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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신당역 살인 분향소, 피해자 실명 내걸렸다…유족 분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신당역에서 동료 역무원 A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전주환(31)이 검찰에 송치된 21일. 이날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교통공사 성산별관 1층엔 A씨를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가 차려져 있었다. 추모 공간은 청사 내부가 보이는 창가 쪽에 설치돼 있어 외부에서도 어렵지 않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공간에 놓여진 위패엔 ‘故 ○○○ 神位(신위)’라며 A씨의 실명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21일 오후 신당역 살인사건 피해자 A씨의 실명이 적힌 위패가 서울 마포구 서울교통공사 성산별관 내 추모 공간에 놓여 있다. 독자 제공

21일 오후 신당역 살인사건 피해자 A씨의 실명이 적힌 위패가 서울 마포구 서울교통공사 성산별관 내 추모 공간에 놓여 있다. 독자 제공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은 지난 19일부터 30일까지를 A씨 추모 및 추모 행동 주간으로 선포했다. 이에 참여한 공사 측은 21일 A씨에 대한 추모 공간을 본사와 시청역, 각 차량사업소 및 별관 등 총 20곳에 순차적으로 차리는 중이었다.

성산별관의 경우 출입문에 ‘외부인 출입금지’ 표시가 붙어 있고, 잠금장치에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들어갈 수 있게 돼 있었다. 그러나 물건을 배달하러 온 택배기사가 건물 안을 자유롭게 들어가는 등 외부인이 이따금 드나들었다. 방명록에 적힌 이름이 그대로 보일 만큼 추모 공간은 창가와 가까운 곳에 마련돼 있었다. 이런 곳에 A씨의 실명이 그대로 적힌 위패가 놓인 것으로, 성산별관 외 다른 곳에 마련된 일부 추모 공간에도 A씨의 이름이 노출됐다고 한다.

통상 피해자의 실명은 2차 가해 등을 우려해 유족의 동의 없이 공개되지 않는다. 경찰 또한 지난해 10월 공사 측에 전주환에 대한 성폭력처벌법(카메라 등 이용촬영, 촬영물 등 이용협박) 위반 수사를 통지하면서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피해자를 유추할 수 있을 만한 정보는 보내지 않는다”며 영장을 비실명 처리했다. 이에 공사 측도 피해자의 고소부터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A씨의 피해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밝혀 왔다.

A씨 유족은 실명이 적힌 위패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일이고, 동의하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사내 분향소라 하더라도 외부인이 지나가다 실명을 보는 등 신상이 알려질까 봐 두렵다. 어느 곳에서도 실명이 노출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교통공사 성산별관 1층에 피해자를 기리는 분향소가 차려져 있다. 길에서 창문 너머로 피해자 A씨의 실명이 적힌 위패가 들여다보였다. 공사 측은 오후 4시쯤 위패를 모두 내렸다. 최서인 기자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교통공사 성산별관 1층에 피해자를 기리는 분향소가 차려져 있다. 길에서 창문 너머로 피해자 A씨의 실명이 적힌 위패가 들여다보였다. 공사 측은 오후 4시쯤 위패를 모두 내렸다. 최서인 기자

이날 오후 4시쯤 서울교통공사 측은 문제를 인지하고 위패를 모두 내렸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분향소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실무상 잘못이 있어 부득이하게 몇 곳 분향소에 (피해자) 실명이 노출됐다”며 “(A씨) 실명이 적힌 위패가 올라간 걸 확인한 뒤 모두 내렸다”고 말했다.

신당역 살인사건 발생 후 서울교통공사 측의 대처는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 20일 국회에 출석한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여성가족위원회 전체 회의 업무보고에서 “앞으로 여성 직원에 대한 당직을 줄이고, 현장 순찰이 아닌 폐쇄회로(CC)TV를 이용한 가상순찰 개념을 도입하겠다”고 밝혀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날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은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인 1조 근무가 이뤄지지 않은 근본적인 인력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5일엔 직원들에게 국무총리 지시사항으로 ‘신당역 여직원 사망사고 관련 재발 방지 대책’ 수립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며 16일 오전 10시까지 이를 제출하라는 공지사항을 내보내 ‘미봉책’이라는 직원들의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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