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드론으로 습격? 기뢰 투하? ‘가스관 파괴 공작’ 미스터리

중앙일보

입력 2022.09.29 16:40

업데이트 2022.09.29 17:51

27일 스웨덴 해안경비대 항공기에서 촬영한 덴마크 보른홀름 섬 인근 가스 누출 해역. AFP=연합뉴스

27일 스웨덴 해안경비대 항공기에서 촬영한 덴마크 보른홀름 섬 인근 가스 누출 해역. AFP=연합뉴스

러시아의 소행일까, 반대로 서방의 역공작일까. 수심 깊은 곳 가스관엔 어떤 식으로 접근해서 그렇게 큰 구멍을 냈을까.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폭발사고가 벌어진 지 며칠이 지나도록 이번 사고의 경위와 배후는 베일에 가려 있다. 러시아 측은 공격 배후로 지목받은 데 대해 "어리석은 주장"이라는 입장이지만, 이 같은 의혹을 뒷받침하는 주장이 서방 매체를 통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영국 더 타임스는 28일(현지시간) 국방부 소식통을 인용해 폭발이 일어나기 수주 전, 러시아가 잠수함이나 작은 어선을 이용해 바다에 폭파장치를 떨어뜨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폭발 지점의 수심은 71~88m로 발트해 중에서도 깊지 않은 곳이다. 국방부 소식통은 러시아가 이곳에 특수 잠수정이나 어선을 접근시킨 뒤 수중 드론을 이용해 가스관에 폭탄을 설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 해군 전문가는 수심이 깊지 않아 러시아 잠수함이 주변국의 감시를 벗어나 접근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래서 어선 등 비군사용 선박을 이용했을 것이라고 했다.

더 타임스에 따르면 잠수함 등을 이용한 러시아의 가스관 파괴 공작 가능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됐으며, 지난 1년 동안 각국으로 연결된 해저 통신 케이블에 대한 파손 시도가 최소 몇 차례 있었다.

발트해 감시가 느슨하단 점에서 군사용 선박이 활용됐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미국 해군 출신 브라이언 클라크 허드슨연구소 연구원은 "발트해와 북해 주변의 수중 감시는 촘촘하지 않다"며 "러시아가 특수 제작한 잠수함으로 감시를 피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해양 안보 전문가인 줄리안 팔락 독일 헬무트슈미트대 교수도 "잠수함을 24시간 감시하는 건 어렵다"며 "10해리(약 18㎞)마다 군함을 배치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날 텔레그래프도 러시아가 잠수정이나 어선, 또는 요트를 이용해 폭발물을 떨어뜨렸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수중 드론보다는 현대화된 기뢰가 투하됐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관측했다. 기뢰를 수주 전이나 몇달 전에 떨어뜨려 놓고, 사전에 프로그래밍 된 음향을 이용해 폭발시키는 방법이다.

또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의 두께는 27~41㎜(강관)로 두껍지 않다면서 수중에서 폭발한다면 그 충격파가 해저까지 미치기 때문에 기뢰를 꼭 바다 밑바닥까지 침투시킬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한스 리왕 스웨덴왕립공대 교수는 현지 매체와 인터뷰에서 해저에 생긴 분화구 크기와 손상된 파이프를 조사하면 폭발물의 크기와 폭발 위치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가스 누출이 증거를 지워버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덴마크 에너지청에 따르면 노르트스트림 1·2 가스관은 둘 다 가동이 멈춘 상태였지만 총 7억7800만㎥의 천연가스가 남아 있었다. 노르트스트림 1은 지난달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차단했으며, 지난해 완공된 노르트스트림 2는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가동되지 않았다.

덴마크 당국에 따르면 가스 누출은 내달 2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지난 26~27일 노르트스트림 1·2 가스관에서 총 3건의 누출이 보고된 후 노르트스트림 2에서 추가로 가스 누출이 확인됐다고 29일 로이터가 보도했다. 이로써 2개의 가스관에서 각각 2건의 누출이 보고됐다.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등이 러시아를 지목했지만, 일부 유럽과 미국 관리들은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이런 결론은 시기상조라고 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이날 보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무기화해 유럽에 힘을 보여주고 싶지만, 그 힘은 러시아의 거대 기업 가스프롬이 건설한 파이프라인이 온전한 상태일 때 나온다는 이유에서다.

또 일부 관리와 외부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을 반대해온 우크라이나 혹은 발트해 연안 국가 중 한 곳이 가스관을 비활성화한 후 그런 메시지를 보내려 했을 수 있다고 관측했다. 일부 관리는 비정부 행동주의자들의 소행일 수 있다고 했다.

누출 사고 이후 환경 오염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가스관에 남아있던 천연가스가 모두 방출되면 덴마크가 연간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32%에 해당한다고 AP가 보도했다.

또 지금까지 누출된 양을 포함한 총 메탄가스는 50만t으로 이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메탄 누출 사고로 꼽히는 미국 알리소 캐년 가스저장소 누출사고 때 방출된 9만~10만t의 약 5배에 달한다. 덴마크 에너지청은 메탄이 이산화탄소보다 기후에 몇 배나 더 큰 피해를 주기 때문에 상당한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누출 사고 이후 노르웨이 등 유럽은 석유·가스시설에 군대를 배치하는 등 보안을 강화하기로 했다. 요나스 가르 스퇴르 노르웨이 총리는 "유럽 최대 가스 공급자로서 특별한 책임이 있다"며 "동맹들과 공동으로 가스관 공격에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르웨이는 해상 유전과 가스전에는 해군을 배치하고 지상 시설에는 경찰을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앞서 노르웨이 석유안전청은 해안 에너지 시설에 정체불명의 드론이 나타난다는 제보가 잇따르자 관련 기업에 경계 강화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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