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다중채무 땐 개인회생, 일시 연체 땐 신속채무조정 바람직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808호 06면

‘눈덩이 빚’ 출구전략 

20대 회생 신청자 상당수는 돌려막기를 하다 빚을 키운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회생법원 모습. [연합뉴스]

20대 회생 신청자 상당수는 돌려막기를 하다 빚을 키운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회생법원 모습. [연합뉴스]

“카드 돌려막기 해결책이 있을까요? 이게 정말 무서운 게 금액이 계속 커지네요.”

“빚내서 장사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요. 순간의 모면 같아요. 너무 힘들어 폐업을 생각하고 있어요.”

‘빚’의 약한 고리가 점점 드러나고 있다. 신용평가기관 나이스(NICE) 평가정보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의원(국민의힘)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3개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최대한 끌어와 더 빌릴 곳도 없는 자영업 다중채무자가 올해 들어 6개월 사이 45%(지난해 말 28만6839명→6월 말 41만4964명)나 늘었다. 같은 기간 이들 다중채무자의 대출액은 162조원에서 195조원으로 20% 넘게 증가했다. 이들의 1인 평균 대출액도 4억7000만원에 이르렀다. 일반 가계의 다중채무자도 451만명을 넘어섰다. 최근 강도 높은 긴축정책으로 대출금리가 급격하게 치솟으면서 ‘빚 폭탄’의 경고음이 점점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원화 대출 연체율은 0.22%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는 착시 현상이라는 게 금융권 안팎의 진단이다. 정부와 금융기관이 부실차주의 대출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를 지속적으로 미뤄주고 있어서다. 이달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원리금 상환 유예 조치는 다섯 번째 연장됐다. 당초 지난달 종료 예정이었지만 1년 더 연장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만기 연장은 최대 3년 미뤄준다. 2020년 4월 첫 조치가 시작된 이래 만기 연장은 최대 5년 6개월에 달한다. 우리 경제에 고물가·고금리·고환율(원화 가치 하락) ‘3고(高)’ 위기가 닥치면서 산소호흡기를 떼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상반기만 해도 이러한 지원 조치의 9월 종료를 못 박았지만, 결국 입장을 바꿨다. 금융위 관계자는 “충분한 위기 대응시간을 줘서 차주와 금융권 모두 충격 없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빚의 상환 유예 정책은 ‘깜깜이 부실’을 키울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원리금 상환 유예 조치가 연장될수록 원금은 물론 누적되는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부실 차주와 좀비 기업은 늘어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부채 수준이 국내총생산(GDP)에 비해 과도하게 늘어나는 수치인 ‘금융 불균형’ 정도가 현재 78.5포인트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 75.4포인트와 외환위기 때 52.5포인트보다 높다고 경고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만기 때마다 연장을 결정하면 차주들의 빚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점점 불어나다 어느 순간 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센터장은 “단기 위기 땐 부실을 이연시켰다 경기 회복 후 상환을 돕는 것이 최선일 수 있지만, 지금처럼 위기의 장기화 국면에선 정리하고 가야 더 큰 고통의 충격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 음식점을 운영하는 A씨는 지난해 배달 중 사고로 3000만원의 빚을 졌다. 장사를 해서 갚을 작정으로 신용대출에 현금서비스도 썼지만, 손실은 점점 불어났다. 종업원 월급을 주기 위해 결국 사채까지 손을 댔다. A씨는 “사채까지 5~6곳의 대출을 돌리다보니 매번 돌려막기가 급급해 숨이 막힌다”고 하소연했다.

# 사회초년생인 B씨는 개인회생을 고려하고 있다. 학창시절부터 학자금과 생활비로 빚이 쌓이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주식 투자의 손실마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마이너스통장은 물론 지인들에게 빌린 융자 원금 등만 합해도 1억원이 넘게 불어난 상태. 매월 소득보다 갚아야할 빚이 많아져 밤잠을 설치고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가 올 상반기 개인회생을 신청한 청년들 51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0명 중 6명은 빚을 갚기 위해 더 질 나쁜 빚(고금리·사채 등)을 쓰는 ‘돌려막기’를 하다 부채를 키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돌려막기를 했다는 응답자가 63%에 달했고, 다른 부채를 변제하는 과정에서 상환이 불가능할 정도로 채무가 늘었다는 경우가 54%였다. 문제는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이렇게 감당 못할 채무를 안고 괴로워하는 과정에서 빚에 관한 종합 상담을 받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답했다는 점이다.

혼자서 고민하고 끙끙 앓다가 개인회생을 신청하기까지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재원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상담관은 “빚의 종류나 재정 상황에 따라 상환 시나리오가 달라져야 하는데, 당장 눈앞의 빚만 끄려다 최악까지 치닫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임형석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현재 다양한 채무조정수단 활용이 가능하지만, 빚을 진 사람들은 심리적·경제적 위축으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선택하기 어려워 상담 기회의 보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도한 빚의 무게에 짓눌린 사람들을 지원하는 제도는 어떻게 알아봐야 할까. 현재 빚의 일부를 탕감 받을 수 있는 국내 채무조정제도는 크게 신용회복위원회(이하 신복위)에서 운영하는 사적 채무조정제도(신속채무조정·프리워크아웃·개인워크아웃)와 법원의 개인회생, 파산 등이 대표적이다.

