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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왜군묘, 일본 귀무덤…임진왜란 ‘두 개의 무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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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경호 기자 중앙일보 광주총국장
최경호 광주총국장

최경호 광주총국장

지난 2일 오후 7시쯤 명량대첩 축제가 열린 전남 진도군 울돌목(鬱陶項). “전군, 출정하라”는 구령에 맞춰 조선 판옥선들이 스크린에 등장했다. 1597년 9월 16일 명량해전을 컴퓨터그래픽스(CG)로 재현한 영상이다. 관객들은 가로 20m, 세로 5m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군을 격파하는 모습이 긴박하게 묘사됐다. 훗날 이 전투는 7년간 이어진 임진왜란을 끝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전투에서 패한 왜군은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퇴각 후 진도 앞바다에는 왜군의 시신도 떠다녔다. 이를 보다 못한 진도 주민들은 이들을 양지 바른 곳에 묻어줬다. 명량대첩이 벌어진 울돌목에서 10㎞가량 떨어진 왜덕산(倭德山) 무덤이다. 왜덕산은 ‘왜인들에게 덕을 베풀었다’는 의미다.

명량해전 425년 후인 지난달 24일 진도 왜덕산.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가 위령제 현장을 방문했다. 그는 “명량해전에서 목숨을 잃은 일본 수군을 진도 주민들이 묻어준 사실을 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침략한 일본의 지속적인 사죄가 있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일본 교토에 있는 조선인들의 귀 무덤. [중앙포토]

일본 교토에 있는 조선인들의 귀 무덤. [중앙포토]

앞서 그는 지난해 11월 8일 일본 오카야마(岡山)현의 한 이총(耳塚, 귀 무덤)에서도 일본의 사과를 촉구했다. 이총은 왜군이 베어 간 조선군과 백성의 귀를 매장한 곳이다. 훗날 귀와 함께 코까지 대거 묻은 사실이 드러나 이비총(耳鼻塚, 귀·코 무덤)이라고 부른다.

일본 이비총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명령에 따라 1597~1598년 일본 곳곳에 만들어졌다. 류성룡이 『징비록(懲毖錄)』에서 ‘왜놈들이 조선인을 보기만 하면 코나 귀를 베어가 코나 귀가 없는 조선 백성들이 많았다’고 기록했을 정도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조선인의 귀나 코를 베어 전공을 계산했다”며 이비총의 의미를 강조했다.

지자체와 전문가 등은 하토야마 전 총리의 최근 행보가 의미가 크다는 반응이다. 한·일 간 역사인식 공유와 양국 평화교류의 물꼬를 텄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 내 지한파인 하토야마 전 총리는 임진왜란과 강제징용 등에 대한 일본의 사과를 촉구해온 인물이다. 그는 6일에는 전남대를 찾아 ‘우애에 기반한 동아시아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한다.

그간 하토야마 전 총리가 한·일간 평화를 꾀해온 행보에는 일본의 사죄가 전제된 모양새다. 왜덕산에서는 “(일본의) 사죄는 고통 입은 이가 ‘이제 그만해도 됩니다’고 말할 때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임진왜란이 남긴 두 개의 무덤을 오가며 ‘일본 책임론’을 강조한 그가 광주에서는 어떤 메시지를 남길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