그의 탄생 90주년을 기념해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다양한 전시에서 후배 작가들의 헌정작을 통해 끝없이 되살아나고 있다. 지금 현재 눈부시게 발전한 미디어아트 역사의 고인돌 같은 그의 대표작 ‘다다익선’(1988)도 4년여 침묵을 깨고 다시 생명을 얻었다. 지난달 15일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 ‘다다익선’의 복원을 마치고 재가동을 기념하며 오픈한 전시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에도 백남준과 ‘협연’한 후배 작가들의 신작들이 공개됐다.

‘부퍼탈에 떠 있는 전차’ 사진 첫 공개

비디오아트의 창시자인 백남준은 전위적인 음악가이기도 했다. 피아노를 도끼로 내려치는 과격한 퍼포먼스로 기억되지만, 일상에선 아름다운 피아노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지금 과천에 가면 전설처럼 전해오던 백남준의 진귀한 전자 오르간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사진작가 이은주가 1999년 뉴욕의 작업실에서 연주를 요청해 녹음해온 ‘신라의 달밤’,‘울밑에선 봉선화’ 등 10여곡이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왼손을 못써 오른손으로만 연주했는데도 강렬하면서도 처연한 연주인데, 밴드 이날치의 장영규가 모티브 삼아 사운드 설치작품 ‘휘이 댕 으르르르르 어헝’을 만들었다. 백남준이 ‘울밑에선 봉선화’를 연주하면서 이은주와 나눈 대화들이 어느새 리드미컬한 이날치의 신곡으로 수렴된다. 영상 작가 이미지는 이은주가 백남준을 찍은 사진들과 이날치의 신곡을 활용한 쇼트 필름을 제작했다.

죽은 자와 산 자의 ‘협연’에 징검다리를 놓은 게 이은주의 기록들이다. 전시장 한쪽 벽면엔 인간 백남준 말년의 모습을 스케치한 사진들이 뭉클한데, 그의 마지막 15년을 밀착해서 기록한 이은주의 작품들이다. 요즘에야 누구나 쉽게 찍은 사진이 넘쳐나지만, 작은 체구의 여성의 몸으로 무거운 카메라를 짊어지고 깨알같이 셔터를 눌러 기록한 이 사진들이 없었다면 ‘협연’의 진정성도 퇴색됐을 터다.

국립현대미술관 ‘다다익선:즐거운 협연’전시장에서 자신이 찍은 백남준 초상 앞에 선 이은주 작가. 정준희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다다익선:즐거운 협연’전시장에서 자신이 찍은 백남준 초상 앞에 선 이은주 작가. 정준희 기자

“실제로 뉴욕에 가서 담아온 자료라 의미가 있겠죠. 지금 생각하면 내가 미쳤다고 뉴욕까지 왔다갔다 했나 싶어요. 백 선생은 거리에 대한 감각도 없는 사람이라 촬영할 만한 게 있으면 수시로 저를 불렀죠. 그의 사진을 찍어서 특별히 내가 빛날 거라는 생각도 못했는데, 문안차 다니면서 담아온 기록이 귀하게 쓰였네요.”

귀한 연주를 녹음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일상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작업실에 가면 늘 오르간 앞에 앉아 계셨어요. 나는 칼럼도 종종 쓰는 사람이라 늘 작은 녹음기를 갖고 다니는데, 하루는 좀 쳐달라고 하니 당신이 유행가는 잘 친다면서 신나서 열몇 곡을 연주해 주더군요. 내가 유일한 관객이었던 셈인데, 만일 건강하셨다면 기회가 없었을  거예요. 병이 드셔서 집안에서 즐길 것이 필요하니 오르간을 치셨고, 나에게도 시간을 할애해주신 거겠죠.”

인연의 시작도 피아노였다. 1992년 문예회관에서 백남준이 무용가 김현자와 ‘피아노를 때려부수는’ 퍼포먼스를 하는 사진을 찍으면서다. 하지만 정작 가족처럼 가까워진 건 초상권 덕분이다. “당시엔 내가 유명 예술가들을 많이 찍었고, 백 선생도 그중 하나였어요. 그런데 어떤 기자분이 나더러 백 선생의 초상권 사용 동의를 받아놓으라더군요. 백남준은 점점 더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될테니 초상권을 확보해야 의미가 있다면서요. 그래서 호텔로 찾아갔는데, 10분만 얘기하자고 했더니 1시간도 얘기할 수 있다면서 흔쾌히 싸인을 해줬어요. 나중에 감사의 표시로 그해 찍은 사진들로 앨범을 만들어서 드렸더니 너무나 좋아하시더군요. 그 계기로 가까워졌죠. 솔직히 백선생이 이렇게까지 위대한 인물이 될 줄 몰랐는데, 미리 내다보고 귀띔해준 그 기자를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해요. 지금 떳떳하게 전시할 수 있는 것도 사진을 찍을 때마다 동의를 받아놨기 때문이죠.”

