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조어치 달러 팔아치웠지만…1400원 환율 앞둔 추경호 딜레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장중 달러당 원화가치가 1399원을 기록한 지난 16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연합뉴스

장중 달러당 원화가치가 1399원을 기록한 지난 16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연합뉴스

환율 1400원 돌파를 앞두고 외환 당국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시장 개입과 모니터링 강도를 높였고 국내 수출입 기업에 ‘달러 사재기’ 자제도 요청할 계획이다.

18일 기획재정부와 외환 업계에 따르면 오는 20일쯤 기재부가 주관하는 국내 주요 수출입 기업 간담회가 열릴 예정이다. 미국 달러당 원화 값이 장중 1399원까지 내려앉았던(환율은 상승) 지난 16일 기재부가 이들 기업에 직접 요청해 만든 자리다.

최근 국내 수출입 기업이 구사하고 있는 ‘리딩 앤드 래깅(Leading and Lagging)’ 전략은 외환 시장 불안을 가중시키는 원인 중 하나다. 수입 대금으로 달러가 많이 필요한 정유ㆍ가스 등 기업은 달러를 미리 사들이고(리딩), 반대로 반도체ㆍ자동차ㆍ조선 등 기업은 수출 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원화로 바꾸지 않고 쟁여두는(래깅) 걸 뜻한다. 모두 앞으로 달러 값이 급하게 더 오를 것으로 보고 펼치는 전략이다. 국내 시장 내 달러 가뭄, 원화 값 하락을 더 부추기는 요인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실수요를 파악하고 시장 인식을 들을 예정이다. 달러 수급에 애로가 없는지, 정부 차원의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를 논의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물론 정부가 주요 수출입 기업을 대상으로 긴급 간담회를 소집한 건 달러 사재기를 자제해달라는 요청 성격이 크다.

지난 15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넋 놓고 있을 수는 없다”는 발언 이후 당국의 구두 개입과 매도 개입(말로 시장에 경고하고 또 직접 달러를 팔아 원화가치 하락을 막는 조치)도 공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달러당 원화 값 1400원 돌파 직전까지 갔던 지난주 후반 10억 달러에 육박하는 매도 개입이 단행된 것으로 외환 업계는 파악한다. 원화로 환산하면 조 단위에 이른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졌던 2008년 때나 했던 개입 규모다. 또 당국은 외환 전산망을 통한 실시간 모니터링 강도도 높이기로 했다. 투기성 외환 거래에 대한 감시ㆍ감독을 강화한다는 의미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5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5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원화가치가 가파르게 떨어지면서 외환 당국은 개입 강도를 높이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대외 환경을 고려하면 ‘시간 끌기’에 지나지 않아서다. 지난주 달러당 1400원 선 진입을 간신히 막았지만 더는 쉽지 않다. 당장 20~21일(현지시간) 미국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예정돼 있다. 0.75%포인트는 물론 1%포인트 금리 인상 전망까지 시장에서 나온다. 추가 달러 강세, 원화 약세로 이어질 변수다.

8월 경상수지 적자 전환, 수출 경기 둔화 등 한국 사정도 좋지 않다. ‘강달러’와의 오랜 전투가 불가피하다. 외환보유액이 한정돼 있는 만큼 달러를 꺼내 쓰는 매도 개입을 대규모로 계속 이어가기도 어렵다. 자칫 외환보유액만 축내고 환율도 못 잡는 상황에 처할 수 있어서다. 이런 딜레마에 외환 당국 역시 1400원 같은 특정 환율 선을 지켜내는 것보단 과도한 원화가치 하락(오버 슈팅)에 단호하게 대처한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기재부 당국자는 “어느 나라 외환 당국도 특정 환율 수준을 상한ㆍ하한으로 정하지 않으며, 그렇게 할 수도 없다”며 “시장이 99% 어느 한 방향으로 움직일 때 외환 당국은 너무 나가지 않도록 버텨주는 1% 역할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외환 시장에서 너무 한 쪽으로만 간다고 판단되면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