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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일가족 목숨 앗은 폭포비…'디지털 홍수지도'로 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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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중부지역에 많은 비가 이어진 지난달 9일 오전 강원 원주시 원주천이 범람해 시 관계자들이 침수된 차량을 빼내고 있다. 연합뉴스

중부지역에 많은 비가 이어진 지난달 9일 오전 강원 원주시 원주천이 범람해 시 관계자들이 침수된 차량을 빼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의 반지하 방에 살던 시민의 목숨을 앗아간 지난달 8일의 ‘폭포비’는 시간당 141.5㎜(서울 동작구)에 달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시간당 50㎜ 이상 쏟아지는 ‘집중호우’가 1970년대에는 전국에서 6일 정도 관측됐지만, 2010년대에는 13.9일로 2.3배가 됐다.

연도별 집중호우 발생 추세 [자료: 기상청]

연도별 집중호우 발생 추세 [자료: 기상청]

개발 급증에 하천은 빗물 ‘과부하’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폭우가 쏟아진 지난달 8일 밤 서울 관악구 도림천이 범람, 시민들이 아슬아슬하게 물살을 헤쳐 길을 건너고 있다. 뉴스1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폭우가 쏟아진 지난달 8일 밤 서울 관악구 도림천이 범람, 시민들이 아슬아슬하게 물살을 헤쳐 길을 건너고 있다. 뉴스1

집중호우는 늘고 도시 개발로 콘크리트 포장이 늘면서 하천은 ‘과부하’가 걸렸다. 하늘에서 떨어진 빗물이 그대로 하천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감당하기 힘들게 된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하천부지 총면적은 2012년 2842㎢에서 2021년 2866㎢로 거의 변화가 없다. 전국의 도로와 대지를 더한 면적은 같은 기간 5804㎢에서 6713㎢로 15.7% 늘었다. 환경부는 2041~2070년에는 하천으로 들어오는 빗물의 양이 과거(1976~2005년)보다 9%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수도권 지역 불투수면 비율. [환경부 환경공간정보서비스 화면]

수도권 지역 불투수면 비율. [환경부 환경공간정보서비스 화면]

차원이 다른 홍수 대책 필요

지난달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하천홍수 및 도심침수 대책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지난달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하천홍수 및 도심침수 대책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급격한 기후변화 속에서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홍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달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호우 피해 현장을 방문, 한화진 환경부 장관에게 국가 하천, 지방 하천, 지류 전반의 수위 모니터 시스템을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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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정부가 생각하는 홍수 예방 대책은 어떤 것일까.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강수량 예보 정확성 향상 ▶소규모 유역별 강수량 예측 ▶하천 공간 정보 체계적 관리 ▶주요 하천 지점별 수위 관측 및 예측 ▶홍수 예보 ▶댐 수위 조절 최적화 ▶디지털 홍수지도 작성 ▶침수 지역 예보 ▶재난 경보 발령과 주민 대피 등의 과정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예보 모델 개선과 레이더 확충 

일본 국토교통성 기상레이더. 파란색 삼각형은 대형 레이더 26대를. 빨간색 작은 삼각형은 소형 레이더 39기의 위치를 나타낸다. [자료 환경부]

일본 국토교통성 기상레이더. 파란색 삼각형은 대형 레이더 26대를. 빨간색 작은 삼각형은 소형 레이더 39기의 위치를 나타낸다. [자료 환경부]

강수량 예보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한국형 수치 예보 모델이 중요하다. 기상청에서는 ‘한국형 지역 수치 예보모델(RDAPS-KIM)’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가로세로 3㎞ 격자로 예보하고 있는데, 내년부터는 1㎞ 격자로 세밀하게 예보하게 된다.

