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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쌀 45만t 사들인다 '역대 최대'…野 매입법엔 "공급과잉 심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급격하게 떨어진 쌀값을 안정화하기 위해 정부가 쌀 45만t을 사들인다. 역대 수확기에 정부가 매입한 규모 중 가장 많은 수준이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여기에서 나아가 정부의 쌀 시장 자동 개입을 의무화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이렇게 되면 매해 쌀이 초과생산되는 구조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지난 21일 충남 논산시 상월면 논에서 농민이 정부의 쌀값 보장을 요구하며 트랙터로 벼를 갈아엎고 있다. 뉴스1

지난 21일 충남 논산시 상월면 논에서 농민이 정부의 쌀값 보장을 요구하며 트랙터로 벼를 갈아엎고 있다. 뉴스1

25일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수확기(10~12월) 45만t의 쌀을 시장격리한다고 밝혔다. 시장격리는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매입해 시장의 공급량을 줄임으로써 가격 하락을 방어하는 정책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쌀 산지 가격은 지난해 10월부터 떨어져 지난 15일 기준 20㎏당 4만725원으로 1년 전(5만4228원)보다 24.9% 하락했다. 1977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로 가장 큰 폭의 하락이다. 오름세를 이어가는 주요 먹거리 물가와는 정반대의 흐름이다.

농촌진흥청이 올해 작황과 햅쌀(신곡) 수요량을 조사한 결과, 올해는 약 25만t의 초과생산이 발생할 전망이다. 게다가 2021년산 쌀(구곡) 역시 예년보다 많은 10만t 수준이 시장에 남아 있어 올해 신곡 가격의 추가적인 하락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신곡과 구곡 재고량을 합친 양보다 더 많은 물량을 시장격리해야 가격 하락을 막을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시장격리와 별도로 정부는 매년 신곡을 공공비축미로 사들인다. 올해 공공비축 물량은 전년 대비 10만t 증가한 45만t이다. 시장격리 물량과 공공비축 물량을 모두 합치면 총 90만t이 시장에서 격리되는 효과가 발생한다는 의미다. 90만t은 올해 예상 생산량의 23.3%에 이르는 물량으로, 과거 시장격리 비중(8.3~18.1%)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정부는 이번 시장격리로 쌀값이 적정 수준으로 회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인중 농식품부 차관은 이날 “지금과 가장 비슷하게 시장격리를 실시했던 2017년에는 수확기 직전 대비 (시장격리 이후) 쌀값이 13~18% 올랐다”며 “올해도 아마 그 정도 상승하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밝혔다.

이번 시장격리에 필요한 예산은 약 1조원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 쌀 매입 금액은 오는 10~12월 쌀값을 기준으로 책정한다.

한덕수 국무총리(가운데)와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셋째)이 25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한 총리, 정 비대위원장,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국회사진기자단

한덕수 국무총리(가운데)와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셋째)이 25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한 총리, 정 비대위원장,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국회사진기자단

문제는 시장격리가 당장 떨어진 쌀값의 방어를 위한 단기적인 대책이라는 점이다. 정치권은 쌀 시장 문제에 대한 중·장기적 대응 방안으로 서로 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은 초과생산이 발생하는 등 일정한 요건이 되면 정부의 자동적인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선택 규정이었던 정부의 쌀 시장격리를 사실상 강제화하는 방안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23일 “쌀값 문제로 온 나라의 농민이 고통을 호소하고 많은 전문가가 식량 안보, 전략산업으로서의 농업을 이야기하는데도 여전히 마이동풍”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핵심 민생 과제로 포함해 정기국회에서의 통과를 중점 추진할 방침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민주당 안이 쌀 시장에 오히려 혼란을 불러올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이날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야당은 다수 의석을 앞세워 다분히 포퓰리즘적이고 선동적인 양곡관리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당정이 선제적으로 나서서 쌀값 안정을 위한 정책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자동 시장격리가 의무화되면 해마다 쌀 과잉 구조가 계속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우려다. 최근 10년 동안 쌀 생산량이 평균 0.7% 줄어들 동안 쌀 소비량은 1.4%씩 줄며 공급과잉이 만성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풍년이 들면 매년 시장격리를 하며 국가 재정을 써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김인중 차관은 “분명히 공급과잉이 심화할 것이고, 재정 부담도 커질 것”이라며 “결국 농업의 미래를 위한 예산 소요에 충분히 투자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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