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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독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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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서정민 기자 중앙일보 중앙SUNDAY 문화부장
서정민 중앙SUNDAY 문화선임기자

서정민 중앙SUNDAY 문화선임기자

“산독기 독기야 어디를 가느냐, 깡총깡총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너무 익숙한 동요인데 자세히 보니 산토끼가 아니라 ‘산독기’다?!

신조어 ‘산독기’는 산+독기의 합성어다. 독기는 짐작하는 대로 ‘사납고 모진 기운’이다. 한자 그대로는 독(毒)의 기운(氣)이다. ‘조선왕조 500년’의 장희빈부터 ‘왜 오수재인가’의 오수재까지, 눈으로 레이저를 쏘던 드라마 속 주인공이 먼저 떠오르는 걸 보면 일상에서 좋은 의미로 쓰이진 않는 단어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이 ‘독기’ 품기를 생활화하려 한다. 지독하리만치 모든 노력을 다 해보자는 게 이유다.

산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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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올 초 소개한 신조어 ‘미라클 모닝’, 지난해 5월 언급한 ‘갓생’의 심화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미라클 모닝’은 일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인 새벽 5시부터 일어나 운동·공부·독서 등을 하며 누구보다 하루를 길고 알차게 보내는 습관을 말한다. ‘갓생’은 MZ세대 사이에서 ‘최고’라는 의미로 자주 쓰이는 ‘갓(God)’을 인생(人生) 앞에 붙여 만든 신조어로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사는 삶을 뜻한다.

‘산독기’ 역시 목표와 방법은 비슷한데 앞의 두 단어와는 달리 뉘앙스에서 비애감이 느껴진다. 아침을 일찍 시작하고, 시간을 허투루 쓰지 말며, 실천이 어려운 거창한 목표보다 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데 집중하자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 선택이 고금리·고물가·고환율 3고(高) 현상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코너에 몰린 젊은이들이 현실의 불확실성과 좌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을 품는 심정으로 살아보자’며 자신에게 거는 최면이라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