일본 국토교통성 소형 기상레이더 39기. [자료 환경부]

일본 국토교통성 소형 기상레이더 39기. [자료 환경부]

갑작스럽게 내리는 게릴라성 폭우에 대비해 도심 소형 강우 레이더 확충도 필요하다. 환경부에서는 2025년까지 부산·세종 등 7개 도시에 소형 강우 레이더를 설치할 계획이다. 소형 강우 레이더에서 나오는 전자파는 50m만 떨어지면 문제가 없지만, 민원을 고려해 환경부는 주택가가 아닌 도시 주변 산지에 설치할 계획이다. 일본의 경우 광역 관측용 대형 레이더 26기와 도시지역 집중관측을 위한 소형 레이더 39기를 운영하고 있다.

가상 공간에 댐 짓는 ‘디지털 트윈’

가상 공간에 섬진강댐과 하천 모습을 담은 디지털 트윈. [자료 한국수자원공사]

가상 공간에 섬진강댐과 하천 모습을 담은 디지털 트윈. [자료 한국수자원공사]

홍수 피해가 집중되고 있는 소하천과 지류 등에 수위 관측 지점을 확충할 계획이다. 현재도 강 본류와 큰 하천 570곳에서 수위를 측정하고 있는데, 내년 말까지 교량이나 제방에 레이저나 부자(浮子)로 수위를 측정하는 시설을 108곳에 추가로 설치 중이다. 세종대 건설환경공학과 권현한 교수는 “도심 침수에 효율적으로,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하수도를 포함한 빗물 처리시설의 수위를 모니터링하고, 이를 토대로 빗물 흐름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모델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강홍수통제소 홈페이지에 나타난 전국 수위 관측 지점.

한강홍수통제소 홈페이지에 나타난 전국 수위 관측 지점.

환경부와 한국수자원공사에서는 댐 수위 조절을 최적화하기 위한 ‘디지털 트윈’ 기법을 강구 중이다. 실제와 똑같은 댐과 하천을 구현한 가상공간에서 미리 댐 수위를 조절해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 다음 실제 상황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환경부 수자원관리과 박상근 연구관은 “2024년까지 수위 센서 확충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인공지능 홍수예보 플랫폼’을 구축할 예정이고, 댐·하천 공간에 대해 디지털 트윈 플랫폼은 2026년까지 구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홍수지도 확충 시급한 과제

환경부가 제작한 홍수지도(도시 침수 지도) 사례. 침수 위험 등급을 색깔별로 구분했다. [자료: 환경부]

환경부가 제작한 홍수지도(도시 침수 지도) 사례. 침수 위험 등급을 색깔별로 구분했다. [자료: 환경부]

환경부는 강수량 예측과 함께 각 도심 지역에 대한 ‘내수침수위험지도’를 단계적으로 추가 공개할 계획이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지난 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환경부 및 소속 산하기관과 함께 제11호 태풍 '힌남노' 대응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한 뒤 홍수대책상황실을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환경부 제공]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지난 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환경부 및 소속 산하기관과 함께 제11호 태풍 '힌남노' 대응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한 뒤 홍수대책상황실을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환경부 제공]

강우량과 홍수 예측, 디지털 홍수지도를 연계해 침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지역을 미리 찾아내고 경보를 발령하기 위한 일이다.

제방·하수관 기후변화 반영해야

지난달 17일 오전 강원 강릉시 주문진읍 장덕리를 흐르는 하천이 폭우로 한때 범람해 재난 당국이 복구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7일 오전 강원 강릉시 주문진읍 장덕리를 흐르는 하천이 폭우로 한때 범람해 재난 당국이 복구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권 교수는 “수치예보 모델의 정확도 향상을 위해 학계와 연구소, 정부기관 사이의 공동 연구와 상호 피드백을 통해 현장 적용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학·연·관을 아우르는 도시홍수센터의 설치·운영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서울 양천구에 건설된 신월 대심도 빗물 터널. [자료: 환경부]

서울 양천구에 건설된 신월 대심도 빗물 터널. [자료: 환경부]

도심 침수를 예방하기 위한 방안으로 서울 등지에서는 대심도 빗물 배수시설을 설치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서울시는 강남역·광화문·도림천부터 빗물 터널을 설치, 시간당 100~110㎜의 폭우를 감당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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