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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견 공존 불가” 천호선도 박창진도 떠나는 정의당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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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의 존재는 가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기대를 접는다.”(천호선 전 대표)

“정의당은 내가 생각한 정당이 아니었다.”(박창진 전 부대표)

위기에 빠진 정의당에서 급기야 전직 대표ㆍ부대표마저 잇따라 당을 떠났다. 6ㆍ1 지방선거에서 원외 정당인 진보당보다 못한 성적표를 받고, 36억원 부채로 허덕이는 와중에 벌어진 일이다. ‘재창당 결의안’까지 채택하며 고군분투 중인 정의당이지만, “떠나겠다는 목소리만 들려 앞날이 캄캄하다”(정의당 관계자)는 한숨이 나온다.

천호선 전 정의당 대표. 중앙포토

천호선 전 정의당 대표. 중앙포토

초대 대표 천호선, 영입 인사 박창진…“이견 공존 불가능”

지난 22일 페이스북에 “정의당을 떠난다”고 밝힌 천 전 대표는 정의당의 상징적인 인물이라 당내에서도 파장이 컸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의 마지막 대변인 출신인 그는 2012년 정의당 창립을 주도하고 초대 대표도 맡으며 정의당의 모든 역사를 함께해왔다.

천 전 대표는 당을 떠나는 이유로 “다른 의견의 공존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썼다.

천호선 전 정의당 대표가 22일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글. 사진 페이스북 캡처

천호선 전 정의당 대표가 22일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글. 사진 페이스북 캡처

이어 그는 “어려운 고비마다 조심스레 의견을 제시한 적도 몇 번 있었지만 저의 미약한 힘으로는 막아내지 못했다”며 “(그러는 사이) 최근 2년간 비슷한 생각을 가진 당원들이 너무 많이 당을 떠나갔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본인마저 탈당하게 된 데에 그는 “당 대표를 했던 사람으로서 다른 분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앞서 나흘 전엔 박 전 부대표도 당을 떠났다. 대한항공 사무장 출신인 그는 2014년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을 폭로한 뒤 2017년 정의당에 입당했다. 지난해 부대표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했다.

박창진 전 정의당 부대표.국회사진기자단

박창진 전 정의당 부대표.국회사진기자단

박 전 부대표는 “지금 정의당은 자신들만 옳다고 주장하는 정당이 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그간 파업 중인 파리바게뜨 노동자 지지 등 노동 관련 투쟁, 홍콩의 민주화 운동 지지 등 국제연대를 제안했지만 “그럴 때마다 당은 미적거렸다. 당의 주된 흐름은 다른 일에 집중됐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지난 2년간 시민의 상식에 부응하는 당이 되자는 수많은 당원의 목소리를 당내 정치가들이 반(反)여성주의로 낙인찍었다”고 주장했다. 당초 노동ㆍ환경 등을 중시하던 정의당에 여성주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얽힌 갈등 구조를 짚었다.

정의당 후보 안 찍는 정의당원…내부서도 “과거와 달라졌다” 한탄

두 인물의 탈당 변에서도 나오듯 현재 정의당은 “당 안에 2개의 당이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갈등이 극심한 상태다. 최근 정의당이 펴낸 ‘당원여론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노동운동가 출신인 심상정 정의당 후보를 찍은 응답자는 61.0%에 그쳤다. 10명 중 4명이 심 후보를 찍지 않은 셈이다. 같은 조사에서 대선 패배 이유론 ‘노선 및 정체성’(43.6%)이 1위로 꼽혔다.

박창진 전 정의당 부대표가 18일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글. 사진 페이스북 캡처

박창진 전 정의당 부대표가 18일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글. 사진 페이스북 캡처

당은 최근 ‘비례대표 사퇴 권고 전 당원 투표’ 등 여러 쇄신책도 쏟아냈지만,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당장 다음 달열리는 당 대표 선거 역시 노선 투쟁의 연장선으로 치러질 조짐이다. 노동운동가 출신인 이정미 전 대표가 출마했고, 이에 맞서 페미니스트 장혜영ㆍ류호정 의원이 지원하는 조성주 전 정책위 부의장이 출마했다.

창당 때부터 정의당에 몸담은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생각이 다르더라도 배척하는 문화는 없었는데, 어느 순간 공동체라는 틀이 깨진 것 같다”며 “지금의 정의당은 대단히 문제가 있다”고 한탄했다. 정의당의 난맥상을 바라보는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정의당은 망하는 중이 아니라 이미 망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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