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Focus 인사이드] 서해 국민 피살 책임을 피하려 한 문재인 청와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9월 22일은 서해에서 실종됐던 우리 국민이 북방한계선(NLL) 이북 해역에서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지 2년째 되는 날이다. 2년 전 문재인 정부는 서해 NLL 이남 우리 해역에서 실종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NLL 이북 북한 해역에서 식별됐다’는 군의 첩보를 보고받고도 6시간여 동안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어떠한 국가적 행동도 보여주지 못했다. 밧줄에 묶여 해상에서 끌려다니고 있었다는 데도 말이다.

이윽고 북한군이 우리 국민을 사살하고 시신까지 불태웠지만, 참모들은 대통령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관계장관회의를 개최했다. 이는 구조ㆍ대응조치를 실기하는 것은 물론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보고를 지연했다는 의혹을 키우는 대목이다. 우리 국민과 국제 사회가 문재인 정부의 무능과 함께 북한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규탄하며 공분했었다.

2020년 9월 22일 북한군이 피살한 해수부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어업지도원 이대준 씨의 부인이 지난 6월 17일 기자회견에서 이씨의 아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대독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

2020년 9월 22일 북한군이 피살한 해수부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어업지도원 이대준 씨의 부인이 지난 6월 17일 기자회견에서 이씨의 아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대독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

정치권에선 우리 국민이 피살됐음에도 불구하고 '월북 프레임'과 '북한 눈치보기'라는 정쟁에 휘말렸다. 법원이 유가족에게 알 권리를 공개하라고 판결했지만, 정부는 오히려 항소하며 우리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을 면하려 한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이제 윤석열 정부에서 진상규명이 진행 중이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최우선 책무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당시 관련 부처들로부터 보고받은 각기 다른 정ㆍ첩보를 어떻게 융합한 뒤 종합적으로 판단했고, 그를 바탕으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려고 조치하는 의사정책 결정을 제대로 거쳤는지 지금이라도 우리 국민은 소상하게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일반적으로 한 국가가 자국민의 안위와 관련한 위기상황이 발생할 경우 해당 국가(정부 수뇌부)가 가장 먼저 관련 정보를 신속히 종합해 상황을 판단하면서 적시적인 조치를 위한 정책 결정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국가의 행위에 대해 미국의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은 『결정의 에센스(Essence of Decision)』에서 정책결정 과정’이라고 주장하면서 다음의 세 가지 정책결정 모델(제1모델-‘합리적 행위자 모델’, 제2모델-‘정부조직행태 모델’, 제3모델-‘정부정치 모델’)을 제시했다. 그의 모델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적용해 보자.

첫째, ‘합리적 행위자 모델’은 국가 행위자인 최고 지도자(정부)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의식ㆍ가시적 대응조치’를 취할 때 바로 그 국가가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국민과 국제 사회가 신뢰한다는 개념이다. 그러나 서해 공무원 피살 과정에서 ‘의식ㆍ가시적인 대응조치’를 신속하게 하지 않은 문재인 정부의 비정상적 행위에 대해 국민은 물론 유엔 인권위원회를 포함한 국제 사회가 규탄했었다. 실종된 우리 공무원이 북한 해역에서 식별됐고, 피격 후 시신이 불태워지는 심각한 상황으로까지 전개했지만, 당시 문재인 정부는 미온적 태도로 일관하면서 마치 북한의 반인륜적 행위를 비호하는 듯한 정책결정 과정을 보여 줬다.

아마 이러한 과정들이 비정상적이며 반인권적, 비합리적 행위라고 인식됐을 가능성이 크다. 2004년 이라크 무장단체에 의한 한국인 피랍사건 때처럼 지리ㆍ시차적으로 먼 해외도 아닌 가까운 서해 앞바다에서 우리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하고, 국민을 분열시킨 데 책임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 결정자들에게 남아 있다고 본다.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1962년 10월 22일 백악관에서 쿠바 해상봉쇄를 발표하고 있다. 소련이 쿠바에 준중거리탄도미사일과 핵탄두를 배치하면서 벌어진 '쿠바 미사일 위기' 상황의 한 장면이다. 당시 위기에서의 정책 결정 과정을 연구한 그레이엄 앨리슨은 『결정의 에센스』라는 책을 펴냈다. 내셔널 아카이브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1962년 10월 22일 백악관에서 쿠바 해상봉쇄를 발표하고 있다. 소련이 쿠바에 준중거리탄도미사일과 핵탄두를 배치하면서 벌어진 '쿠바 미사일 위기' 상황의 한 장면이다. 당시 위기에서의 정책 결정 과정을 연구한 그레이엄 앨리슨은 『결정의 에센스』라는 책을 펴냈다. 내셔널 아카이브

둘째, ‘정부조직행태 모델’은 정부를 구성하는 부처들이 각각의 입장이나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 수뇌부가 각 부처에 대한 올바른 조정 통제력을 가져야만 올바른 정책결정에 이를 수 있다는 개념이다. 국민이 위기 시 해당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체계적으로 보호 또는 구조하기 위해서는 국가(정부)가 ‘표준행동절차’ 즉 ‘매뉴얼’에 기초해 정부 부처를 장악하고 주도적으로 정책결정과 조치를 신속하게 해나가야 한다는 모델이다. 정부 수뇌부의 전문성과 조정통제 능력이 위기 시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부 조직이 따로따로 책임을 분담해 자기 역할만 내세운다는 의미가 아니다.

