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칼럼

'국민을 위한 재정'…노무현 그 한마디에, 인생을 바꿨다

중앙일보

입력 2022.10.06 01:02

업데이트 2022.10.06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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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변양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 진영을 넘어 미래를 그리다 〈1〉 노무현과 첫 만남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정치인, 국가 재정의 틀을 바꾸고 싶었던 경제 관료. 노무현 대통령과 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했다. 2001년 어느 날이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의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전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서민의 희망’이라는 노무현의 진면목을 대면하는 순간이었다. 자세한 얘기를 풀어놓기 전에 배경 설명이 필요하겠다.

당시 나는 기획예산처 재정기획국장을 거쳐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에서 수석전문위원을 하고 있었다. 정권이 바뀌면서 흐지부지한 제도인데 이해찬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이 요구해 부활시켰다. 공무원이 정당에 가려면 형식적으로 사표를 내야 한다. 그래서 다른 공무원들은 안 가고 싶어했다. 나는 자청해서 손을 들었다.

요직 승진 마다하고 여당행 자청
“노무현 주식을 사세요” 제안 받아
딴 세상 같던 노무현 후보 간담회
‘서민의 희망’ 열광적 반응에 감동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2001년 대선 주자 간담회에서 ‘서민의 희망’이라는 노무현의 진면목을 대면했다고 말했다. 사진은 2005년 4월 21일 변양균 당시 기획예산처 장관(왼쪽)이 노무현 대통령과 대화하며 청와대 본관 세종실로 걸어가는 모습. 오른쪽은 김영주 청와대 경제수석(당시). 사진 사람사는세상노무현재단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2001년 대선 주자 간담회에서 ‘서민의 희망’이라는 노무현의 진면목을 대면했다고 말했다. 사진은 2005년 4월 21일 변양균 당시 기획예산처 장관(왼쪽)이 노무현 대통령과 대화하며 청와대 본관 세종실로 걸어가는 모습. 오른쪽은 김영주 청와대 경제수석(당시). 사진 사람사는세상노무현재단

이렇게 된 사연이 있다. 당시 전윤철 기획예산처 장관이 나를 불렀다. “정부개혁실장(1급)을 맡아 주시게.” 전 장관으로선 굉장한 요직을 제안한 것이었다. 나는 정중하게 거절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경상도 출신이라 안 됩니다. 지금 공기업 사장들이 다 누구입니까. 호남 출신의 정권 실세 아닙니까. 개혁이라는 게 필요하면 상대의 목을 날릴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경상도 출신인 내가 그 사람들을 상대로 개혁이 되겠습니까.”

처음엔 전 장관이 나를 설득하려고 했다. “아닐세. 내가 강하게 커버(뒷받침)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게.” 전남 목포 출신인 전 장관은 김대중 대통령의 깊은 신임을 받고 있었다. 나중에 청와대 비서실장도 맡았다. 나는 계속 사양했다. “힘없는 사람이 힘 있는 자리에 가면 일을 못 합니다. 장관님이 맨날 직접 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닙니까.”

하루 이틀 지나자 한 가지 소문이 들려왔다. 민주당 전문위원으로 파견 나갈 사람을 찾는데 아무도 안 가겠다고 해서 장관이 골머리를 앓는다는 것이다. 나는 장관실로 찾아갔다. “제가 가겠습니다.” 전 장관은 무척 반가워했다. 자연스레 정부개혁실장 자리는 없던 얘기가 됐다. 나는 속으로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당에 와보니 딴 세상이 펼쳐졌다.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대선 주자들이 돌아가며 당직자들에게 밥을 샀다. 차기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중앙당 당직자들의 향배가 중요했던 시절이다. 이인제 상임고문과 김근태 상임고문 등이 밥을 살 때 참석해봤다. 참석자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형식적인 박수가 끝나면 각자 식사하기 바빴다. 몇 번 비슷한 일을 겪어보니 시간 낭비라는 생각뿐이었다.

