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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논문 양과 질 모두에서 중국이 미국 제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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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과학자들이 논문은 많이 쓰지만 논문의 질은 별로라는 통념은 이제 짧은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과학정책을 연구하는 캐롤린 와그너가 과학 잡지 ‘사이언스’에 한 말이다. 과연 그런가에 대한 답을 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일본 문부과학성 산하 과학기술·학술정책연구소(NISTEP)가 최근 발표한 ‘과학기술지표 2022’에서다.

NISTEP는 2018~2020년 동안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최상위 1% 중 각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밝혔다. 중국이 연평균 4744편 27.2%로 가장 많았고, 24.9%를 차지한 미국이 2위였다. 영국, 독일, 호주가 뒤를 이었고 한국은 299편 1.7%로 12위였다. 사이언스에 따르면 중국은 2016년 논문 수에서 미국을 처음 추월했다. 하지만 당시 피인용 최상위 1% 중 중국 논문은 6.4%로 미국(41.2%)과 큰 차이가 났다.

분야별로 따져보면 미국은 임상의학, 기초생명과학, 물리학 점유율이 높았고, 중국은 재료과학, 화학, 공학, 수학 등 산업 경쟁력과 직결되는 실용적인 분야에서 강했다. 과학기술 경쟁의 핵심 영역인 STEM(과학·기술·공학·수학)에서 중국이 미국을 앞지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과학논문 양과 질 모두에서 중국이 미국 제쳤다

과학논문 양과 질 모두에서 중국이 미국 제쳤다

비슷한 추세는 올해 4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드러났다. 과학 분야를 10개로 구분해 피인용 지수 최상위 1% 논문 수를 조사한 결과 중국은 2017~2019년 8개 부문에서 1위에 올랐다. 미국은 생명과학과 임상의학 2개 분야에서만 1위였다. 화학, 전기전자공학, 기계공학, 화학공학, 나노 기술 5개 부문에선 미국과 2배 이상 격차를 보였고, 특히 나노 기술에선 최상위 1% 논문 중 71.37%가 중국 논문이었다. 이 영역들은 모두 인공지능(AI), 양자, 반도체 등 첨단 기술과 관련된 분야다.

2000~2002년만 해도 미국이 10개 부문에서 양과 질 모두 압도적 1위였다. 이 시기 중국은 5위권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0~2012년쯤엔 양과 질 모두에서 2~3위권으로 뛰어올랐고 이후 미국을 추월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은 지난해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국제특허(PCT) 출원 건수에서도 6만9540건으로 미국(5만9570건)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기업별 PCT 출원 건수에선 중국 화웨이(6952건)가 미국 퀄컴(3931건)에 2배 가까이 격차로 1위였다.

세계 최강국 미국이라도 돈과 사람이라는 물량 공세엔 당할 재간이 없었다. 미국 하버드대 벨퍼센터에 따르면 2000년 중국의 연간 연구개발(R&D) 투자는 300억 달러로 미국(2700억 달러)의 9분의 1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2020년엔 5800억 달러(약 779조원)로 미국(6400억 달러)을 거의 따라잡았다. 같은 해 중국의 GDP 대비 R&D 비중은 2.4%로 미국(3.45%)에 비해 추가 투자 여력도 크다. 이 부문에서 이스라엘(5.44%)과 한국(4.82%)이 1·2위인 점이 이채롭다.

과학논문 양과 질 모두에서 중국이 미국 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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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해전술도 한몫했다. 미 조지타운대 보안·신흥기술센터에 따르면 2000년 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 박사 졸업생은 미국 대학이 1만8289명, 중국 대학이 9038명이었다. 하지만 2019년 3만3759명 대 4만9498명으로 역전됐다. 2025년에는 중국 대학(7만7179명)이 미국(3만9959명)의 2배 가까이 될 전망이다. 2019년 기준 중국의 총 연구원 수는 210만9459명에 달했다.

중국 대학뿐 아니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중국인 학생들도 있다. 2010년을 전후해 수많은 중국 대학원생들이 미국 땅을 밟았다. 중국 국가유학기금관리위원회가 중국 학생들의 미국 유학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과 혜택을 제공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미국에서 학위를 딴 후 고국으로 돌아와 학교와 기업에 들어갔고 일부는 미국 대학에 교수로 남았다. 이 미국 유학파 동문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공동 작업으로 성과를 내는 사례도 많아졌다.

2018년 발발한 미·중 무역전쟁은 과학기술 분야가 미·중 경쟁의 핵심 승부처라는 사실을 각인시켰다.

미국은 최근 반도체 산업 지원과 과학기술 지원에 2천800억 달러(약 376조원) 규모의 예산을 배정한 반도체과학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을 통해 미국에 반도체 생산라인을 짓는 삼성전자와 대만 TSMC에 25%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한다. 대신 향후 10년 동안 중국에 반도체 투자를 못하게 막았다. 미국의 노골적인 견제에 대응하는 길은 자체적으로 내공을 쌓는 것임을 중국이 모를 리 없다. 중국이 과학기술 분야에 더 적극적으로 자원을 투입할 것은 자명한 이치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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