실종된 우리 국민의 위치가 식별되고 피살되기까지의 상황에 대한 국가정보원, 국방부, 해양경찰의 각기 다른 정ㆍ첩보를 종합판단하고 조치할 곳은 당시의 청와대(정부)였다. 특히 북한과 관련된 사안이었던 만큼 대북 간사기관인 국정원이 관련된 정ㆍ첩보를 종합하고 판단하는데 적극적 역할을 해야 했다.

또 국가(정부) 차원에서는 각 정부 부처로부터 보고되는 첩보나 정보를 융합평가하고 상황을 판단해 해당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정책결정 과정이 이뤄져야 했다. 부처에 책임을 미루거나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잠을 이룰 시간조차 없었을 텐데도 만약 그랬다면 직무유기다. 이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아닐까?

일례로 안보관련 부처별 실종이나 월북 추정 평가첩보, 시신 소각 평가첩보, 그리고 조치해야 할 사안 등은 국가가 정부 차원에서 종합판단하고 책임 있게 조치해야 했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국방부에게 ‘시신을 소각한 것으로 추정한다’라고 수정지침을 내린 행위는 크게 잘못됐다. 이는 정부가 각 부처의 조정통제를 뛰어넘어 ‘정부 정치의 정보 개입’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 청와대 정보융합비서관실에서 각 부처의 정ㆍ첩보를 융합해서 그렇게 판단했다고 관련 부처에 하달하면 그만이다. 책임지지 않으려는 상위 부서 고위직들의 구태로밖에 볼 수 없다.

정부가 개별 부처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본연의 임무와 역할에 소홀하지 않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당시 해경이 실종자 개인 정보와 주변 탐문자료, 그리고 다른 부처인 국방부 첩보(SI) 등을 종합하여 월북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한 행위는 큰 틀에서 잘못됐다고 볼 수 있다. 마땅히 정부가 책임지고 종합판단하여 발표했어야 옳았다.

인천시 옹진군 대연평도 당섬 선착장에서 어선이 출어하고 있다.    연합

인천시 옹진군 대연평도 당섬 선착장에서 어선이 출어하고 있다. 연합

셋째, ‘정부정치 모델’은 정부 수뇌부만이 아니라 정부의 최종 결정에 참여하는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진 정책결정자들(장관급)이 각 부처의 정치적 전문성을 갖고 위기상황을 판단하고 올바른 정책결정을 지향하도록 절충ㆍ균형적 역할이 중요하다는 개념이다. 제1모델(합리적 행위자 모델), 제2모델(정부조직행태 모델)과도 연계성이 있다.

‘정부정치 모델’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적용한다면, 당시의 안보관계 장관들이 해당 부처별로 서로 다른 첩보평가 내용을 정부(국가)의 입장이나 성향에만 맞추려 했는지를 잘 따져 봐야 한다. 언론에 이미 보도된 대로, 만약 당시 국정원이 해경이나 국방부의 추정 월북판단과는 상이하게 실종 표류로 판단한 최초 첩보 보고서를 삭제했다면 이는 국정원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 하지 않았다는 의혹으로 불거질 수 있고, 국정원법을 어긴 것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결국 국가정보기관이 정부의 입장만을 따르려는 이른바 ‘정치가 정보에 개입하거나, 정보가 정치에 개입’하는 잘못된 행위로 평가받을 수 있다. 에브릴 헤인스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의회 인사청문회에서 “정보에 관한 한 결코 정치가 자리할 여지가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한 대목을 곱씹어 봐야 한다.

또한 해경이 소위 청와대 모 행정관의 역할 등에 영향을 받아 법적 근거가 불충분한데도, SI에 경도된 나머지 성급하게 “월북 추정”이라는 발표를 단정적으로 했다면 이는 잘못이다. 국방부 역시 눈치보기나 상부 지시로 SI를 삭제하고, 만약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월북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평가를 보완했다면 이 또한 잘못된 행위다. 왜냐하면 실종이나 월북판단 여부는 핵심 증인이자 피해자인 해수부 공무원이 이미 피살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단순 첩보만으로 법적 요건을 완전하게 충족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간과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제2모델(정부조직행태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 보호라는 본질에 대한 객관성을 잃으면서 제3모델(정부정치 모델) 과정에서 정책결정자들이 주관적으로 정치적 편향성에 경도됐고, 제1모델(합리적 행위자 모델) 과정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데에도 부정적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북한군에 사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의 친형 이래진 씨(오른쪽)가 9월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유엔인권사무소에서 엘리자베스 살몬 신임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 악수하고 있다. 뉴스1

북한군에 사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의 친형 이래진 씨(오른쪽)가 9월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유엔인권사무소에서 엘리자베스 살몬 신임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 악수하고 있다. 뉴스1

이제 서해에서 피살된 우리 국민의 명예가 회복하고 있다. 5000만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숨은 모두 똑같이 고귀하다. 국가는 이들을 반드시 지켜줘야 하는 최우선적 책무를 갖고 있다. 외부의 안보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합당하게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는 국민과 국제 사회의 신뢰로부터 멀어져 갈 수밖에 없다.

현재 진행 중인 조사 결과, 관련 첩보를 가진 각 부처가 독립적인 판단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다면 시정해야 마땅하나, 사건 경과의 어느 시점에선가 정부의 정치적 행위에 누군가 직ㆍ간접적으로 개입했다면 그는 우선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또한 각 부처 고유업무 처리 과정에서의 시시비비는 해당 조직 및 고유 업무를 위축하게 하는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에도 유의해야 한다.

앞으로 윤석열 정부에서 유사한 사례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차원에서라도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진상 규명이 철저하고도 신중하게 마무리 돼야 한다. 국가를 분열시키는 정치 수단으로 국가 구성의 핵심 요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이용해서는 누구라도 절대로 용납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