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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서영의 별별영어] 여왕의 영어 (Queen’s English)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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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6호 31면

채서영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

채서영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

엘리자베스 여왕의 연설을 들어보셨는지요? 흔히 접하는 미국식 영어와 상당히 다릅니다. 영국은 여러 민족이 만든 긴 역사 속에 지역방언과 사회계층방언이 발달했어요. 상류층은 런던을 포함하는 동남부의 말에 기반한 특정한 말투를 쓰는데 이를 RP라 부릅니다.

RP는 Received Pronunciation의 준말로 왕에게 ‘수여받은’ 발음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기숙학교로 진학하는 상류층의 교육 전통과 관련 있어요. 해리 포터가 11세에 호그와트에 갔듯이 각지에서 모인 아이들은 이내 학교에서 RP를 익히게 됩니다. 그래서 사회계층이 높을수록 지역의 색채가 줄어들죠. 왕실의 말투는 RP의 정점이고요.

여왕의 영어엔 여러 특색이 있습니다. 우선 모음 뒤의 ‘r’을 발음하지 않기(‘car’는 ‘카아’[kaː]로), ‘house’의 이중모음 ‘아우’를 ‘아어’[aə] 정도로 약화하기, ‘white’ 등 단어 말미의 ‘t’ 소리 분명히 내기 같은 RP의 특징이 있습니다. 하지만 즉위 당시와 최근 연설을 비교하면 구강의 앞부분을 좁게 사용하는 보수적인 RP에서 좀 더 구강을 넓게 사용하는 것으로 바뀌었어요. 자연스러운 변화겠지만 대중에게 다가가려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죠. 흥미로운 것은 ‘very’ 등 모음 사이의 [r]을 혀끝으로 입천장을 살짝 쳐서 내는 여왕의 발음입니다. 이는 RP보다 스코틀랜드 영어에 더 두드러지는 특징이거든요.

여왕은 런던이 아니라 가족과 시간을 보내곤 했던 스코틀랜드의 별장에서 서거해 비행기로 운구됐습니다.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여왕이 이곳에서 서거한 사실은 스코틀랜드 주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군주제 폐지와 더불어 분리 독립을 추구하던 곳이 조용하니 말입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시기가 평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이름이 같은 엘리자베스 1세가 세운 대영제국이 차츰 해체됐는데 여왕이 평화를 우선시했기에 존경받았지요. 윈스턴 처칠의 예언이 맞았어요. 그는 “영국의 역사는 대대로 여왕의 재임 시기가 좋았다”며 젊은 여왕의 즉위를 반겼거든요. “Famous have been the reigns of our queens. Some of the greatest periods in our history have unfolded under their sceptre. (우리 여왕들의 통치가 유명합니다. 우리 역사의 가장 위대한 시기 중 일부가 그들의 지휘 아래 펼쳐졌지요.)”

전통에 따라 관 위에 두었던 왕관(crown)과 지휘봉인 홀(sceptre)이 내려지며 여왕의 시대가 막을 내렸네요. RP는 어떻게 변화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채서영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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