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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중국특색의 디커플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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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미·중 경쟁의 한 전선에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있다. 미국이 반도체와 전기차, 바이오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시도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목적은 흔히 미국 자신의 경제를 강화하고 중국 경제를 약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오는 중국의 굴기를 꺾어 미국의 패권을 계속 지키기 위한 게 아니냐는 말을 듣는다.

시진핑의 중국이 유라시아와 서태평양에서 미국을 축축하는 ‘중국특색의 디커플링’을 추진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진핑의 중국이 유라시아와 서태평양에서 미국을 축축하는 ‘중국특색의 디커플링’을 추진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신화망 캡처]

그래서인지 중국은 디커플링에 반대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한데 최근 디커플링을 먼저 시작한 쪽은 중국이라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끈다. 이달 초 미국 허드슨연구소가 개최한 세미나에서 나온 이야기로 이른바 ‘중국특색의 디커플링’이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을 펼친 이는 존 리 허드스연구소의 고급 연구원이다. 그는 미·중 양국이 현재 서로 다른 수단을 사용해 디커플링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이 중국과의 디커플링에 나선 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기부터다. 중국의 통화정책에서 국유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에 이르기까지 중국이 글로벌경제에 가져오는 위해를 인식한 트럼프 정부는 자유, 호혜, 공평의 무역 추진을 위해 중국에 대한 일련의 경제 제재를 실시하며 일부 산업에서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꾀하기 시작했다. 미 정권이 조 바이든의 민주당에 넘어갔지만, 중국과의 디커플링 정책은 바뀌지 않았다.

존 리 미국 허드슨연구소의 고급 연구원은 미중 경제의 디커플링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 먼저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허드슨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존 리 미국 허드슨연구소의 고급 연구원은 미중 경제의 디커플링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 먼저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허드슨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중국은 자신이 피해자인 양 불만을 터뜨리고 있지만, 사실 미국 경제와의 단절을 먼저 추진한 건 중국이며 그 역사 또한 더 오래됐다는 게 존 리의 분석이다. 그에 따르면 덩샤오핑 시기인 1979년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을 시작하면서 글로벌 경제, 특히 미국 경제로부터 상대적인 이득을 추구하려 애를 썼다. 중국은 애초부터 미국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거나 글로벌 경제와의 통합을 추구하지 않았다.
중국은 그저 서방을 추월할 자신의 국력을 키우고자 자신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걸 글로벌 경제로부터 얻으려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중국의 야심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는데 시진핑 시기 들어 보다 분명해졌다. 시진핑 이전 중국의 지도자들이 어둠 속에서 조용히 힘을 기른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틀 속에서 티 나지 않게 행동한 데 반해 시진핑은 충돌을 두려워하지 않는 위험선호 성격으로 중국의 속셈이 확연히 드러나게 됐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정부는 중국이 글로벌 경제에 위해를 끼친다는 판단 하에 중국 일부 산업과의 디커플링을 시작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정부는 중국이 글로벌 경제에 위해를 끼친다는 판단 하에 중국 일부 산업과의 디커플링을 시작했다. [EPA=연합뉴스]

존 리에 따르면 시진핑 시기 중국의 목표는 중국 중심의 경제 질서를 유라시아와 서태평양에 구축한 뒤 중요한 분야에서 미국을 축출하거나 미국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13년 처음 제기한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전략은 이 같은 중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좋은 예다. 일대일로 전략은 단기적으론 중국 기업들에 외부 투자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일대일로 전략에 깔린 보다 장기적인 베이징의 노림수는 유라시아와 서태평양의 모든 도로와 철도, 항구, 디지털 네트워크 등이 중국의 각 성(省)과 연계되게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중국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가장 수익성이 있을 분야의 제조 과정 전체와 공급사슬 전체를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지역과 산업 분야에서 미국은 배제돼야 한다. 이게 바로 중국식 표현을 빌려 말하면 ‘중국특색의 디커플링’이라는 것이다.
존 리는 중국은 이 같은 미국과의 디커플링 전략을 1970년대 개혁개방 정책 채택 이래 지금까지 줄곧 채택하고 있다고 말한다. 중국특색의 디커플링이 의미하는 건 미국이 유라시아와 서태평양에서 배제되고 고립되는 것이다. 궁극적으론 세계에서 가장 크고 전략적인 파워인 미국이 무너진다는 걸 뜻하기도 한다. 이는 시진핑이 집권 초 미국을 향해 “태평양은 매우 커 중·미의 이익을 모두 담을 수 있다”고 한 발언을 상기시킨다.

중국은 미국을 유라시아와 서태평양에서 배제하려는 중국특색의 디커플링을 추구하고 있다. [중국 중신망 캡처]

중국은 미국을 유라시아와 서태평양에서 배제하려는 중국특색의 디커플링을 추구하고 있다. [중국 중신망 캡처]

이는 태평양의 반을 내놓으라는 시진핑 주석의 대담한 요구에 다름 아니다. 시진핑은 이후 일대일로 전략과 중국제조 2025, 쌍순환(雙循環) 정책을 통해 단순한 기술 자립을 추구하는 정도가 아니라 유라시아와 서태평양 역내에서 중국의 주도적 위치를 다져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즉 중국특색의 디커플링은 중국이 비군사적인 전략으로 미국을 유라시아와 서태평양에서 축출하는 걸 뜻한다.
그러고 보면 시진핑 주석이 코로나 사태 이후 32개월 만의 첫 해외 순방지로 왜 카자흐스탄을 선택했고 이어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의에 참석해 유라시아 대륙의 12개 국가 정상과 회담을 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겠다. 카자흐스탄은 시 주석이 2013년 9월 일대일로의 ‘일로(一路, 육상 실크로드)’ 구상을 가장 먼저 발표한 곳이다. 시 주석은 자신의 3연임을 확정 지을 10월의 20차 당 대회 뒤엔 11월에 인도네시아의 G20 정상회의와 태국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할 전망이다.

미국은 중국 일부 산업과의 디커플링을 추진하고, 중국은 유라시아와 서태평양에서 미국을 배제하려는 중국특색의 디커플링을 시도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은 중국 일부 산업과의 디커플링을 추진하고, 중국은 유라시아와 서태평양에서 미국을 배제하려는 중국특색의 디커플링을 시도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인도네시아는 시 주석이 2013년 10월 일대일로의 ‘일대(一帶, 해상 실크로드)’ 구상을 밝힌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유라시아와 서태평양을 일대일로 전략을 통해 중국 중심의 경제 권역으로 만들려는 시진핑의 포석이 읽힌다. 내년인 2023년은 일대일로 전략 선포 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시 주석의 행보가 왜 유라시아와 서태평양 챙기기에 맞춰져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의 목적이 이들 지역에서 미국 영향권 배제에 있음도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은 일부 산업에서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추구하고 있고, 중국은 유라시아와 서태평양에서 미국 축출이라는 디커플링을 시도하고 있다. 사이에 낀 우리로선 정신 바짝 차려야 하는 상황이다. 두 손의 떡을 다 먹어야 하는데 자칫하다간 둘 다 놓칠 위험도 있다. 쉽게 나올 해법이었다면 벌써 나왔을 것이다. 어려운 만큼 순간순간 상황을 보며 대처해 나가는 지혜가 절실하다.

미국이 중국 일부 산업과의 디커플링 추진에 앞서 #중국은 수십 년 전부터 유라시아와 서태평양에서 #미국 축출하려는 '중국특색의 디커플링' 전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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