일시적 연체라면 → 신속채무조정

1. 우선 일시적으로 상환이 어려워진 경우라면 신복위 연체전 채무조정(신속채무조정)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연체 기간이 30일 이내이거나 실업이나 질병 등으로 연체 우려가 있을 때 신청 가능하다. 6개월 상환 유예를 받고, 최장 10년 이내 상환기간 연장 및 원리금 분할상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한달 이상 연체라면 → 프리워크아웃

2. 연체기간이 한 달 이상이라면, 이자율 채무조정(프리워크아웃)을 고려할 수 있다. 연체기간이 31일 이상 89일 이하인 경우 채무자의 상환 능력에 따라 이자율 30~70% 인하를 받을 수 있다. 신청 서류가 간편하고 신청 다음날부터 바로 추심이 중단된다. 이미 등록됐던 단기 연체정보도 해제되고, 금융채무불이행자로 등록되지 않아 신용회복에 유리하다. 최장 10년 이내 상환기간 연장 및 원리금 분할상환이 가능하다. 단, 원금 감면의 지원은 없다. 신복위 관계자는 “소득 등에 비해 과도한 상환금액이 부담이라면 프리워크아웃 보다 원금 감면 지원을 받는 워크아웃을 택하는 게 적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권 채무 과다하다면 → 워크아웃

3. 워크아웃은 소득 대비 금융기관 채무가 과다해 3개월 이상 연체된 경우에 도움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채무조정이 확정되면 이자는 감면되고, 원금은 최대 70%(사회취약계층은 최대 90%)까지 탕감 받을 수 있다. 다만 신복위의 채무조정은 금융권 채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사채 등 비금융채무 조정이 어렵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자영업자 원리금 탕감 → 새출발기금 

4. 자영업자·소상공인이라면 지난 4일 출범한 새출발기금을 통해 채무를 감면 받거나 대출금리 인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부실차주(연체기간 3개월 이상)의 빚 60~80%를 감면해주고, 기초수급자 등 취약계층은 최대 90%까지 빚을 깎아준다. 부실우려차주(연체기간 3개월 미만)는 원금 감면 혜택은 없지만, 최고 연 9% 이하로 이자를 조정 받을 수 있다. 이들 제도는 신복위의 워크아웃 및 프리워크아웃과 유사하지만, 지원 폭이 보다 크다는 점이 눈에 띈다.

소득 있지만 다중채무 있다면 → 개인회생

5. 현재 가장 광범위하고 강력한 빚 탕감법은 법원을 통해 채무조정(개인회생·파산)을 받는 것이다. 은행 대출, 신용카드 대금, 대부업체 및 개인사채 등이 모두 조정 대상이다. 개인회생은 3년동안(최장 5년) 최소생활비 인정금액을 제외한 금액을 매달 상환하면 이후 남은 빚은 없애준다.

소득 없는데 빚만 과다 → 개인파산

6. 아예 소득이 없어 빚을 갚을 수 없다면 개인파산을 고려해봐야 한다. 개인파산은 가진 재산으로 빚을 일시에 청산하고, 남은 빚은 탕감해주는 제도다. 금융기관 외 채무가 많고, 개인회생으로도 갚기 어려운 경우에 신청할 수 있다. 다만, 면책 결정 시 최장 5년간 정보가 등록된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신복위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신복위 채무조정제도를 신청한 누적인원은 지난해 말 기준 209만6166명에 이른다. 이 중 채무조정 지원 확정자는 187만2395명(체결률 89.3%)이다. 홍석철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신용회복위원회 창립 2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에서 “지난 20년간 30조원의 채무감면이 이뤄졌고, 채무조정제도 이용자들의 삶의 질 개선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홍 교수 연구에 의하면 워크아웃 이용자들의 금융안전성(24%)이 올라가고, 추심고통(24%)이 내려갔으며 이로 인해 삶 전반의 만족감(15%)이 올라가고, 행복감(22%)은 커졌다. 신복위 관계자는 “과도한 빚으로 고통 받고 있다면 우선 상담을 통해 도움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며 “신복위는 금융권 채무 중심의 조정을 다루지만, 법원 개인회생과 파산신청을 무료 지원하며 종합적인 재무컨설팅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현재 신복위는 홈페이지에서 ‘나에게 맞는 채무조정 진단하기’를 통해 제도별 월 변제금, 총 납입액 등을 비교 가능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이외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경기도 서민금융복지지원센터 등 지자체를 통해서도 종합 컨설팅을 받을 수 있다. 법원은 상담 기능이 없고 각 채무조정의 적합 여부만 판단한다. 이재원 상담관은 “개인 회생 신청자의 절반은 중도 탈락한다”며 “3년간 성실상환해야 남은 채무를 감면 받을 수 있기에 시작 전에 체력(재무건전성)을 올리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채무조정 신청 전에 상담을 통해 소비습관과 재정상태를 종합 점검해 달성 가능한 플랜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서경준 돈병원(인천가계부채센터장) 원장은 “급한 마음에 소득 전부를 빚 갚는 것에만 올인하지는 마라”며 “빚을 갚는 동시에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미래 투자하면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플랜을 짜야 궁극적인 재기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