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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값 매각' '밀실 매각'?…주인 찾아도 첩첩산중 대우조선해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대우조선해양(대우조선)이 21년 만에 주인을 찾았다. 2008년 인수를 추진했다가 철회했던 한화그룹이 결국 대우조선을 품에 안는다. 한화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2조원에 대우조선 지분의 49.3%와 경영권(1대 주주)을 확보할 예정이다. 어렵게 주인을 찾았지만, 매각을 둘러싼 논란도 이어진다.

#6조에 팔 수 있던 걸 2조에 ‘헐값 매각’?

한화는 14년 전에 대우조선을 6조3002억원에 인수하려고 했다가 실패했다. 2008년 당시 대우조선 인수전은 뜨거웠다. 한화를 비롯해 포스코그룹, GS그룹, 두산그룹, 현대중공업그룹 등이 대거 참여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한화가 매각 우선협상대상자가 됐지만 세계금융위기가 오며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다.

대우조선해양 선박들. 연합뉴스

대우조선해양 선박들. 연합뉴스

한화는 KDB산업은행에 인수 대금을 나눠서 내겠다고 분할 납부를 요청했다. 산은은 거절했다. 한화는 다른 안을 제시했다. 산은이 보유한 전체 지분의 30%만 우선 매입하고 5년 뒤 나머지를 추가 매입하겠다는 것이다. 산은은 이 제안도 거절했고 2009년 1월 계약은 결렬됐다. 당시 대우조선의 매출과 영업이익(2007년 기준)은 각각 7조원, 3200억원이었다.

이후 국내 조선업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경제위기로 선박 발주가 줄었고 중국과의 경쟁으로 수주 단가도 낮아졌다. 2015년 이후 적자를 보기 시작했고 대우조선에 들어간 공적자금만 7조원이 넘는다.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을 인수해 한국조선해양이라는 조선 지주사를 신설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같은 업종의 두 업체가 한 회사가 되는 데 유럽연합(EU) 공정위원회가 반대하고 나섰다. EU는 “두 업체가 결합하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점유율이 60%로 높아져 독과점 우려가 있다”며 반대 이유를 밝혔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결국 산은은 14년 만에 다시 한화에 대우조선을 매각한다. 몸값은 6조3002억원에서 2조원으로 낮아졌다. 3분의 1 가격으로 내려갔지만 산은은 헐값 매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산은이 현재 보유한 지분을 파는 것이 아니라 한화가 2조원의 신규 자본을 투입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대우조선의 재무상황 악화도 헐값 매각이 아니라는 이유로 꼽았다. 대우조선의 지난해 매출은 4조4844억원, 영업손실은 1조6998억원이다. 부채비율은 2007년 368%에서 2018년 215%, 올해 6월 713%로 높아졌다. 대우조선의 시가총액은 2007년 9조8800억원에서 현재 2조3600억원(지난 23일 기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재계 관계자는 “산은이 2008년 세계금융위기 등 경제 환경을 고려해 한화의 분할납부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진작 공적자금을 회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 투입 자금은 ‘공적 자금’ 아니다?

산은은 ‘한국산업은행법’에 따라 기업금융 지원을 위해 세운 국책은행이다. 국가 예산으로 운영하지 않고 대출 등으로 얻은 이익으로 운영한다. 수익의 일부는 기획재정부에 배당한다. 지난해 산업은행의 배당액은 8331억원으로, 39개 정부 출자기관 중 가장 많았다. 세금을 충당하는 역할이다.

지난 21년간 대우조선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7조1000억원이다. 산업은행은 신규자금 2조6000억원, 크레딧라인(신용공여) 1조4500억원을 들였다. 한국수출입은행(수은)은 각각 1조6000억원, 1조4500억원을 투입했다.

산은이 7조1000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대우조선을 한화에 2조원에 매각한다고 나서자 ‘공적자금 손실’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산은은 이 자금이 공적 자금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세금이 아니라 직접 벌어들인 수익을 투입했으니 공적 자금 손실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지난 26일 기자간담회에서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언론에서 통상 공적자금이라고 하는데 법적으로 공적자금은 예금보험공사나 자산관리공사 등의 자금을 일컫는다”며 “산은의 지원 자금은 법적인 의미의 공적 자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은행업계 관계자는 “대우조선이 아니었다면 정부에 배당할 자금이었고 정책 집행 등 세금 대신 쓰였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밀실 매각’이냐 '특혜 매각'이냐

21년을 끌었던 대우조선 매각은 지난 26일 결정됐다. 속전속결이었다. 기재부와 금융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오전 7시 30분 서울 여의도 수은에서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대우조선 매각에 합의했다. 이어 오후 1시 산은은 임시 이사회를 열고 매각안을 의결했다. 오후 3시 30분 강 회장이 기자 간담회를 통해 매각 사실을 발표했다.

대우조선 노조가 일방적인 ‘밀실 매각’ ‘특혜 매각’이라며 불만을 제기하는 이유다. 대우조선 노조는 지난 26일 입장문을 통해 “매각 주요 당사자인 노동자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며 “매각 진행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노조가 참여한 가운데 진행하지 않으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물리력을 동원해 전면 투쟁도 불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27일에도 기자 회견을 열고 “매각 결정을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을 정도로 그간 조선업 발전과 같이 살 수 있는 방안에 대해 함께 모색하자고 줄기차게 요구해왔지만, (매각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고 밝혔다. 이어 “노동자는 지난 6년간 대우조선을 지키기 위해 임금 삭감 등 희생을 치르고 있는데 근로자 처우에 대한 논의 없는 매각을 규탄한다”고 주장했다.

한화에 특혜를 준다는 지적도 있다. '스토킹 호스(Stalking Horse)'로 매각을 진행해서다. 한화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정해놓고 경쟁 입찰에 나선다. 산은은 경쟁 입찰에서 다른 업체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 인수 주체가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같은 조건이라면 한화에 우선 매수권이 있다. 더구나 현재 상황에서는 이변이 생길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시장의 분위기다.

지난 26일 기자간담회에서 강 회장은 “국내 제조업계 모든 대기업과 인수 의향을 타진했고 한화가 받아들여 매각이 성사됐다”고 말했다. 결국 한화 외에는 국내에서 대우조선을 인수할 만한 기업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한화가 대우조선의 주인이 되더라도 산은이 5년간 금융 지원을 유지한다. 대출과 선수금환급보증(RG), 신용장(LC), 크레딧라인(2조9000억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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