이은주 작가가 제공한 음원과 사진으로 영상작가 이미지와 작곡가 장영규가 협업한 쇼트 필름 ‘바이바이 얼리버드’ 설치 모습.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은주 작가가 제공한 음원과 사진으로 영상작가 이미지와 작곡가 장영규가 협업한 쇼트 필름 ‘바이바이 얼리버드’ 설치 모습.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문화예술인들 400여 명 초상 기증

이은주는 1970년대부터 무용을 비롯해 음악, 미술, 연극, 종교 등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을 앵글에 담아온 1세대 사진작가로, 최근 예술가 400여명의 초상을 아르코 예술기록원에 기증해 화제가 됐다. 백남준과 발레리나 강수진의 사진 일부만 아직 기증하지 않았단다. “내 일생의 업적이 예술가들의 역사를 남긴 거라 생각해요. 2003년에 20여년간 찍은 108명 사진을 전시했는데, 전시하려고 찍은 게 아니라 그들과 술도 마시고 놀다 보니 찍은 사진들이더군요. 우리는 그저 한 시대를 같이 살았던 것이고, 그게 가장 행복한 일이죠. 백남준, 천경자 같은 분들을 뉴욕에서 만나고 돌아올 때마다 늘 이런 생각을 했어요. 한국의 피카소같은 분들이 쓸쓸히 미국에서 돌아가시겠지만, 내 앵글 속에 잡혀서 한국에서 영원히 숨쉴 수 있는 게 아닌가. 사진은 몇백 년이 흘러도 그 시대와 역사를 얘기해 주니까요.”

이번 전시에는 백남준 말년의 흔적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엄선했다. 장례식에서 꽃에 파묻혀 있는 사진은 이번에 처음 공개한 컷이다. “많은 예술가를 찍었지만 장례식까지 가서 사진을 찍은 건 백 선생이 유일해요. 검버섯이 많았던 얼굴에 곱게 화장을 하고 평화롭게 잠들어 계셨어요. 하지만 부인인 구보타 시게코 여사가 권해서 손을 잡아보니 얼음처럼 차갑더군요. 죽은 모습을 찍은 거라 고이 접어뒀었는데, 이번에 처음 꺼내보게 됐네요.”

또 다른 미공개 컷 ‘부퍼탈에 떠 있는 전차’는 비공식적으로 백남준의 마지막 작품을 찍은 것이다. 말년의 백남준이 자신의 예술적 고향인 독일 부퍼탈을 그리워하며 자택에 만들어 놓고 보던 장난감 도르레 같은 설치물인데, 생전에 공개된 적 없다.

“2011년에 시게코를 만나러 갔더니, 남준의 마지막 작품이라며 찍으라고 하더군요. 시게코는 남편과 친했던 다른 여자들은 다 질투했어도 나는 질투하지 않았어요. 내가 백 선생 보다 시게코와 가깝게 지냈으니까요. 백 선생이 나를 동생처럼 편하게 여기고 한국말로 소통하니까 부인이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신경을 썼죠. 남편 때문에 빛을 못 본 작가라, 작가로서 존중하는 작전으로 다가간 덕에 마음을 열어준 것 같아요.”

그 후 스튜디오가 없어지고 구보타 여사도 작고해 ‘부퍼탈 전차’는 실물이 사라졌다. 이은주의 앵글 속에만 남겨진 백남준 작품인 셈이다.

'바이바이 얼리버드' 설치 모습.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바이바이 얼리버드' 설치 모습.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글쎄요. 중요한 사람의 기록을 남긴다는 사명감이 은연중 있었으니 장례식까지 찾아가서 사진을 찍었던 거겠죠. 장례식에서 만난 오노 요코가 자기가 40년 친구라면서 그러더군요. 대가인 백남준이 내 전시에 와서 ‘네가 최고’라고 엄지 척을 하길래 우쭐했는데, 다른 전시에 가서도 똑같이 하더라나요. 백남준은 어디에 가서든 모든 예술가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한사람의 위대한 예술가로서, 또 선하고 매력적인 인간으로서 백남준 선생과의 만남은 사진가인 내게 가장 귀한 인연이었다고 꼭 말하고 싶네요.”

“다다익선 30년 후 고장” 말에 생전 백남준 “난 몰라”

지난 9월 15일 ‘다다익선’ 재가동을 기념한 레이저쇼가 열렸다. 정준희 기자

지난 9월 15일 ‘다다익선’ 재가동을 기념한 레이저쇼가 열렸다. 정준희 기자

‘삼성문화재단 및 삼성전자의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 실현을 보게 된 백남준 작 “다다익선” 기획은 1003대의 삼성 컬러TV로 구성되는 장대한 세계 최대의 비디오 아트 인스톨레이션이며 한국에 최초로 설치될 본 작품이 세계적 문화여론에 미치게 될 파급도에 관해서는 가히 예측불허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1988년 4월 배포된 국립현대미술관의 ‘다다익선’ 설치 계획에 관한 보도자료 중 당시 유준상 학예연구실장의 ‘다다익선의 홍보효과’라는 글의 서두다. ‘다다익선’은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개관을 앞두고 작품 의뢰를 받은 백남준과 설계를 담당한 건축가 김원이 2년여 작업 끝에 현 전시공간에 설치했다. 높이 18.5m의 탑처럼 쌓은 5~25인치 브라운관(CRT) 모니터 1003대에서 8개의 영상이 교차하며 돌아가는, 백남준 작품 중 최대 규모다. 2003년 모니터를 전면 교체하는 등 수리를 반복해오다 2018년 2월 가동을 중단하고 전면적인 보존·복원 작업을 추진해왔다.

브라운관 모니터 737대를 수리, 교체했고, 266대는 모니터의 외형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평면 디스플레이(LCD)로 교체했다. 8개의 영상은 디지털로 변환해 영구적인 보존이 가능해졌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처음 가동된 1988년 9월 15일을 기념해 지난 9월 15일 재가동 기념식을 가졌고, 향후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주 4일(매주 목~일요일) 하루 2시간씩 가동한다.

이은주 작가는 “다다익선을 설계한 김원 건축가가 33년 전에 백 선생에게 ‘30년 후엔 기계가 고장날 것’이라고 했더니, 백 선생은 ‘고장 나거나 말거나 그땐 몰라’라고 했다더라. 그 소리 듣고 과연 행위예술이 백남준의 마인드다 싶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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