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사상과 철학ㆍ정책ㆍ리더십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김대중학술원’이 다음 달 1일 개원한다. ‘김대중학’(學)을 본격적으로 연구ㆍ정립할 목표로 김대중기념사업회(이사장 권노갑)에 의해 창립됐다. 초대 원장은 남북관계 전문가이자, 세종연구소장을 지낸 백학순 원장이 맡았다.
백 원장을 지난 28일 서울 마포 김대중도서관에서 만나 개원의 의미와 DJ의 유산을 물었다. 그는 우선 “DJ는 국내 정치인 중 유일하게 사상가 반열에 오른 인물”이라며 “그의 사상을 후손들이 배우고 실천할 유산으로 남기고자 학술원을 개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내외 학자 70명 구성…“앤서니 기든스, ‘DJ와의 추억 소중하다’며 참여”
백 원장에 따르면 학술원 개원엔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유명 석학들도 힘을 보탰다. 그는 국내 정치인을 연구하는 학술원에 해외 학자들이 참여한 데 대해 “DJ가 일생 추구했던 민주주의와 인권ㆍ평화ㆍ화해ㆍ용서라는 가치가 전 세계에 공명을 주는 인류 보편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학술원에 고문과 연구위원으로 참여한 국내외 학자는 70명이다. 고문으론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 국내 학자 10명, 앤서니 기든스 영국 런던정경대 명예교수,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 등 해외학자 13명이 합류했다. 연구위원으론 국내 학자 30명, 해외 학자 17명이 참여했다.
백 원장은 “참여 인물 중엔 DJ와 교류한 인물도 많다”며 대표적 인물로 앤서니 기든스 교수를 꼽았다. ‘제3의 길’로 유명한 그는, DJ가 1993년 케임브리지대에서 유학을 할 당시 인연을 맺었다. 백 원장은 “기든스 교수에게 학술원 참여 제안 이메일을 보냈더니, ‘DJ와의 추억을 소중히 여기고, 그를 존경한다’며 바로 승낙 메일이 왔다”고 말했다.
학술원에서 연구할 DJ 유산 세 가지는
이렇게 모인 학술원은 내년 봄 첫 학술회의를 시작으로 매년 DJ와 관련한 연구서를 영문본을 포함 3~4권 펴낼 계획이다. 정립되는 연구물은 지난 6월 개교한 ‘김대중 정치학교’(교장 문희상) 등에서 교육 자료로도 쓰인다.
백 원장은 DJ 정신이 연구ㆍ전승돼야 하는 이유로 세 가지를 말했다. 그는 우선 DJ가 주창한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꼽았다. 그는 “동서고금에 축적된 지혜와 정책적 함의(서생적 문제의식)를 바탕으로, 현실 정치에서 시민들의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상인적 현실감각)”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DJ가 서생적 문제의식을 얻기 위해 늘 책을 읽었던 일화도 강조했다. 백 원장은 “DJ는 국회의원 시절 국회 도서관에서 가장 많은 책을 대출했던 인물”이라며 “그 기록이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DJ가 2000년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할 당시 주변에 “바쁘다 보니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 다시 감옥에 갔으면 좋겠다”는 농담을 했던 일화도 꺼냈다.
아울러 백 원장은 “국내정치는 분열이 아닌 통합이 중요하고, 대외정치는 전쟁이 아닌 평화가 중요하다고 DJ는 강조했다”며 “이 역시 지금의 정치인들이 새겨야 할 정신”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인들에게 분열과 전쟁이 시원시원해 보일 수 있으나, 결국은 DJ처럼 그러한 유혹들을 물리쳐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백 원장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도 DJ 정신의 덕목이라고 했다. 그는 이를 통합과 평화로 향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제시하며,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게 당연한 공동체 생활에서 가장 좋은 것은 결국 포용 정신”이라고 말했다.
“여야의 DJ 계승 발언 환영…하지만 실천이 중요”
백 원장은 DJ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현재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시절 DJ 생가를 찾아 “위대한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DJ에 대한 존경심을 자주 강조해왔다.
백 원장은 “여야 관계없이 DJ 정신을 알고 계승하겠다는 말은 긍정적”이라면서도 “DJ 정신의 핵심은 아는 것을 넘어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DJ 덕목 중 하나인 ‘분열 아닌 통합’을 다시 언급하며 “분열은 당장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너무 유혹적이겠지만, DJ의 정신을 ‘추구해야 할 정치 본령’으로 여긴다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