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 아기도 활짝 웃을 수 있겠죠?”
지난 20일 베트남 하노이 108중앙군사병원에서 만난 황 티 티업(34)은 22개월 난 아들 로 호앙 하이를 품에 안은 채 이렇게 말했다. 아기 얼굴을 내려다보는 엄마의 눈엔 눈물이 고였다. 박깐의 시골 마을에 사는 모자는 한국 세민얼굴기형돕기회(Smile for Childrenㆍ이하 세민) 의료진들이 의료봉사 온다는 소식에 5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달려왔다. 아기는 구순구개열(입술ㆍ입천장 갈림증)을 갖고 태어났다. 입술이 인중까지 길게 갈라졌고, 입천장에도 균열이 있다. 아이에게 얼굴 기형은 단순히 미관상 문제가 아니다. 한창 말을 배울 때인데 발음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엄마는 “메(엄마), 보(아빠)라고 또렷하게 말을 못한다”라고 전했다. 음식을 씹어 목구멍으로 넘기기도 어렵다. 귀에 물이 차올라 청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로의 수술은 세민을 이끄는 백롱민 분당서울대병원 성형외과 교수가 맡았다. 전신마취를 해야 하고, 입술ㆍ입천장의 부드러운 조직을 손대야 하기에 수술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수술 전 황예지 분당서울대병원 수술부 간호사가 트레이에 수술 도구를 준비하는 모습에 베트남 의료진이 몰려들어 신기한 듯 구경했다. 수술실마다 10여명의 베트남 의사들이 모여 어깨너머로 수술법을 익혔다.
백 교수는 “이 아이들은 두번째 수술 기회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라며 “아이들 인생의 마지막 수술이라는 마음으로 그 어느 때보다 정성껏, 심혈을 기울여 수술한다”라고 말했다. 수술 뒤 로를 만난 엄마는 “한국 의료진에 은혜를 갚고 싶다”라고 말했다. 백 교수와 함께 베트남을 찾은 한국 의료진 21명은 이날부터 5일간 108병원에서 얼굴기형 어린이 70명에 수술을 했다. 비용은 SK가 전액 부담한다.
첫날 한국 의료진 방문 소식에 120명가량의 어린이 환자와 가족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어려운 형편에 수술을 받지 못해 장애를 안고 살던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구순구개열이 가장 많았고, 눈이 1mm도 채 떠지지 않는 선천성 안검하수 환자도 상당했다. 손가락이 서로 붙은 합지증 환자도 찾았다. 세민 의료진은 현지 의사들과 함께 문진ㆍ검사 등을 거쳐 수술이 가능한 어린이 70명을 추려냈다. 이튿날부터 5일간 수술실 3곳에서 하루 10시간 넘는 강행군이 이어졌다. 최수련 분당서울대병원 마취과 전공의는 “앞서 다녀온 선배들이 ‘뜻깊은 봉사활동’이라고 말해줘 인턴 때부터 꼭 한번 와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소원을 이뤘다”라고 말했다.
세민은 백 교수의 친형인 백세민 박사(당시 백병원 성형외과 교수)의 주도로 1989년 시작됐다. 초창기엔 국내 취약계층 어린이 치료에 매달리다 차츰 국내 경제 사정이 나아지면서 해외로 눈을 돌렸다. 백세민 박사가 1996년 은퇴한 이후 백 교수가 세민을 이끌었다. 세민의 베트남 의료 봉사는 25년째다. 1996년 첫 봉사 이후 코로나로 2년간 베트남 국경이 막혔을 때를 제외하고는 매년 빠짐없이 찾았다. 지금까지 베트남을 찾은 한국 의료봉사단은 연인원 500명이 넘는다. 14개 지역의 총 4200명의 베트남 안면기형 어린이가 수술을 받았다.
백 교수는 불발 수류탄 폭발로 화상을 당해 얼굴과 턱이 녹아내린 10대 소년을 떠올렸다. 세민 의료진이 베트남을 찾을 때마다 3차례 수술을 하고, 한국에 초청해 수술한 끝에 그는 자기 얼굴을 찾을 수 있었다. 백 교수는 “몇 년 전 우리가 베트남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 소년이 20대 청년이 돼 찾아왔다”라며 “직접 농사지은 땅콩 한 봉지를 손에 들고 밤새 버스를 타고 왔는데 ‘직장을 구했고, 곧 결혼한다’고 말하는데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라고 전했다.
세민 의료진은 방문 때마다 수술할 때 사용하는 마취기, 전기 소작기, 환자 모니터링 기기, 수술재료 등을 한국에서 실어와 현지 병원에 기증했다. 이번에도 14박스를 싣고 왔다. 또 분당서울대병원에 베트남 의사 14명을 초대해 1년간 연수 기회를 줬다. 백 교수는 “물고기를 잡아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 주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올해는 108병원에서 세민의 베트남 봉사 2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했다. 하노이시ㆍ인민위원회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백 교수는 “고된 일정에도 선뜻 따라 나서준 동료ㆍ후배 의료진, 봉사단이 자리 비우는 것을 허락해준 병원 덕분에 가능했다”라며 “무엇보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나, 2008년 금융위기 때도 꾸준하게 후원해준 SK에 감사드린다”라고 공을 돌렸다. 이번 의료 봉사에 동행한 이성녀 SK에코플랜트 ESG추진 담당임원은 “1996년부터 추진해 온 SK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오랜만에 재개돼 기쁘게 생각한다”며 “지난 25년간 행사를 꾸준히 진행하며 아이들에게 새로운 인생, 행복한 가정을 선물함과 동시에 선진 의료기술 이전에도 기여할 수 있어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아이들의 빛나는 미소를 찾아주기 위해 앞으로 힘닿는 때까지 계속 봉사하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