수석전문위원은 국회의원을 제외하면 당 정책위에서 가장 높은 간부였다. 나는 상석에 앉아 대선 주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크게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눈 기억은 없다. 내가 기획예산처에서 왔다고 하니 어떤 후보는 엉뚱하게 감사원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그 무렵 이병완씨가 나를 보자고 했다. 신문기자 출신인 그는 김대중 정부 초기에 청와대 언론비서관을 했다가 당에 들어와 있었다. 나중에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을 했다. 당시에는 민주당 국가경영전략연구소 부소장을 맡았다.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대리자’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02년 11월 27일 노무현 후보가 거리유세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02년 11월 27일 노무현 후보가 거리유세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점심을 먹고 길을 걸어가는 중이었다. 이 부소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선배님, 주식 좀 아시죠.”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주식시장에 대해서야 좀 알지만 왜 그래요.” 그는 “아무리 좋은 주식도 비쌀 때 사면 별로 이익이 없지 않습니까. 아주 전망이 좋은 주식이 있는데 가격이 쌀 때 사야 할 거 아닙니까”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권했다. “노무현 주식을 사세요. 지금이 제일 바닥입니다. 노무현을 적극적으로 도우세요.” 말하자면 노무현 후보에게 줄을 서라는 뜻이었다. 속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며 넘어갔다. 나중에 청와대에서 같이 근무해보니 이 부소장은 정치적 감각과 판단이 뛰어난 분이었다.

그러던 중 노무현 상임고문이 밥을 산다는 소식이 들렸다. 처음엔 별로 생각이 없었다. 그때 같이 일하던 정 아무개 부장이란 직원이 있었다. 그는 “노 고문이 식사를 사는 날인데 안 가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시큰둥하게 “그거 뭐하러 갑니까”라고 답했다. 정 부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한 번 가보실 만할 겁니다. 가보시지요.” 생전 그런 말을 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결국 가보기로 했다. 제법 큰 식당이었다. 제일 안쪽에 수석전문위원 자리가 있었다. 다른 대선 주자들과 비교하면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다. 대략 200~300명이 모였다. 어느 순간 입구 쪽에서 웅성웅성하는가 싶더니 ‘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 고문이 등장하면서다. 고함 소리, 휘파람 소리,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유명 연예인이 나올 때와 같은 분위기였다. 노 고문이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안쪽으로 들어오는 것조차 상당히 시간이 걸렸다. 정 부장이 왜 꼭 가보라고 했는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다른 세계의 사람, 없는 사람들의 희망, 뭔가 열광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식사 중에 노 고문은 옆자리에 앉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국가 재정에 관해 얘기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정말 국민을 위한 재정을 쓰고 싶습니다. 아이디어가 부족해 고민입니다.” 정치인에게서 ‘국민을 위한 재정’이란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마음 깊은 곳에선 감동이 느껴졌다. 나는 ‘톱다운’ 방식으로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 했다. 길게 얘기를 나눌 자리는 아니었다.

다음날 정 부장에게 참석을 권했던 이유를 물었다. 그는 조심스러워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해가 됐다. 정 부장은 그야말로 서민층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당시 말단 당직자의 봉급은 정말 쥐꼬리였다. 전에는 무료봉사였는데 여당이 되고 얼마간 봉급이 나오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정 부장 같은 사람의 눈으로 보면 나는 상류층이자 보수의 본류인 경제 관료였다. 다르게 말하면 가진 자를 대변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연히 반(反) 노무현에 속할 사람으로 예단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대학 시절 실감한 영·호남 격차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러면서 학창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초·중·고교를 나왔다. 1969년 대학(고려대 경제학과)에 들어가기 전에는 한 번도 호남을 가본 적이 없다. 대학 1학년 때 친구와 같이 호남선 기차를 탔다. 최고 등급 기차였는데 타자마자 깜짝 놀랐다. 곳곳에 유리창이 깨져있었다. 경부선 기차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69년은 박정희 대통령의 3선 연임을 허용하는 개헌으로 나라가 온통 시끄러웠던 시절이다. 전남 광주(현 광주광역시)를 거쳐 여수로 가면서 ‘영·호남은 완전히 다른 나라’라고 느꼈다. 당시 김대중 의원이 주장한 호남 푸대접론의 실체를 현장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나라가 바로 되려면 호남 사람이 한 번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71년 대통령 선거 때는 김대중 후보의 연설을 듣기 위해 서울 장충단 공원에도 갔다. 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지역갈등이 저절로 해소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노무현을 처음 만난 날부터 나는 생각이 달라졌다. ‘전혀 다른 세상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구나. 그러니까 내가 사는 세상에선 노무현 같은 사람을 모르는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노무현은 억눌리고 힘들고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의 희망·기대·대리자라고 할 수 있었다. 훗날 노무현 대통령이 복지국가로 나가는 초석을 놓는데 그렇게 심혈을 기울였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정과 경제 정책의 틀을 바꿔 보겠다는 작은 희망을 가졌던 내가 노무현을 만난 건 보통 인연이 아니었다.

정리·대담=주정완 논설위원, 이정재 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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