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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징벌과 공정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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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여성국 기자 중앙일보 기자
여성국 팩플팀 기자

여성국 팩플팀 기자

“내 믿음 같은 거야.”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 A에게 “왜 국기에 대한 경례를 안 하냐”고 묻자 이런 답을 들었다. 축구도, 발표도 잘하던 그가 유일하게 표정이 없던 때는 조회 시간이었다. 우리와 다른 그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게 친구 사이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6학년이 되고 그의 어머니가 전도지를 나눠주는 걸 보고 A의 가족이 여호와의증인 신도라는 걸 알았다.

A가 다시 떠오른 건 5년 전, 선배들과 병역거부 기획 취재를 하면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을 박해로 보는 국제사회 시선도 있었지만, 국내에선 ‘양심적’이란 표현에 거부감이 강했다. 이들의 병역법 위반에 대해 대법원과 달리 무죄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이 늘던 때였다. 당시 병역거부자들은 “메르스 환자 이송 업무 등 기피 업무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듬해 헌법재판소 결정 등으로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한 병역거부가 법적으로 허용됐다. 국회는 대체역법을 만들었고 2020년 10월 대체복무가 시작됐다.

지난 6월 천안교도소 대체복무 생활관으로 들어가는 대체복무자들. [중앙포토]

지난 6월 천안교도소 대체복무 생활관으로 들어가는 대체복무자들. [중앙포토]

첫 대체복무자들이 복무기간 반환점을 돈 지난 5월 이후, 이들의 복무 실태를 취재했다. 법에 따라 대체복무요원이 됐지만, 과거 수형생활 시절 하던 일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다. 시민단체, 국가인권위원회 등은 대체복무 기간과 형태가 징벌적이라고 본다. 현역과의 공정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반박도 있다. 10여 년 전, 강원도 기갑부대 전투병으로 복무한 입장에서 이들의 현역 대비 2배, 교도소 합숙 복무는 공정보다 징벌에 가깝지 않나 싶다. 철저한 심사 덕에 병역기피자는 늘지 않았고, 20대 여호와의증인 남성 수도 유의미하게 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이 코로나 초기 일손이 부족한 보건의료시설, 돌봄 사각지대에서 일했다면 어땠을까. 더 많은 시민에게 도움되는 일을 하면 사회적으로도 이익이 아닌가. 한 복무관리팀장은 이들이 “‘합숙을 위한 합숙’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장기적으로 복무분야 다양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취재를 위해 방문한 징병제 국가 핀란드는 신청만 하면 대체복무가 가능하다. 그런데도 현지 국방부 관계자는 “군복무 만족도가 높아 현역 비율이 일정하다. 대체복무와 공존을 고민하는 게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했다. 국가시스템에서 나오는 자신감이 부러웠다.

20여 년 전 교실에서 A가 “믿음 같은 거”라 말할 때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듯, 여전히 대체복무자들은 나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다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들을 법과 제도로 포섭했다. 의무를 다하는 이상, 국가는 대체복무 실태를 점검하고 개선해야 한다. 안보와 인권, 신념과 병역이 조화로운 대체복무제를 사회가 함께 고민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