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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밥줄 쥔 알고리즘 공개하라" 플랫폼 노조 뭉쳤다 [팩플]

중앙일보

입력

“플랫폼이 사용자다. 사용자 책임 인정하라.”

배달라이더로 구성된 라이더유니온과 전국대리운전 노조, 웹툰작가노조 등 일명 ‘플랫폼 노조’가 28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한자리에 모였다. 속한 업종이 다른 이들을 한데 모은 키워드는 ‘사용자’다. 참석자들은 노동자만 있고 사용자는 없는 플랫폼 산업 구조를 성토했다.

2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라이더유니온, 전국대리운전노조 등 플랫폼노동자 단체들이 플랫폼 노동제도 개선 등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라이더유니온, 전국대리운전노조 등 플랫폼노동자 단체들이 플랫폼 노동제도 개선 등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무슨 일이야  

3대 플랫폼 노조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등 시민단체로 구성된 플랫폼노동희망찾기 회원 300여 명은 이날 오후 3시 국회 앞에서 사상 첫 플랫폼 노동 연합 집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플랫폼 노동자들의 5대 요구안을 발표하고, 자신들의 오토바이·택시 등을 활용해 여의도 일대를 행진했다.

이게 왜 중요해  

플랫폼 종사자 노조의 첫 연합 집회다. 이전에는 개별 노조가 각 플랫폼 기업을 상대했지만, 이번에는 여러 업종에서 일하는 플랫폼 종사자들이 연합해 정부와 기업에 요구사항을 발표했다. 협상력을 높이려는 시도다. 다음달 4일 시작되는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플랫폼의 사회적 책임과 정부의 적극적 대응을 주문한 측면도 있다. 이들의 요구대로 정부가 장기적으로 '알고리즘 검증기구'를 구성할지에 노조는 물론 플랫폼 기업들도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다.

2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라이더유니온, 전국대리운전노조 등 플랫폼노동자 단체들이 플랫폼 노동제도 개선 등을 촉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라이더유니온, 전국대리운전노조 등 플랫폼노동자 단체들이 플랫폼 노동제도 개선 등을 촉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플랫폼 노조 요구는  

● 플랫폼 책임 확대 : 5대 요구안 중 4가지는 플랫폼 기업의 책임을 확대하자는 내용이다. ▶플랫폼 기업에 노동법상 사용자책임 부여 ▶산재보험·고용보험 관련 제도개선 논의 ▶플랫폼 노동자 쉴 권리 보장 ▶적정임금·최저임금 보장 방안 논의 등이다. 구체적으로,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는 플랫폼 노동자들에 대해 플랫폼이 더 넓은 사용자 책임을 지고 유급·상병 휴가를 보장해달라고 요구했다. 배달라이더의 경우, 시간당 배달 건수를 조정하고 안전 배달료를 도입하는 등 적정 임금을 보장해달라는 내용도 담겼다.

● 알고리즘, 기술인가 취업규칙인가 : 5대 요구안 중 다른 하나는 정부가 '알고리즘 검증 기구'를 구성해달라는 내용이다. 플랫폼 노조는 “노동 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은 취업규칙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플랫폼 기업이 설계한 알고리즘이 일감을 배당하고 노무에 대한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이 플랫폼 노동자들의 임금과 수입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것. 특히, 소비장의 평점이나 등급에 따라 일감 배정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사실상 징계나 해고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연구실장은 “알고리즘을 검증하는 건 기업에 대한 ‘근로감독’과 비슷하다”면서 “일감 배정, 가격 결정, 등급평가, 계정정지 등 4가지 알고리즘만 검증하자는 것이지 기업의 모든 알고리즘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플랫폼 기업 입장은  

플랫폼 기업은 노동법상 사용자 책임을 인정하기는 어렵지만,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해 노력해왔다는 입장이다. 배달의민족의 배달 서비스를 담당하는 우아한청년들 관계자는 “라이더 안전은 회사의 최우선 고려 사안으로, 산재보험과 유상운송보험을 이미 의무화했고 보험망을 구축해 안전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다른 사안들은 정부 등 다양한 주체들과 심층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카카오모빌리티 관계자는 “지난해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해 전향적으로 대리노조와 단체교섭에 임했다”며 “대리운전 업계 및 기사님들과 동반 성장하는 방안을 지속해서 제시하며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대리기사들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실행 가능한 사안은 빠르게 적용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서울역에서 주행중인 카카오T 택시 모습. 뉴스1

서울역에서 주행중인 카카오T 택시 모습. 뉴스1

그러나 알고리즘을 검증하자는 요구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이다. 한 모빌리티 업계 관계자는 “일부 중개 프로그램 업체의 횡포는 대리기사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개선해야 한다”면서도 “알고리즘의 방향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기업의 기술 자산인 알고리즘을 공개하고 검증하자는 요구는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입장은

플랫폼 노동자들의 요구에 고용노동부는 “플랫폼 노동은 계약 방식, 업무수행 방식 등이 다양하고 국가별로 법 체계도 상이해 플랫폼 기업에 사용자 책임을 어떻게 부여할 것인지를 일률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알고리즘 검증기구 구성에 대해서는 “알고리즘의 성격이나 내용이 기업마다 달라 취업규칙으로 보고 이걸 일률적으로 근로감독 하기엔 어려움이 있다“며 “종사자들이 알고리즘으로 인한 부당한 권리침해를 받지 않도록 제도 개선 등으로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해외는 어때  

유럽연합(EU) 본부. 로이터=연합뉴스

유럽연합(EU) 본부. 로이터=연합뉴스

해외에서도 플랫폼 기업의 사용자성과 알고리즘 검증 요구가 활발하다. 지난해 12월 EU(유럽연합)는 플랫폼 기업을 사용자로 추정하는 입법 지침의 초안을 발표했다. 보수 상한선 결정, 작업 구속력 규정, 업무 감독·평가 등 5개 지표 중 2개 이상에 해당하면 고용관계를 추정한다는 내용이다. 당시 우버는 “종사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며 반발했지만, 음식배달 업체 저스트이트는 “이번 계기로 (라이더에 대한) 사회적 보호를 강화하겠다”며 상반된 입장을 냈다. 또 EU 입법 지침은 일감의 배정, 가격 결정, 등급 평점 등 노동 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에 대해선 종사자들이 플랫폼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문제 제기 및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앞으로는  

플랫폼 기업들이 성장하는 만큼 플랫폼 노동자들의 요구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도 곧 플랫폼 노조와 실무 면담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 7월 발족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통해 정부가 근로시간과 임금체계 개편 등 노동시장 개혁안 전반을 논의 중인 만큼, 플랫폼 노동 관련 내용도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